[이영환의 프리미엄코리아]

필자는 현존하는 최고의 경제학자로 망설이지 않고 미국의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교수를 꼽는다. 그는 비대칭정보하의 시장경제 분석에 기여한 공로로 조지 애커로프, 마이클 스펜스와 공동으로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클린턴 정부 시절에는 대통령 경제자문회의 의장을 역임했다.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활약하는 등 이론과 현실에 두루 해박한 경제 전문가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컬럼비아대 홈페이지

최고 경제학자 스티글리츠, 시장경제의 가장 큰 문제로 불평등 악화 지적

그런데 필자가 스티글리츠 교수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이런 탁월한 업적과 화려한 경력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여러 저서의 서문에서 그리고 각종 인터뷰에서 학부에서는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꿨고, 박사학위 논문은 분배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래 분배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유지해 왔으며 자신이 최근 미국의 불평등 문제의 구조적 특징에 대해 자주 언급하는 것이 결코 우발적이거나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 말하고 있다.

그가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미국 인디애나주 게리시는 1906년 ‘U.S.철강’이 설립된 이래 철강업 도시로서 부침을 경험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스티글리츠는 철강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공감과 연민을 가졌으며 이것이 훗날 약자들을 배려하는 따뜻한 심성을 가진 경제학자로 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학자로서만이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

오늘날 스티글리츠 교수는 프랑스의 젊은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와 함께 글로벌 차원에서 부와 소득의 불평등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 주력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이들은 객관적인 자료와 탄탄한 논리를 바탕으로 현재 글로벌 차원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가장 큰 문제로 불평등의 악화를 지적하면서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전 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킨 일련의 저서와 유튜브에 있는 강연 및 인터뷰 동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미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쳐 온 현행 규칙들의 문제점으로 금융자본의 지나친 비대화와 지대추구행위 등을 꼽는다. ©픽사베이

현 경제규칙들의 대표적인 부작용은 금융자본의 비대와 지대추구행위

이 가운데 필자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최근 발간된 스티글리츠 교수의 저서 ‘미국 경제 규칙 다시 쓰기(Rewriting the Rules of the American Economy)’이다. 보고서 형식을 띤 이 책에서 그는 지난 30여 년 간 미국 경제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온 현행 규칙들의 문제점을 상세히 지적한 후 미국 경제의 회생을 위해 새로운 규칙들을 제안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 못지않게 심각한 경제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고작 ‘김영란 법’이라는 일개 법안이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운운하는 차원의 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왜 우리는 이런 수준에서 헤매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 책에서 현행 규칙들로 인한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미국 경제 전반에서 경쟁이 점점 약화되어 왔으며 금융자본의 위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진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지대추구행위가 만연해 있음을 강조한다. 또한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패러다임으로 인한 ‘단기주의(short-termism)’의 문제점, 부유층에 대한 낮은 조세정책의 부작용, 완전고용보다는 인플레이션 억제에 편향된 금융정책의 문제점, 근로자들의 협상력 저하로 인한 부작용 및 근로기준 악화로 인한 문제점 등을 조목조목 언급하고 있다.

기존 문제점들을 해결하려면 새로운 경제 규칙이 필요하다. ©픽사베이

새로운 규칙으로 완전고용 정책, 금융부문 견제, 중산층 육성 등 주장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새로운 규칙을 제정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사실 현행 규칙들에 대한 검토 과정에서 이미 새로운 규칙들의 방향이 자동적으로 도출된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그는 연방준비은행이 지나치게 물가안정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완전고용 문제를 소홀히 했으며 이로 인해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 더욱 악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양적완화정책으로 가장 큰 혜택을 본 것은 금융자산을 많이 보유한 상위층이기 때문이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이와 같이 어떤 규칙을 제정하고 이를 어떤 방법으로 실행하는가에 따라 사회 전반에 걸쳐 상당히 다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면서 이것은 선택의 문제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좋은 규칙과 나쁜 규칙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제시하는 새로운 규칙들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누구나 수긍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장을 더욱 경쟁적으로 만들어야 하며, 금융 부문을 견제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상위층에의 부의 집중을 완화하고 중산층을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근로자들이 현재 보다 나은 조건에서 일할 수 있도록 규칙을 정비해야 하며, 이는 특히 지금의 글로벌 환경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미국 경제에 대한 스티글리츠 교수의 진단은 근본적으로 ‘효율성과 평등 간의 관계’에 대한 종전의 견해를 반박하는 데서 출발한다. 최근까지 학계와 정계 및 업계 전반을 지배해 온 경제 논리는 1975년 미국 경제학자 아서 오쿤이 ‘The Big Tradeoff’라는 저서에서 효율성과 평등 간의 상충관계를 지적한 이래 효율성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평등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즉 성장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불평등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픽사베이

효율성과 평등은 상충관계가 아니라는 데서 출발

그런데 그는 이것은 잘못된 견해였다고 반박한다. 새로운 증거들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그의 견해는 이 책의 다음 구절에 잘 표현되어 있다: “린든 존슨 대통령 시절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지낸 아서 오쿤은 한때 효율성과 평등 간의 명백한 역의 관계를 ‘거대한 상충관계’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새로운 증거에 의하면 경제적 성과에 피해를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진작시키는 가운데 국가는 불평등에 성공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을 비롯해 여러 학자들에 의하면 우리는 보통 이런 유형의 ‘스토리(story)’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은 그럴듯한 이야기에 쉽게 경도(傾倒)되는 본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상당히 수긍할 수 있는 지적이다. 우리는 어떤 스토리가 진정 합리적인지 냉정하게 따지는 데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종종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야합해 그럴듯한 스토리를 만들어 대중매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전파하면 이에 미혹되어 그들의 지대추구행위를 수수방관하는 우(愚)를 범해왔던 것이다.

대기업을 키워 경제 살리는 시절은 끝났다. 대신 중산층을 소득을 늘려 분수경제를 육성해야 한다. ©픽사베이

낙수 경제가 아니라 분수 경제 추구해야… 중산층 육성 시급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낙수 효과(trickle-down effect)에 대한 오해이다. 이것은 대기업이나 상위층의 부가 증가하면 이들이 지출을 많이 할 것이고 이로 인해 다른 중소기업이나 하위에 있는 사람들도 더불어 혜택을 보게 된다는 주장이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바로 이런 스토리가 1980년대 초 이래 ‘공급 경제학’이 득세하는 발판을 만들어 주었으며 이어 신자유주의 정책이 득세해 금융부문을 비롯해 경제 전반에 걸쳐 규제완화와 민영화 등을 지지하는 일련의 규칙이 제정되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과거 정부에서 낙수 효과라는 스토리를 얼마나 자주 사용했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런 스토리를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낙수 경제(triclkle-down economy)와는 정반대로 ‘분수 경제(trickle-up economy)를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중산층을 비롯해 하위에 있는 사람들의 소득 수준이 높아져 이들의 왕성한 경제활동이 상위층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선순환 구조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불평등의 완화와 이를 통한 중산층의 육성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경우 금융자본의 지나친 시장 지배력이 문제라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재벌의 시장 지배력이 문제다. 이 점을 제외하고는 미국의 사례가 그대로 우리나라에도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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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과 경제적 성과는 대체재 아닌 보완재

그는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궁극적으로 중산층을 두텁게 육성하는 새로운 규칙들을 만들어 실행해야 한다는 논리를 설득력 있게 전개하고 있다. 그가 이 책에서 현행 규칙들에 대해 비판을 바탕으로 제시한 새로운 규칙들은 궁극적으로 두터운 중산층을 육성함으로써 성장과 불평등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말하고 있다: “새로운 견해는 분수 경제, 즉 중산층에 바탕을 둔 경제를 구축하는 것이 성공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평등과 경제적 성과는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인 것이다.”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라는 표현에 그의 생각이 압축되어 있다.

그는 여러 강연을 통해 과거 40여 년 동안 미국 경제에서 생산성은 크게 상승한 반면 미국 근로자의 실질임금은 거의 상승하지 않았다는 점을 반복해서 지적했다. 이것은 곧 생산성 상승으로 인한 경제성장의 과실을 대부분 자본이 가져갔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로 인해 불평등이 더욱 악화되고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어려운 지적이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와 같은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미국 경제의 침체를 막고 장기적으로 다시 성장 궤도에 진입하기 위해 필요한 처방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식민지에서 독립한 나라들 가운데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달성한 유일한 나라로 국제사회에서 높이 평가받아왔다. 양적인 면에서 한국 경제는 2015년 기준 GDP 규모 세계 11위, 무역 규모 세계 9위를 달성했다. 그리고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들의 시가총액 기준 세계 14위였으며 포춘지 선정 ‘글로벌 500’에는 17개의 기업이 포함되는 등 경제 규모면에서는 대체로 세계 10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 경제의 양면 중 밝은 면만을 본 것이다.

한국이 미국 못지않게 부와 소득 분배가 불평등한 나라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덧붙여 OECD 34개국 가운데 국민행복지수, GDP 대비 복지예산비율, 아동의 삶의 만족도, 부패지수, 출산율, 노조 조직률 등에 있어서는 최하위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우리 스스로를 비하하는 헬조선이란 말이 아무런 저항 없이 수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필자가 정말 안타까워하는 것은 우리 사회 어디에서도 이런 현실이 지속되는 경우 예상되는 불행한 미래에 대비하려는 체계적인 노력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OECD경제전망’에 따르면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은 2.7%, 2017년에는 3%로 전망된다.©포커스뉴스

글로벌 소비수요 지속적으로 감소 예상… 한국의 미래 불안정

여러 경제 전문가들이 우려하듯이 향후 글로벌 경제 전망을 낙관할 수 있는 데이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많은 나라들이 이미 인구 절벽을 경험했으며 다른 나라들도 곧 인구 절벽을 경험할 것이며 이로 인해 향후 글로벌 소비수요는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이런 논의에서 핵심에 위치하고 있다. 왜냐하면 중국은 2025년경 인구 절벽을 경험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데 이로 인해 한국 경제가 가장 큰 충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원자재를 비롯한 각종 상품 가격들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어 신흥공업국이나 중동의 산유국 및 제3세계 국가들의 수입수요가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와 같이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게는 글로벌 상황이 매우 비관적이다.

또한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의 총부채(정부부채+민간부채)는 오히려 증가해 부채 버블이 언제 터질지 모를 위험을 안고 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파생금융상품 잔고가 계속 증가해 일부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미 1,200조 달러를 넘어섰다고 한다. 이는 약 80조 달러인 세계 전체 GDP의 15배에 달하는 실로 엄청난 규모이다. 많은 금융전문가들이 금융위기가 재발한다면 파괴력이 2008년보다 훨씬 더 강력할 것으로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마디로 우리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며 비관적인 미래에 대처해야 한다.

©픽사베이

‘번영의 공유’가 처방… 기득권층의 지대추구행위 제어해야

이것이 우리에게 닥칠 미래의 모습이라면 과연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진정 현명한 것인지 깊이 숙고해야 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 모두 개인적 편견을 벗어나 스티글리츠 교수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지적했듯이 효율성과 평등은 이제 더 이상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임을 우리 모두 인식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 모두 경제의 선순환은 낙수 효과가 아니라 분수 효과를 통해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해야 할 것이다.

종합적으로 그가 즐겨 사용하는 용어인 ‘번영의 공유(shared prosperity)’만이 진정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향후 닥칠 더 큰 어려움에 대처하는 현명한 처방임을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기득권층이 지대추구행위를 자제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 이상 근시안적이고 불합리한 정책 대안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우리 모두 ‘한국 경제의 규칙 새로 쓰기’를 공론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주권자의 모습이다.[오피니언타임스=이영환]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 이사

  미시경제학 등 다수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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