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기수의 중국이야기]

중국 동북쪽에 위치한 랴오닝성(遼寧省)의 지방 도시에 간 적이 있다. 상담을 끝내고 저녁 식사를 위해 그 지역에서 가장 화려하고 큰 음식점에 들렀다. 중국의 음식점은 지방도시더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작은 음식점이 아니다. 5, 6층짜리 건물 전체가 식당이고, 정원이나 실내 장식 등의 화려함은 웬만한 도시의 대규모 음식점에 뒤지지 않는다. 그 음식점도 정원에 인공 열대 식물과 괴석 등으로 멋을 부린, 규모가 작지 않은 음식점이었는데 입구부터 사람들이 흥청거리고 있었다. 썰렁할 것으로 생각했던 내가 거래선 사장에게 물어보니 오늘 이 음식점에서 베이징 대학에 합격한 학생의 축하연이 있다고 했다. 과연 음식점 외벽과 로비 중앙에 ‘축 아무개 베이징대(北京大) 합격’이라는 현수막이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수능을 10일 앞둔 지난해 11월2일 서울 서초구 종로학원에서 수험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중국의 대입수능 ‘가오카오’는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시험 중 하나로 손꼽힌다. ©포커스뉴스

중국 수능 ‘가오카오’, 세계에서 가장 치열… 난이도 높아 만점자 없어

중국의 대입 수능 시험인 가오카오(高考)는 우리와 달리 6월에 치러진다. 중국의 대학은 9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금년도 가오카오도 6월7일부터 3일간 940만 여명이 응시한 가운데 전국적으로 치러졌다.

대학은 내신 성적이나 별도의 시험 없이 가오카오 성적만으로 신입생을 뽑는다. 수시나 논술 등 또 다른 돌파구가 있는 우리와는 달리, 이 시험 하나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 그야말로 세계 최대 규모의,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그리고 가장 잔인한 입학시험이라고 할 만하다.

시험에 응시하는 수험생들의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드론을 띄우고, 검색봉으로 수색하고, CCTV를 실시간 풀 가동하는 등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진다. 부정행위 적발 시 7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도 있다. 시험 난이도는 우리의 수능과 비교할 수 없이 높다. 서술형 중심 시험이라 한 번도 만점을 받은 사람이 없다.

매년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가오카오에 응시하는 중국의 학생들은 1000만명에 육박한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조금이라도 좋은 점수를 얻어 조금이라도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이 1000만명의 수험생들과 그들 가족들이 뿜어내는 긴장과 열기로 대륙 전체가 달아오른다.

지난해 11월6일 수능을 엿새 앞두고 서울 강북구 도선사를 찾은 수험생 학부모가 합격을 기원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명문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부모와 본인의 노력은 눈물겹다. ©포커스뉴스

베이징·칭화대 등 일류대 입학자는 1만명 중 3~4명인 천재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베이징대나 칭화대 등 소위 일류대학에 입학한 학생이라면 1000만명의 입시생 중 석차가 최소 3000~4000등 안에 든 학생들이다. 그리고 법대, 상대, 공대 등 인기 학과라면 적어도 500등 안에 든 학생들이다. 성별로 대학 정원이 할당되어 있긴 해도 중국 각 지역에서 칭화대나 베이징 대에 입학 할 수 있는 학생은 성(省)마다 평균 100명 안팎이라는 얘기이다.

대부분의 성(省)이 우리보다 면적이 넓고 인구가 많다. 그래서 이들을 천재라고 부른다. 이들은 미래를 보장받는다. 대학 졸업 후 이들은 고급 공무원으로 발탁되고 공산당의 핵심 간부로 성장한다. 이들이 오늘 날 G-2로 치고 올라온 중국의 핵심 인재들이고 앞으로 우리가 경쟁해야 할 상대들이다.

모든 사람들이 평등해야 하고 가진 사람이 비판받아야 하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남들보다 잘 살기 위한 눈물겨운 경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중, 고등학교부터 입시가 있다.

중·고교부터 과외, 총명탕 등 입시경쟁을 벌이는 바람에 ‘개천에서 용 안 나오는 시대’가 됐다. ©픽사베이

중·고교부터 과외, 총명탕, 불공 등 입시경쟁 눈물겨워··· 개천에서 용 안 나와

소위 명문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기울이는 부모와 본인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이다. 우월 반 편성은 기본이다. 대부분의 학교가 기숙사 생활을 해서 밤늦게까지 학생들을 철저한 규율 하에 공부 시킨다. 부모들은 초등학교부터 자녀들을 좋은 학교에 넣기 위해 극성이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들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그들은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가오카오 시즌이 되면 유명호텔에선 두뇌 활동을 돕는다는 특선요리가 불티나게 팔린다. 학부모들은 용하다는 약방에서 총명탕을 지어 나르고 100일 불공을 드리러 사찰로 몰려든다. 사교육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90년대만 하더라도 언감생심 엄두를 못 냈던 학부모들이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남보다 앞서기 위해 유명한 과외 선생들을 찾아 나선다. 과외를 하지 않고 명문 대학을 들어 갈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요즈음 찾아보기 힘들다. 가난한 집안의 학생들이 명문대에 진학하는 비율이 갈수록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중국의 개천에서도 용이 나는 경우는 드물다.

리커창 총리 등 1977년 부활한 입시 경쟁을 통과해 한 사람들이 오늘날 중국을 이끌고 있다. ©포커스뉴스

덩샤오핑이 미래 인재 키우기 위해 입시 부활

1977년 7월22일, 덩샤오핑이 험난한 정치 역정 끝에 중국 공산당 주석으로 복권된다. 3번의 실각을 거친 후 3번째 복권이었다. 복권 후 그는 우선 당시 중국의 가장 절박한 문제가 미래의 인재들을 키우기 위한 교육임을 간파해 낸다. 40명의 교육전문가와 5일간의 회의를 직접 주재하면서 그는 경쟁이라는 불씨를 다시 살려내게 된다.

‘경쟁은 엘리트 의식을 조장하는 부르주아의 온상’이라며 마오쩌둥에 의해서 폐지됐던 가오카오는 덩샤오핑에 의해서 11년만에 다시 부활한다. 문화혁명 10년 동안 중국 대학에는 입시가 없었다. 출신 성분을 따지는 추천제를 통해 노동자, 농민, 군인들이 무더기로 들어왔다. 그들은 혁명가로서 정치투쟁에 앞장섰다. 이념의 앞잡이로 키워졌던 그들은 처음부터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다. 당시 경쟁적인 입시 제도를 다시 살리는 데 공산당 원로 등 사회 전반적으로 얼마나 많은 반대가 있었을 것인가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모름지기 경쟁은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계급의식의 발로이므로 처음부터 공산당의 이념 체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1977년11월, 경쟁 입시가 부활되면서 특별히 치러졌던 가오카오에 전국에서 공부에 굶주렸던 입시생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문화혁명의 광풍에 휩쓸려 시골에서 농사짓고 가축을 키우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인재들이었다. 주경야독으로 내일을 기다리던 전국의 13세부터 37세까지 570만 명이 시험을 치러 27만3000명(4.7%)이 대학에 갈 수 있었다.

©픽사베이

입시 부활 첫해와 두 번째 해에 대학 간 리커창 등이 오늘날 중국 이끌어

1977년과 78년, 부활한 입시 경쟁을 통과한 사람들이 오늘날 G-2시대의 중국을 이끌고 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비롯하여, 리위안차오(李源潮) 국가부주석, 세계적 영화감독 장이머우(張藝謀)와 천카이거(陳凱歌), 중국 최고의 스타강사 이중텐(易中天) 샤먼대 교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세계의 관심을 모은 류샤오보(劉曉波) 등이 이때의 77,78학번들이다. 이들은 현재 중앙과 지방의 고위 관료 중 적어도 100여명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고령화, 양극화와 함께 ‘중국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리적, 역사적으로 어차피 같이 해야 할 중국인데 그들의 흡수력과 영향력이 너무나 파괴적임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상하이가 1등을 차지했다. 읽기·수학·과학에서 골고루 압도적 점수 차를 보였다. 교육은 다음세대 국력의 척도이다. 우리의 경쟁상대는 우리가 아니라 동시대의 세계 인재들이며, 베이징대와 칭화대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간 중국의 천재들이다.

인재는 경쟁에서 탄생한다. ‘왜 잘사는 사람만이 좋은 학교에 가야 하는가?’라는 말도 가슴 찡한 울림이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경쟁이란 피할 수 없는 숙명인 것을···.[오피니언타임스=함기수]

 함기수

 글로벌 디렉션 대표

 전 SK네트웍스 홍보팀장·중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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