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강남의 아하!]

논어에 보면 공자님이 이런 말을 한다. “비루한 자들과 함께 임금을 섬길 수 있을까? 그런 자들은 지위를 얻지 못했을 때에는 그것을 얻으려고 애를 쓰고, 일단 그것을 얻고 나면 그것을 잃을까 염려한다. 진실로 그것을 잃을까 염려하면 못하는 짓이 없게 될 것이다.”(양화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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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몇 백 년 전에 쓴 글이 어찌 오늘 우리 주위에서 보는 현상에 이렇게 꼭 들어맞을까? 요즘 우리 주위를 살펴보라. 그럴듯한 지위를 얻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고 일단 그 자리를 잡았으면 그것을 놓칠까 ‘못하는 짓이 없이’ 온갖 술수를 다한다. 물론 자리를 얻으려고 정정당당하게 노력하고 그 자리를 얻었으면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성실히 주어진 임무에 임하는 것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 아니, 권장해야 할 일이다.

문제는 일단 자리를 얻었으면 지연, 학연, 혈연, 금력, 아부, 뇌물 등 온갖 불의한 수단방법을 다 동원해서 악착같이 그 자리를 지키거나 심지어 그보다 더 올라 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 문제다. 공자님은 이런 사람들과는 함께 일하는 것이 곤란하다는 정도로 이야기했지만,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기 때문에 결국 국가나 사회에 손해를 가져다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른바 ‘사자방(四資防)’ 비리가 이를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장자에 보면 스스로 대단한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 자리를 빼앗길까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좋을 이야기가 있다. 혜자라는 사람이 양(梁) 나라 재상으로 있을 때 그의 친구 장자가 만나러 갔다. 어떤 사람이 혜자에게 장자가 이렇게 찾아오는 것은 재상 자리를 뺏으려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혜자는 겁이 나서 장자를 수배하기 시작했다. 이에 장자가 제 발로 혜자를 찾아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쪽에 있는 원추(鵷鶵)라는 새를 아는가? 원추는 남해에서 출발하여 북해로 날아가는데,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를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를 않고, 감로천이 아니면 마시지를 않지. 그런데 마침 썩은 쥐를 얻은 올빼미 한 마리가 원추가 지나가자 그 썩은 쥐를 뺏길까 겁이 나서 원추를 쳐다보면 꽥 소리를 질렀다는 거네. 지금 자네는 그 양나라 대신 자리가 욕심나서 나에게 꽥 소리를 지르는가?”(오강남, 장자 366쪽)

장자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손숙오(孫叔敖)라는 사람은 세 번이나 재상의 자리에 올라도 그것을 영예로 생각지 않고, 세 번이나 거기서 물러나도 걱정하는 기색이 없었다. 누가 그에게 그 마음가짐이 어떠하기에 그럴 수 있는가 물어보았다. 대답인즉 자기는 “오로지 오는 것은 물리치지 아니하고 떠나는 것은 붙잡지 않을 뿐”이라고 하며, 이어서 자기가 누리는 영예가 “지위 때문이라면 나하고 상관이 없고, 나 때문이라면 그 지위와는 상관이 없는 것.” 사람들이 나를 귀하게 여기거나 천하게 여기는 일 같은 데 마음 쓸 겨를이 없다고 했다.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못할 짓이 없이 지내는 사람과 대조적으로 얼마나 허허롭고 의연한 태도인가?(오강남, 장자 3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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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자리를 얻는 이유가 무엇인가? 물론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의 경우 자리를 얻는다는 것은 무엇보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것이다. 그러나 이상적으로 말하면 어떤 자리를 얻는 다는 것, 특히 국회의원, 장차관, 판검사, 은행장 등 높은 자리를 얻는다는 것은 그 자리를 통해 자신이나 가족뿐만이 아니라 이웃과 사회와 국가, 나아가 인류를 위해 더욱 효과적으로 ‘봉사’하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 아닌가? 영어로 장관을 ‘미니스터(minister)’라고 한다. ‘섬기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물론 옛날에는 임금을 섬겼지만 이제 국민들을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요즘 자기 스스로 시민을 섬기는 ‘머슴’임을 강조하는 시장이 있다고 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여러 해 전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가 발표된 일이 있다. 합격자 대부분이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 자체가 인생의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것은 물론 훌륭한 일이다. 가문의 영광이고 궁핍에서의 해방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은 정의롭고 공평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이제 그 첫발을 디디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석 아닌가? 법조계에서 종사하는 것은 결코 개인의 부를 축적하는 수단도 아니고 무엇보다 은퇴 후 전관예우로 벼락부자가 되는 행운을 누리려는 것도 아니다.

높은 자리, 낮은 자리, 무슨 자리에 있든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자. 그러나 그것이 내 개인의 영달이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웃과 사회를 위한 ‘섬김’의 자리라는 사실을 깊이 명심해야 하리라. 그럴 때 참으로 일하는 보람과 긍지를 느낄 수 있게 되리라.[오피니언타임스=오강남]

 오강남

서울대 종교학과 및 동대학원 졸/캐나다 맥매스터대 종교학 Ph.D.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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