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의 너영나영]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47)이 사석에서 한 일간지 기자들에게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고 했다가 파면될 처지에 놓였다. 그는 “정말 잘못했다. 죽을 죄를 지었다”고 울먹이며 사과했다. 술김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이 취중 진담이라고 본다. 나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까지 개돼지 취급받는 것이 분하기는 하지만, 우리 현실에 대한 솔직한 진단이라고 생각한다.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 ©포커스뉴스

우리 사회의 소득 격차와 빈부 세습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스스로 정당하게 돈을 벌어 재산을 모으거나 상류층에 오르는 길은 점점 막히고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지나가 버렸다. 헬조선이니 금수저·흙수저니 하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상류층 자녀들만 부모 덕에 스펙을 잘 쌓아 연봉이 높은 회사에 취업하고 재산도 대물림받는다. 상위 1%, ‘그들만의 리그’인 세상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나향욱은 그런 현실을 근거로 민중은 개돼지라고 했을 것이다. 민중이 누구냐고 묻자 “99%”라고 했다. 개돼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나온다. 나향욱은 영화 ‘내부자들’을 떠올렸다. 영화에서 조국일보 주필로 분한 백윤식은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라고 했다. 문제가 생기면 개돼지들처럼 짖어대고 꿀꿀대고 소란을 피우는 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사회를 바꾸거나 개혁할 만큼 연대할 힘은 없다는 뜻이다. 나향욱이 “구의역 김군이 내 자식 같다고 하는 건 위선”이라고 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일시적으로 내 일 같이 느끼지만 곧 잊어버리고 비슷한 참사를 막을 대책을 마련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는 동석한 기자들이 “그래도 이 정부가 겉으로라도 사회적 간극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줄 알았다”고 하자, “아이고… 출발선상이 다른데 그게 어떻게 같아지나. 현실이라는 게 있는데…”라고 했다. 민중이 상류층에 오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출발선상이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자. 주거 문제다. 부모를 잘 만난 일부 젊은이들은 결혼을 앞두고 수억원을 들여 집을 사거나 전세를 얻는다. 하지만 부모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젊은이들은 은행 대출로 전·월세를 얻는다. 집을 얻을 돈이 없어 결혼을 할 엄두를 못내는 젊은이들도 있다. 한데 은행 대출로 신혼생활을 시작한 젊은이들이 과연 대출금을 다 갚고 집을 사서 상류층으로 진입할 수 있을까. 돈이 없어 결혼을 망설이는 젊은이들이 상류층을 따라 잡을 수 있을까.

출발선이 다른 젊은이, 사라진 신분상승 사다리. ©픽사베이

정부를 믿을 수도 없다.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재분배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소득재분배 기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취약하다. 게다가 정부는 재분배를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인 증세에 반대한다. 보수층과 대기업, 고소득층은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증세에 반대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들의 연대는 아주 강고하다. 그들의 기득권을 빼앗고 깨부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최근 한 토론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가서 정치권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얘기한 것을 상기시키고, “우리 정치권과 정부의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분들이 자본의 힘에 억눌려 전혀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나향욱이 기자들에게 처음에 꺼낸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는 말도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본다. 어차피 세상은 바뀌지 않을 텐데 아예 신분제를 공고화한다면 개돼지들의 작은 소란과 저항도 점차 사라질 것이다. 세상을 바꿀 수만 있다면 용을 쓸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상위 1% 대 하위 99%의 사회로 갈 수밖에 없는데 쓸데없이 힘을 쓸 것이 아니라 신분에 맞게 순응하는 것이 상류층은 물론 개돼지 자신들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세상이 바뀔 수 있을까. 나향욱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내 주변에는 부익부 빈익빈이 계속 심화하는 우리 현실을 안타까워 하면서도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것 같다고 얘기하는 친구가 여럿 있다. 최근에 한 친구는 진보정당보다는 보수정당에서 개혁적이고 합리적인 대통령이 나와 자본권력을 설득해야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해 나를 놀라게 했다. 그는 변함없이 진보정당을 지지했던 친구였다. 그럼에도 그는 자본권력이 워낙 막강하고 강고하기 때문에 진보정당에서 대통령이 나오더라도 그들을 설득하고 끌어안지 못하거나 진영 논리에 빠지면 불평등 완화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나는 나향욱의 말에 대한 내 해석이 그의 진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돼지 취급받는 것이 화가 나기는 하지만 그의 진단이 상당 부분 맞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개돼지론’은 한순간의 분노로 끝낼 일이 아니다.  [오피니언타임스=황진선]

 황진선

 오피니언타임스 편집인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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