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사명을 얘기할 때 ‘거악(巨惡)이 발을 뻗고 편안한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는 표현을 종종 쓴다. 한데 요즘 검찰을 보면 거악을 척결하기보다 자기 조직 내의 악을 비호하는 데 급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거악을 키우고 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내부 자정 기능은 찾아볼 수 없다.

검찰 스스로 거악 키워… 진경준 사건이 단적인 예

현직 검사장으로 첫 구속자가 된 진경준 사건이 단적인 예다. 진경준에 대한 가장 적절한 평가는 강도에게 칼을 쥐어준 격이라는 비유가 아닐까. 그는 2005년 서울대 동기이자 가까운 친구인 넥슨 창업주 김정주 NXC(넥슨지주회사)대표에게서 주식 매입 종잣돈 4억5000만원을 받아 주식을 샀다가 갈아탄 뒤 10년 만인 지난해 넥슨재팬 주식을 팔아 126억원의 대박을 터뜨렸고, 한진그룹에 대한 수사를 무마해주는 대가로 한진 계열사인 대한항공이 처남의 청소용역업체에 일감을 몰아주도록 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이는 진경준에게 칼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넥슨이나 한진그룹 측에 ‘보험’을 들어 놔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했거나 위협이 된 것이 분명하다. 거악을 척결해야 할 검사가 스스로 거악이 된 꼴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법무부와 검찰이 한동안 진경준의 거짓말을 받아들이며 옹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진경준은 처음에는 자기 돈으로 주식을 샀다고 했다가 장모의 돈을 합쳐서 샀다고 했다. 이어 넥슨의 돈을 빌려서 샀다고 다시 말을 바꿨지만 결국 김정주 대표에게서 주식 대금을 받아 공짜로 주식을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무부와 검찰은 진경준의 말을 믿고 계속 미적거렸다. 진상규명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일부 언론에서 집요하게 추적하지 않았다면 그냥 흐지부지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 사건도 네이처리퍼블릭 정운호 대표 사건이 불거지지 않았다면 드러나지 않을 사건이었다. 정운호가 부장판사 출신의 최유정 변호사에게 성공보수 명목으로 건넨 돈을 돌려달라고 실랑이를 벌이지 않았다면, 또 최유정이 정운호에게 맞았다고 폭행 혐의로 고소하지 않았다면, 정운호 구명을 위한 홍만표의 로비는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홍만표로서는 재수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또 전관예우와 로비로 연 100억원을 벌어 오피스텔 123채를 사들인 ‘괴물’로 추락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사건을 검찰이 스스로 나서서 수사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검찰은 홍만표의 현직 검사들에 대한 로비는 실패한 것으로 결론을 내려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랜저 검사’ 등 비리와 스캔들 잇따라도 자정 기능 찾아볼 수 없어

2010년 ‘그랜저 검사’ 사건, 2011년 ‘벤츠 여검사’ 사건, 2012년 김광준 부장검사의 조희팔 뇌물 수수 사건도 언론에서 먼저 터뜨리거나 경찰에서 수사를 시작했다. 그랜저 검사는 후배 검사에게 사건을 잘 처리해달라고 청탁한 대가로 그랜저 승용차와 현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당초 검찰은 그랜저 검사에 대해 사표를 받는 선에서 마무리하려다가 여론이 나빠지자 재수사 끝에 구속기소했다. 변호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벤츠 승용차와 명품까지 받아 동료 검사에게 사건 청탁을 한 벤츠 여검사 사건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다가 여론이 악화될 대로 악화되고 경찰이 수사에 나서려 하자 뒤늦게 본격 수사에 나섰다. 김광준의 6억원 뇌물 수수 사건은 경찰에게 빼앗아 오다시피 했다. 김광준을 감찰하던 검찰은 경찰이 김광준을 내사 중이라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서둘러 특임검사를 임명했다. 경찰이 나서지 않았다면 내부 감찰로 끝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까지 받았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김수남 검찰총장은 진경준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기왕에도 계속해서 자성과 재발방지를 다짐했지만 헛구호로 드러났다. 검찰 자정 기능으로는 내부의 악을 도려낼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스스로 양심의 호루라기를 부는 것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검찰 내부의 비리가 잇따르는 것은 무소불위의 권력 탓이다. 견제와 감시를 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게 돼 있다. 우리처럼 검사가 직접 수사권, 수사 지휘권, 기소권, 공소 유지권을 독점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한다. 지금 검찰 내에 제 2,3의 김광준과 진경준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내부 자정 기능이 없다면 외부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견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경찰이 먼저 인지한 사건에 대해서는 수사개시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경찰에도 미치지 못한다. 수사뿐 아니라 기소와 공소유지도 할 수 있는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신설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

일파만파 번지는 우 민정수석 의혹,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까

현재 불거지고 있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관련 의혹과 고소고발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조사1부에서 맡았다고 한다. 우 수석은 자신의 처가(處家)가 넥슨 측에 1326억원 짜리 강남 부동산을 매각할 때 김정주 대표와 친분이 있는 진경준이 주선하고, 그 대가로 2015년 검사장 승진 인사 검증 때 진경준의 넥슨 주식 보유 사실을 문제 삼지 않은 의혹이 있다고 보도한 한 일간지 기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변호사 시절 홍만표와 함께 ‘몰래 변론’을 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한 다른 일간지 기자들도 고소했다. 의경으로 근무하고 있는 아들의 특혜 보직 의혹, 처가의 농지법 위반 의혹도 제기됐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예에 비춰볼 때 검찰이 우 수석 관련 의혹과 고소고발 사건을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처가의 부동산 매각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등의 우 수석의 일부 해명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평화는 정의의 열매라는 말이 있다. 정의는 공동체를 평화로 이끈다. 반면에 불의는 분열과 분노를 부른다. 공동체를 파괴할 수도 있다. 얼마 전 갑질과 횡포를 일삼는 재벌 2,3세들을 ‘체제 전복 세력’이라고 비판하는 글을 읽었다. 진경준 같은 거악 역시 체제 전복 세력이다.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민중은 개돼지 취급하면 된다”고 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개돼지들이 좀처럼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음을 느낀다. 누가 체제 전복을 부추기는지, 누가 체제 전복 세력인지 곱씹게 하는 하 수상한 시절이다. [오피니언타임스=황진선]

 황진선

 오피니언타임스 편집인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