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 간에 대선 레이스가 지난 달 열린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본격화하고 있다. 11월 8일에 치러질 미국 대선에서 두 후보 중 누가 대통령이 되든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다. 트럼프는 최초의 민간 기업인 출신의 대통령이고 클린턴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다. 바로 이 ‘최초’라는 수식어 속에 이번 미국 대선의 시대정신이 들어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왼쪽)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게티이미지/포커스뉴스

트럼프와 클린턴…당선하면 최초 민간기업인 출신 대 최초 여성 대통령

2차 세계대전을 기준으로 할 경우 미국에서 공직을 겪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을 한 경우는 없다. 상·하원의원 주지사 장관 장군 변호사 등을 지낸 사람들이 대통령이 됐다. 민간인으로 대선에 도전한 사람 중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람은 1992년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18.9%를 득표한 로스 페로 뿐이었다.

여성은 초대 이후 대통령은커녕 후보조차 없었다. 소수 인종인 흑인 출신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나왔음에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 중에 대통령이 없었다는 것은 미국 사회의 여성차별의 깊은 뿌리와 관련이 있다. 여성에 대한 투표권은 흑인 남성에 대한 투표권보다 반세기 늦게 1920년에 부여된 게 미국이다.

유권자들이 트럼프에게 기대하는 것은 기업가답게 경제를 살리고, 민간 출신답게 기성정치를 개혁해달라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는 부자들로부터 정치헌금을 받아 부자들의 이익만을 대변한다는 것이 일반인들의 인식이다. 트럼프는 서민들의 이같은 불만의 틈새를 파고들어 예상을 깨고 공화당의 후보가 됐다.

여성 대통령은 양성평등이 완성된 미국에서 지금은 ‘최초’ 이상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니긴 어렵다. 다만 그가 퍼스트레이디로부터 상원의원 국무장관 등 다양한 국정경험을 갖고 있다는 것은 공직 무경험의 트럼프에게 대조되는 강점이다.

고립주의 대 조화주의, 미국 우선주의를 위한 다른 방법론 ©픽사베이

시대정신은 고립주의 대 조화주의… 팽팽한 접전

두 후보의 ‘최초’가 명목상의 시대정신이라면 ‘실질’의 시대정신은 트럼프의 고립주의와 클린턴의 조화주의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우선주의’는 두 사람에게 공통이지만 방법론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트럼프는 가난한 국민을 놔두고 미국이 세계경찰 노릇을 하는 것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멕시코 국경에 담을 쌓고, 불법이민자 추방, 이슬람 입국자 통제, 보호무역의 강화, 손해 보는 동맹의 포기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예선전에서부터 크게 논란이 됐던 그의 정책들로 인해 전당대회에 공화당 주류 인사들이 대거 불참하는 등 후유증은 지속되고 있지만, 그의 주장은 정강정책에 상당 부분 반영됐다. 우리의 관심을 모았던 주한미군 철수용의 등은 빠졌으나 한·미 FTA에 대한 반대 입장은 여전했다.

트럼프의 고립주의 정책들은 영국의 유럽 탈퇴(브렉시트)와 유럽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고, 아시아 등 전 세계로 파급된 IS의 테러로 인해 공감을 얻은 터에, 이민자에 의해 일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백인 유권자들로부터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해 클린턴은 '함께해서 강한 미국(Stronger Together)'를 구호로 소수인종, 동맹국들과의 조화를 강조하고 있으나 민주당의 전통적인 정책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예선에서의 경쟁자였던 버니 샌더스의 진보적 공약을 수용했다.

그럼에도 누가 미국을 변화시킬 수 있냐는 질문에 클린턴보다 트럼프를 꼽는 시민이 월등히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본선에서 클린턴의 손쉬운 승리가 될 것이라던 미국 대선은 트럼프의 예선 돌풍이 본선으로 이어지면서 막판까지 팽팽한 접전을 예고하고 있다.

지역과 계층, 세대와 이념 갈등을 봉합할 한국형 대통령을 찾을 수 있을까. ©픽사베이

한국 시대정신은 개혁적이면서 지역갈등을 넘어서는 대통령 찾는 것

미국의 대선에 걸려 있는 시대정신은 내년 한국 대선의 시대정신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에겐 어떤 대통령이 요구되는가? 트럼프처럼 기성 정치에 물들지 않은 개혁적 후보, 클린턴처럼 우리 사회의 갈등구조를 조화시키는 후보는 없을 것인가?

남북이 분단된 나라에서 지역과 계층, 세대와 이념으로 갈라져 대립하고 있다. 내년이면 현행 헌법이 시행된 1987년 체제가 30년을 맞는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고치자는 것이 개헌론의 골자이지만 정치개혁의 핵심은 1987년 체제의 결과물인 지역패권정치다.

1987년 이후 치러진 각종 선거는 영호남 간의 지역 갈등을 고착시켰다. 대구 경북과 광주 전남은 87년 체제 이후 지역당 후보에게 지속적으로 80~90%의 몰표를 던짐으로써 사실상 투표가 필요 없는 지역이 되었다.

망국적 지역감정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초기의 이승만 대통령이나 초기의 박정희 대통령처럼 전국에서 고른 득표로 당선된 대통령이 나와야 할 때다. 그런 대통령 후보를 찾는 것이 2017년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이 아닐까.[오피니언타임스=임종건]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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