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진의 민낯칼럼]

몇 년 전 지방 모신문에 1년간 칼럼을 연재한 적이 있다. 칼럼의 주제는 다양했지만 우연찮게 노인에 대한 것이 많았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인지는 몰라도 지난 19대 국회 노인복지대책특위에 전문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물론 노인과 장애인 문제는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고 종국에는 하나의 주제로 정책이 수립되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며 보편적인 현상이다.

때문에 사회정책을 전공한 나의 특위 참여가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장애인특위에 관여하고 있는 나였기 때문에 어쩐지 잘못된 인선인 것 같아 국회측에 몇 번이고 사양했다. 게다가 가뜩이나 바쁘다고 아우성을 치면서 또 일을 벌이다니…. 주변에서도 어이없어 하는 판이어서 회의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고민에 빠졌었다.

예전에는 내가 품에 안기곤 했던 그 넉넉한 가슴이 이제는 너무 작고 메말라 있었다. ⓒ픽사베이

그러나 내게 있어 그 문제는 이미, ‘할까 말까’의 문제를 넘어서 ‘갈까 말까’의 문제이기 때문에, ‘할까 말까’의 문제라면 ‘하지 말고’, ‘갈까 말까’의 문제라면 ‘가라’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가능한대로 참석해서 ‘많이 배우고’, ‘많이 느끼고’ 온다. 노인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노인의 역할을 극대화하기 위해 조직된 사단법인 대한노인회의 대토론회에 참석했었다. 외부 초청인사는 각 정당 대표를 포함한 국회의원 30여명과 전현직 장관, 군장성들이었고 나머지는 최소 70세의 노인들이었으니 패널로 참가했던 나는 어쩌면 가장 나이 어린 외부 인사였을 것이다.

나는 노인들의 집중적인 환호와 박수를 받아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차분하고 효성이 배어있는 듯한 목소리로 읊었던 어른공경도 마음 깊이 새겼지만, 전직 의원 자격으로 참석했던 유재건 변호사의 사모곡(思母哭)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낭송한 롱펠로우의 싯귀는 한줄도 소홀히 듣지 않고 귀담아 들었다.

하루는 저녁시간을 내어 친척 어른께 인사를 갔다. 그 부인은 몇 년 전부터 가벼운 치매 현상을 보이고 있었지만 아직은 건강한 남편이 곁에서 잘 돌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남편도 비슷한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저녁에 찾아간 아파트에는 흰머리의 바싹 마르고 쇠잔한 두 노인이 응접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내가 도착하기 전 가정부가 내가 찾아온다고 말을 전했더니 “그런 사람은 모른다”고 하더란다.

그러나 그 분들은 나를 보자 “언제 미국에서 왔니?”라며 반가워 하셨다. 언뜻 아무 이상이 없어 보였으나 나는 곧 사태를 깨닫게 되었다. 기억력이 거의 없어진 부인은 계속해서 같은 말을 묻고 또 물었으며 남편은 때로는 놀라운 기억력을 보이기도 했지만 현재와 과거의 일을 혼동하고 있었다. 깐깐한 영문학 교수로 청빈한 선비의 모습을 지니고 있던 그분은 그렇게 무너져 가고 있었다.

며칠 전 남편이 부인에게 “가난한 선생 남편을 둔 덕분에 평생 호강 한번 못 시켜 주어 미안했다”고 말하자, 부인은 “당신 덕분에 교수님 부인으로 언제나 존경받는 인생을 살았다.”고 대답하더란다. 곁에 있던 아들은 모처럼 제정신이 돌아온 듯한 부모님의 유언 같은 대화를 듣고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마른 장작처럼 뼈만 앙상하게 남은 그분을 나는 꼭 안아드렸다. 예전에는 내가 품에 안기곤 했던 그 넉넉한 가슴이 이제는 너무 작고 메말라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그분과 나누는 마지막 인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두 분 다 지난 밤에 내가 다녀간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그분들은 이제 세상과의 긴 이별을 시작한 것이다. 그 이별 의식이 얼마나 오래갈 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자식들을 포함한 주변사람들이 그분들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만을 간직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연로하신 분들은 이구동성으로 사람이 그립다고 말한다. ⓒ픽사베이

연로하신 분들은 이구동성으로 사람이 그립다고 말한다. 특히 활동을 중지하고 집에만 있어야 하는 분들에게는 더욱 절실한 문제이다.

십 수 년 전부터 노인과 걸인들에게 따뜻한 점심을 대접하고 배달하는 푸드뱅크 봉사를 하는 친구가 있다. 그의 말로는 자신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노인들을 두고 떠나기가 제일 힘이 들었다고 한다.

그분들은 점심만이 아니라 얘기를 나눌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 친구는 뜻이 맞는 초등학교 동창생 몇 명과 함께 하루에 한번씩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 전화를 걸어주는 ‘콜뱅크’를 만들어 작게나마 노인들에게 친구가 되어주는 운동도 벌이고 있다. 말동무도 되어주는 것은 물론, 그분들에게 무슨 이상이 있는지 곧 알아낼 수 있는 좋은 방법으로 노인복지정책의 기저에서 조용히 봉사하며 살고 있는 존경스러운 친구들이다.

28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매일 아침마다 내게 전화를 했다. 특별히 할 얘기도 없는데 아침마다 걸려오는 전화가 번거롭고 어떤 때는 마구 짜증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이제야 나는 그 분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홀로 되었던 아버지는 사람이 그리웠던 것이다. 지금이라면 오히려 내가 매일 전화를 걸어 아버지를 귀찮게 하겠지만, 그러나 아버지도 이미 22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비록 자주 찾아뵙지는 못하더라도 잠시 틈을 내어 어른들께 전화를 걸어드리자. 너무 늦기 전에. 있을 때 잘할 일이다.

중요한 약속이나 동창들과의 회식이 있더라도,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계신 부모님과 장모님을 성심성의, 지극정성으로 수발을 들기 위해 일정한 시간이 되면 항상 슬그머니 자리를 뜨는 한 후배를 볼 때마다 그 효성과 사랑에 존경스러움을 느끼며 진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오피니언타임스=안희진]

 안희진

 한국DPI 국제위원·상임이사

 UN ESCAP 사회복지전문위원

 장애인복지신문 발행인 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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