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의 너영나영]

야당은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민심과 동떨어진 정치를 하기를 바랄지도 모르겠다. 자기들이 집권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국민은 그렇지 않다. 이 대표가 바닥 민심을 꿰뚫는 정치를 하기를 바란다. 지금이라도 새누리당이 시대 정신에 맞춰 개혁적 보수 정당으로 탈바꿈하기를 희망한다. 금수저·흙수저론, 헬조선을 극복할 수 있는 대책도 내놓아야 한다. 미래의 청사진을 포괄하는 이념과 정책과 공약을 내걸고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를 바란다. 그래야 여야의 정책을 비교할 수 있고 실현 가능성도 높아진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정현 대표가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 오찬에 참석해 환하게 웃고 있다. ©청와대

이정현 의원(전남 순천시)이 보수정당의 첫 호남 출신 대표가 돼 정치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 당 사무처 직원으로 시작해 31년 만에 무려 17계단이나 오른 셈이라고 한다. 보수 정당의 머슴·비엘리트·비주류로서 그동안 기울인 각고의 노력과 결단력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 대표가 큰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과제가 있다.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박근혜 정권의 국정을 뒷받침해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다른 하나는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 관리자로서 좋은 후보를 뽑아 정권을 재창출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예전처럼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腹心)’, ‘내시’(內侍)로만 활동한다면 개인적으로는 선일 수도 있지만 새누리당에겐 악이다. 야당과 국민에게도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이 대표는 “대통령의 남은 임기 1년 6개월은 긴 기간”이라며 “대선 관리도 중요하지만 국가와 국민, 민생, 경제, 안보를 챙기는 것이 시급하다”고 했다. 또 “대통령과 정부에 맞서는 것이 정의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면 여당 의원 자격이 없다”, “여당이 야당이 돼 대통령과 정부를 대하려 한다면 자기 본분을 포기한 것”이라고도 했다. 박 대통령의 ‘복심’으로서 당을 확실하게 장악해 첫 번째 과제인 국정을 뒷받침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와 같이 수직적 당청 관계로는 당을 이끌어갈 수도 없고 야당과 협의하는 정치도 불가능하다. 이 대표 역시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는 “그렇다고 여당이 정부와 대통령에 무조건 협조만 하는 것은 아니다”며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 잘못된 방향의 정책이 있다면 국회에서 과감히 지적해야 한다”고 했다. “협조할 것은 협조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해 집권여당으로서 어떤 쪽도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수평적 당청관계로 바꿔 나가야 한다. 이 대표가 역량을 발휘해 자신만의 정치적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과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언도 해야 한다. 친박의 대표가 아니라 당 대표로서 계파 갈등을 수습해 나가야 한다. 비박의 협조 없이는 당을 제대로 꾸려나갈 수 없다. 그래야 대선을 앞두고 여러 목소리가 터져나올 수 밖에 없는 당을 화합으로 이끌 수 있다. 또한 여소야대 정국에서는 야당과 협치가 긴요하다. 필요하다면 야당의 안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각종 입법과 정책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다. 청와대의 일방 통행식 국정 운용을 받아들이는 ‘하청(下請) 정당’이라는 소리를 들어서는 정권 재창출이 불가능하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왼쪽)와 이정현 대표가 10일 국회 면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정치인들이 민생·경제·안보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정권창출이다. 내년 초부터 정치권은 대선 정국으로 급속하게 빨려 들어갈 것이다. 임기 2년의 이 대표는 중도에 하차하지 않는 이상 차기 대선 후보들의 경선을 관리하게 된다. 이 대표는 “지금 (새누리당 정권 재창출) 가능성은 제로”라며 “현재 선거를 치르면 정권을 내놓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유능한 대선 후보들을 영입해 치열한 경쟁을 통해 이길 수 있는 후보를 꼭 뽑아내겠다”고도 했다.

같은 생각을 토로하는 야당 정치인도 있다. 더민주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이종걸 의원은 한 인터뷰에서 “문재인 전 대표도 쉽게 대통령 후보가 되면 2002년의 노무현 드라마를 쓸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당내의 우월한 분위기 속에서 쉽게 후보가 돼서는 안 된다”며 “더 큰 선택과 자산이 뭉쳐서 하나의 용광로에서 강철이 나올 때 단단한 경쟁력의 후보가 나온다”고 했다. 그는 대선 후보 경선에 새로운 인사가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난한 후보는 무난하게 질 것’이라는 이 대표와 이 의원의 인식은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4·13 총선 당시 친박 인사들의 공천을 밀어붙였다가 참패했던 쓰라린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실상의 밀어주기식 사천은 국민에게 거부감을 부를 것이다.

이 대표가 당선한 뒤 친박 진영에서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대선 후보로 만들기 위한 시나리오의 첫 단추를 제대로 꿰었다는 소리도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공정하고 바른 경선 과정 없이 대선 후보를 결정하려 들면 다른 경선 주자들의 격렬한 저항과 비난에 부딪힐 뿐 아니라 국민에게 외면당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이 대표가 당선하자 크게 기뻐했다. 새 지도부를 초청한 청와대 오찬 회동에서도 이 대표를 맞으며 모처럼 활짝 웃었다. 하지만 이 대표는 대선 후보 경선 관리자로서 박 대통령과 절연하는 아픔도 각오해야 할지 모른다. 역대 집권당 대선 후보는 물론 대선 후보 경선 주자들도 현직 대통령과 차별화하지 않으면 당선하기 어렵다고 여겼다. 늘 “대통령을 밟고 넘어서야 선거에 이길 수 있다”는 강박이 있었다. 야당은 야당대로 현직 대통령이 중립적인 위치에서 선거를 관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그래서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 대표가 박 대통령 편만 든다면 정권 재창출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 대표의 특장은 어떻게 해야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지 아는 것이다. 박 대통령과 보수 정당의 불모지 전남 순천 주민의 마음을 얻어 비례대표 의원과 지역구 재선의원이 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제 이 대표는 작은 선과 큰 악, 작은 악과 큰 선을 식별하고 선택해야 할 어려운 일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가장 큰 선은 국민의 마음을 얻는 정치를 하는 것이다. [오피니언타임스=황진선]

 황진선

 오피니언타임스 편집인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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