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문화로 만나는 세상]

1위 선수가 모두 우승을 하고, 금메달을 땄다면. 리우올림픽은 아무 재미와 감동도 없었을 것이다. 그냥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고, 지구촌 모두의 축제이니, 화합의 마당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많은 선수들이 참가할 이유도, 사람들이 열렬히 응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승부는 이미 정해져있으니까.

스포츠만 그런가. 세상사가 다 그렇다. 1위가 언제 어디서나 1등을 독식하는 세상. 재미없다. 그런 곳에 사람들은 꿈도 꾸지 않고, 희망도 품지 않는다. 그런 곳은 변화도, 발전도 없는 ‘죽은 사회’다. 삶에는 때론‘기적’도 있고, 기적은 아니더라도 ‘이변’이라도 있어야 살맛이 난다. 그 주인공이 내가 아니더라도.

2016 리우올림픽에 출전한 선수의 메달이 빛나고 있다. ⓒ포커스뉴스

가장 실력 좋은 선수가 1등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럴 확률도 높다. 이번 리우올림픽에서도 각 종목에서 세계 1위인 선수가 예상대로, 실력대로 금메달을 많이 땄다. 육상에서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가 그랬고, 수영에서 미국의 펠프스가 그랬으며, 중국 탁구가 그랬다.

그들의 승리 역시 위대하고 아름답다. 우사인 볼트의 올림픽 3연속 3관왕, 펠프스의 올림픽 메달 기록경신, 진종오의 사격 3회 연속 금메달도 ‘1위’ 자리에 있어 저절로 얻은 것은 아니다. 뛰어난 기량과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과 꾸준한 자기관리의 결과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보다는 비록 객관적인 기량이나 평가에는 뒤지지만 혼신을 다해 도전에 나선 선수들의 승리에 더 열광하고, 감동한다. 스포츠는 그들에 의해 ‘각본 없는 드라마’가 된다. 올림픽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극적인 반전에서 대리만족을 얻고, 자신을 투영시키기도 하고, 나아가 삶의 용기와 희망을 발견한다. 그들의 환희와 눈물은 나의 것이 된다. 감정이입으로 나 자신도 보고, 깨닫지 못한 삶도 알고, 세상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기도 한다.

펜싱의 박상영을 가장 좋아한 이유, ‘희망’

우리 국민들은 이번 리우올림픽 한국선수 가운데 펜싱의 박상영에 가장 깊은 감동과 인상을 받았다. 최다 트윗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그가 세계 랭킹 21위라는 사실, 1점만 잃으면 패하는 결승전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주문을 걸며 투혼을 발휘해 마침내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는 모습을 보면서, 꼭 1등이 1등만 하는 것이 아닌 그런 기적이나 이변이 누구에게나 한번쯤 찾아올 수 있다는 희망과 언젠가는 힘을 다한다면 그 희망이 실현될 수 있으리란 믿음을 가진다.

펜싱의 박상영 선수가 금메달이 확정된 순간 환호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그렇다고 그 기적이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오는 것은 아니다. 박상영의 승리도 행운이 아니라, 땀과 노력과 긍정의 힘이다. 기적은 신의 선물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다. 마이클 루이스의 소설 ‘머니볼’은 ‘믿음’이 그 시작이라고 말한다. 가장 가난한 구단, 모두가 2류라고, 한물갔다고 하는 선수들로 미국 프로야구 사상 전무후무한 20연승이란 대기록을 세운 주인공인 오클랜드의 단장 빌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세상이 말하는 평가와 기준이 아닌 자신의 판단과 원칙을 믿었다. 그 믿음은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은 선수들의 장점을 살렸고, 그것을 위해 끝까지 기다려 주었고, 자신과 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100%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는 용기가 되었다. 누구도 자신을 새롭게 만들 수는 없지만, 변화시킬 수는 있다. 그 변화가 곧 ‘기적’이 된다.

베넷 밀러 감독이 브래드 피트 주연으로 영화로도 만든 ‘머니볼’은 야구 이야기가 아니다. 야구를 통해 인생을 이야기하고, 세상을 이야기한다. 어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각본이 없기에 누구에게도 미리 정해진 역할이나 길이 없으며, 누가 승자가 되더라도 멋진 드라마가 될 수 있으며, 그 기회 역시 누구에게나 있다. 그리고 패자라고 해서 그것이 끝이 아니다. 그 속에 아름다운 인생이 있고, 미래가 있다. 승자만을 위한 스포츠는 스포츠가 아니듯, 성공만 있는 인생 역시 인생이 아니다.

올림픽이 그래도 아름다운 이유, ‘기회’

ⓒ픽사베이

성적 지상주의와 어설픈 애국주의, 상업화에 몰든 올림픽이 그래도 아름다운 이유는 ‘기회’에 있다. 물론 모든 종목은 아니지만 가능한 많은 선수들에게, 한번 패한 선수에게 도전의 기회를 준다. 그 덕분에 세계 랭킹 34위인 푸에르토리코의 모니카 푸이그의 여자테니스 단식 우승이란 ‘이변’도 있었고, 억울한 심판 판정에 울었던 김현우의 동메달도 있었다.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종목은 골프였다. 116년 만에 부활했기 때문도, 박인비의 우승 때문도 아니다. 참가 선수 모두에게 중간 성적에 따른 컷탈락 없이 4라운드까지 뛰게 해준 것 때문이다. 비록 타수 차가 까마득해 정말 ‘기적’이 아니면, 메달이 불가능한 선수라 하더라도 끝까지 기회를 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올림픽과 스포츠 정신이 아닐까.

아프리카에서 중동으로 귀화한, ‘돈’ 냄새나는 육상 선수들의 금메달보다 여자 5000m에서 넘어진 뉴질랜드의 니키 힘블린과 미국의 에비 디아고스티노가 서로 부축하며 동행한 것이 더 아름다운 이유일 것이다. 4위로 꿈에 그리던 동메달은 못 땄지만 열악한 신체 조건과 훈련 여건에서도 자신의 열정과 땀을 모두 보여준 리듬체조의 손연재가 더 아름다운 이유일 것이다.

스포츠가 그렇듯 삶에서도 승리보다 훨씬 값진 것들이 있다. 그것들을 팽개치고 오로지 승리만을 좇고, 1등만이 살 수 있고, 승자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승자가 모든 것을 가지는 독식하는 사회에는 향기도, 드라마도 없다. 더구나 변화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 세상이라면. [오피니언타임스=이대현]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전 한국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저서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14세 소년, 극장에 가다>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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