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관의 모다깃비 감성]

새벽 세시였다.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여름 장사였기에 손님은 붐볐고, 마감을 한 뒤 에어컨까지 끄고 밖으로 나가자 금세 땀이 맺혔다. 발이 아팠고, 피곤했고, 돌아가면 해야 할 일이 몇 가지 남아있었다. 보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붉은 보도블록을 걸으며 든 생각은 그날 하루가 얼추 끝나간다는 것이었다. 청춘이란 내게 그런 존재였다.

©플리커

이십대 중반인 나의 나이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7080의 이십대보다 요즘 이십대가 훨씬 더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좋을 때였고, 고될 때였다. 보람차기도 했고, 부질없기도 했다. 끊임없이 나아가되, 돌부리들이 많이도 돋아나 있었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서문처럼, 내 상황들은 감정과 함께 들쭉날쭉했다. 졸업을 코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도 끊이지 않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면 환자지. 그럼 청춘은 환자인 거구나 생각했다. 난 앞으로도 이 상태가 지속되리라는 것에 별 의심을 두지 않았다. 쉬지 않고 달려온 것 같지만 아무 것도 이룬 게 없는 것 같을 때마다 점점 더 확신에 찼다. 오픈과 마감까지 정신없이 일하고 나면 시급들은 뒷주머니에 들어갔다. 성취란 게 주머니에 되바라지지 못한 위로처럼 담기는 게 청춘이라면, 나는 재벌에게 수십억을 받고서 떼어내 주고 싶었다. 비관이란 것은 알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이 새벽이라는 음험한 녀석 때문에 강제적으로 꺼내져 나온 것임을 알면서도, 힘이 부칠 때면 나는 대충 좌절했다. 대충.

‘짠’이란 상황을 유별나게 좋아한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우울했거나 거지같았던 모든 감정들을 보자기에 싸서는 창밖으로 냅다 집어던지는 느낌이었다. 술집에서 일을 하면서 허구한 날 진상들을 봐 와놓곤 내가 막상 자리에 앉으면 또 뻔뻔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소주잔이던 맥주잔이던 서로 잔을 맞부딪치기 전에 하는 말. 그게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술을 잘 하지는 못했고 되레 못하는 쪽이었지만, 한참 더 어렸을 적에 꿈꿨던 전지전능한 마법사처럼 나는 그 소리를 일종의 주문이라 생각하며 외치곤 했다. 핸드폰 대리점을 마주보고 있는 편의점에서, 애인과 헤어지고 난 이틀 뒤의 닭갈비집에서. 한밤중 놀이터 근처에서 가로등 불빛에 우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아니면 얼떨결에 만나버린 첫 눈을 보며.

©플리커

호프집은 경기를 타진 않았다. 호황기에 잘 나가니 술을 마셨다면 불경기엔 세상이 말세니 하고 술을 마시게 되는 곳이어서 짠 소리는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었다. 사랑을 잃은 남자와 험담을 하러 들어온 여자, 청춘을 찾는 아저씨와 노가리를 뜯는 할머니의 경계는 모호했다. 일 덕분에 취객들을 예전보다 더 싫어하게 되었지만,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술은 취하려고 마시는 거란 소리에 동감했다. 진탕 마시고 SNS스타만 되지 않으면 괜찮을 것이었다.

짠. 그건 실력이 있는데 돈이 없어서 학교에 제대로 가지 못한 내 중학교 동창이 내는 소리였다. 아는 형이 몇 년 째 시로 등단을 준비하며 내는 소리였다. 좀 더 배울 기회가 주어졌다면 훨씬 더 성공했을 선배가 당장에 취업을 해야만 했던 안타까움을 위로하는 소리였다. 썩 좋지 않은 상황도 잠시나마 뒤집을 것만 같은 역전의 소리였다.

즐겁지 않을 것만 같은 이야기들에게 억지로 활기를 집어넣는 건 싫으면서, ‘짠’만은 나의 이 모든 상황들을 긍정으로 무마시키는 것 같았다. 내가 또 술을 마시면 사람이 아니라고 맹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틀 뒤면 이모네 곱창집에서 볼 얼굴들이었다. 절주를 하겠다고 공개 선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얼마 뒤에 사람을 잃었단 이유로 주량의 두 배를 마시고선 쓰러졌다. 불타는 청춘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요일날 밤에 보면 젖어서 축축한 거적때기가 되어 있었다. 이 되도 않는 모순을 ‘짠’으로 웃어넘겼다. 짠이 뭐길래. 하지만 우린 짠을 위해서 사는 것처럼 모였다.

짠짠짠. 노래 같기도 하고 바닷물 같기도 했다. 뚱딴지 만화에나 나올법한 화려한 등장의 효과음 같기도 했다. 유치해도 움켜쥐고 싶은 것이었다. 재차 곱씹었는데 변하는 게 없는 가로등 아래서 나비가 되는 순간이었다. 여리되 강한 날개짓으로 펄럭일 때 나는 어렴풋이 나를 실감했다. 연말연시의 눈 내리는 횡당보도 위를 걸을 땐 집으로 가 노트를 펼치고 또 우렁찬 계획을 세우는 나를 그렸었다. 우리는 비애를 외치되 좌절하지 않았고, 비루하다고 느꼈지만 다시 긍정했다. 무언갈 달성해놓고 비참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좌절의 끝에서 태연하기도 했다.

나는 아직도 청춘이라는 것에 회의적이다. 모든 사람들이 충분히 누리지 못한 것이라면, 나 또한 사람이기에 같은 코스를 밟을지 모른다. 보이지도 않는 것에 집착하지 말지어다. 추상적이며 관념적인 것만큼 있어보이지만 실속이 없는 걸 찾긴 드물다.

하지만 혹여나 내 위의 사람들이 내 짠을 노리는 거라면, 그들이 바라는 청춘이란 게 우리들이 모여서 울고 웃는 공간이자 모든 걸 털어내듯 외치는 짠이라면 나는 주지 않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과 더불어 나의 모든 순간은 내일 밤의 짠이 될 수 있다. 우리의 모든 순간은 기타소리와 함께 빛을 내려 한 길잃은 별들이 될 것이다. 요란한 소리를 울리고 싶은 밤이 지나가고 있다.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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