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지난 8월 25일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의 저서 ‘특혜와 책임-한국 상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출판기념회에 갔었다. 사회학자로서 한국의 계층문제를 연구해온 저자는 책에서 한국사회의 상층부에는 다섯 가지가 없고(5無), 그것이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고 결론짓는다.

그가 말하는 5무는 무역사성, 무도덕성, 무희생성, 무단합성, 무후계성이다. 가난을 벗기 위해 악착같이 살다보니 생겨난 비뚤어진 정신 상태를 일컫는다. 요약하면 선대로부터 배운 것도 없고, 남을 배려하거나 남에게 봉사하고 남과 협력하는 정신도 없고, 권력을 잡으면 물려줄 줄도 모른다는 것이다.

송산 교수의 ‘특혜와 책임’ 책 표지©가디언 블로그

권력 재산 위신 중 하나 가졌으면 다른 것 넘보지 말아야

그는 한국의 상층부의 이러한 잘못된 정신 상태를 바로잡는 처방으로 사회적 삼권분립을 제창하고 있다. 누구나가 열망하고 추구하는 사회적 희소가치인 권력(Power), 재산(Property), 위신(Prestige), 즉 ‘3Ps’를 나눠 갖게 하자는 것이다.

가진 정도에 따라 여러 계층이 존재할 수 있지만 세 가지를 다 가졌으면 최상층이고, 아무 것도 가지지 못했으면 최하층이다. 세 가지 권력의 독점과 편중이 사회적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이므로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만큼은 세 가지 중 하나만 가지자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사회적 삼권분립이다.

권력을 가졌으면 재산을 탐하지 말고, 재산을 가졌으면 권력을 넘보지 말고, 학자 의사 언론인 등 위신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재산이나 권력을 넘보지 말라는 것이다. 1937년 생으로 대학 졸업 후 기자를 거쳐 대학에서 학자로서 학문의 외길을 걸어온 올곧은 저자만이 할 수 있는 제안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권력을 이용해 팔자를 고치려는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곳이 정치판이고, 돈으로 권력을 사겠다는 것이 재벌들이고, 위신을 이용해 권력과 금력에 줄을 대려는 사람들이 활개를 치는 곳이 교수 언론 사회가 아닌가?

‘권력형 비리’는 예외 없이 정권 말에 터져나온다. ©픽사베이

권력으로 재산을 늘리려는 ‘권력형 비리’, 예외 없이 정권 말에 터져

사회적 삼권분립이 붕괴된 사회를 풍자하는 말 가운데 ‘PPP 공식’이라는 것도 있다. ‘Power+Property=Prison(감옥)’이 그것이다. 역대 정권에서 권력형 비리로 감옥에 가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고 현재도 진행 중이므로 이 공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집권 초부터 시작된 권력형 비리로 국정의 동력을 잃은 정부도 있었고, 시기적으로는 예외 없이 임기 말에는 봇물 터지듯 불거졌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 말에 접어들었지만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권력형 비리가 노출되지는 않았다. 박대통령이 측근들의 비리 방지에 각별히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겨지긴 하나 남은 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필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가졌던 기대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국무위원 가운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군면제자를 임명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가진 부가 너무 많은 사람을 측근으로 두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었다. 전자에 대한 기대는 시작부터 완전히 망가진 채 현재도 진행 중이고, 또하나의 진행형 사건인 우병우 스캔들은 후자와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자에 대한 기대는 우리나라가 특별히 안보수요가 큰 나라라는 점과, 박 대통령 스스로 군 경험이 없는 데다, 군필자의 인재 풀이 면제자 풀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이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제기되는 병역문제 논란은 면제의 합법성 여부를 떠나 국민정서에는 물론 대통령의 이미지 전반에 나쁜 영향을 준다.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한 우병우(왼쪽 2번째) 민정수석 ©청와대

부자에 막강 권력까지 쥔 우병우 스캔들, 국민적 반감 작용

후자에 관해서도 대통령의 보좌진들이 가난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가구당 평균 순자산이 2억8000만원(2015년), 1인당 GDP가 3만 달러도 안 되는 나라에서 너무 큰 부자라면 서민들의 위화감을 자극할 소지가 있다. 고위공직자 평균 재산 24억원(2014년), 청와대 비서관의 평균재산 21억원(2015년)도 서민들과 차이가 큰데, 우병우 민정수석의 재산은 394억원이나 된다. 재산 형성 경위야 여하튼 나라로부터 충분히 혜택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사람에게 권력을 쥐어주는 것 자체가 과잉 혜택이다. 청와대는 우 수석에 대한 언론보도에 대해 가진 자에 대한 질시라거나, 대통령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보다는 부자가 돈과 관련된 비리에서 좀 더 안전하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했더라면 좀 더 그럴싸했을지도 모르겠다.

박 대통령은 우 수석에게 범법사실이 없는 한 바꿀 수 없다는 자세다. 그러나 우 수석 문제는 법률 차원을 넘은 정치적 문제다. 거대한 부를 가진 사람이 대통령의 측근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에 대한 국민적 반감의 표현으로 보는 게 맞다.

덜 부자인 사람 중에서 우 수석만한 사람을 찾자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터임에도 그를 보호하는 태도를 보이자 여론에선 박 대통령에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라도 있는 게 아니냐는 소리가 나온다. 고위 공직자의 병역문제나 재산문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사회적 삼권분립을 이루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역시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상층부 공직자만 잘 골라 써도 대통령은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겠기에 하는 말이다.[오피니언타임스=임종건]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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