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기수의 중국 이야기]

필자가 우리나라를 벗어나 다른 나라 땅을 처음 가본 것은 1985년 1월이었다. 당시 입사 3년차로서 처음으로 해외 출장을 가게 된 것이다. 타이베이와 홍콩, 일본이 목적지였다. 제주 상공을 벗어나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가 고도를 서서히 낮추기 시작했을 때인데 나는 지금도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화창한 날씨 아래 잘 정돈된 논 사이로 오토바이 한대가 질주하고 있었다. ‘여기에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넋을 놓고 한참 동안 눈으로 그 뒤를 쫒던 기억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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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간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그 후 2년이 지난 1987년 4월, 나는 홍콩 주재원으로 발령 받았다.

지금은 거의 잊혀진 말이 되었지만 4,50대만 되어도 ‘홍콩 간다’라는 말을 알고 있다. 속된 표현이긴 해도 ‘넋이 빠질 정도로 황홀하다’라는 말이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홍콩이 문란하고 퇴폐적인 도시로 알고 있고 나 역시 그렇게 알았다. 그러나 내가 부임한 홍콩은 대단히 보수적인 도시였다. 물론 홍콩 영화에 자주 나오는 화려한 나이트 클럽은 있었으나 대단히 비싸서 일반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은 아니었다. 그러면 우리는 왜 ‘홍콩 간다’고 했을까? 그 의문을 회사의 선배 한 분이 풀어 주었다.

그는 1960년 대 초 홍콩에 처음 출장 왔었다고 했다. 홍콩에 도착한 뒤 야경의 화려함에 넋을 잃고 밤새도록 거리를 배회했다고 한다.

홍콩은 좁은 지역에 단단한 지반을 기초로 하여 모든 건물이 하늘을 향해 솟아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변화의 여지가 적은 섬이다. 물론 중국 대륙과 연해있는 구룡 반도와 신계(新界)지역이 있지만 당시 선배가 다니던 곳은 좁은 의미의 홍콩, 곧 홍콩 아일랜와 구룡 쪽 일부이다. 변화의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은 당시의 홍콩이 지금의 홍콩과 큰 차이가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소방서 건물 정도가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60년 대 초의 서울과는 그야말로 천양지차여서, 처음 이 세계를 접했을 때의 충격으로 그야말로 ‘홍콩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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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부모 세대만 해도 외국은커녕 서울 구경도 못해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종합상사를 지원한 것은 이실직고 하자면 순전히 외국에 나가고 싶어서였다. 당시는 아무나 외국에 나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무역이나 외교 등 특별한 목적이 있는 극히 제한된 사람만이 외국을 나갈 수 있었고 회사에서도 여권은 인사 팀에서 일괄적으로 보관하고 있었다.

중국 칭다오(靑島)에서 승용차로 40분 거리에 화산(華山)이라는 골프장이 있다. 여기에 근무하는 20세 전후의 도우미들 대부분이, 태어나서 칭다오 시내를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놀란 적이 있다. 2000년 대 초 얘기이다.

이는 남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 조부모 세대만 하더라도 서울을 한 번도 구경 못하고 평생을 마치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삶의 터전이 얼마나 좁았으며 그 때에 비하면 이 세상은 또한 얼마나 넓어졌는가 보면 격세지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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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더라도 큰 세상 중국을 이해해야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대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여 본의 아니게 인생에서 뒤처진 세대를 보면서 인생에서도 줄을 잘 서야 함을 뼈저리게 느낀 적이 있다. 우리가 해외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은 서울 올림픽이 개최된 직후인 1989년부터이다. 그러니까 1989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 그들은 더 이상 우리나라 밖에 우리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에 넋을 놓는 사람들이 아니고 홍콩 거리에서 황홀경을 느끼는 사람들이 아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내 인생에서 상하이나 만리장성, 만주 벌판을 가 볼 수 있을 것으로는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이제 모든 것이 자유로워졌다. 맘만 먹으면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제약 없이 세계 어느 나라든 오고갈 수 있게 되었다. 분명한 것은 더 큰 세상을 보고 경험한 사람이 더 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5000년 역사를 부대끼며 살아 온 우리와 가장 가까운 중국을, 우리는 정확하게 40년 동안을 갈 수 없고 볼 수 없었다.

비록 불편하더라도 중국은 세계에서 으뜸가는 문명국가이고 대국임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우리는 중국에 대한 이해를 시작하여야 한다. 중국은 우리에게 더 큰 세상을 제공해 주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편견 없이 우리와 가장 가까운 큰 세상을 보고 느끼면서 더 큰 생각을 하면 되는 것이다. 더 넓은 세상이 있고 언제나 가고 느낄 수 있음에도 외면하는 것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던 우리의 선배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일이다. 더 큰 세상은 더 큰 꿈을 꾸게 한다.[오피니언타임스=함기수]

 함기수

 글로벌 디렉션 대표

 전 SK네트웍스 홍보팀장·중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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