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강남의 아하!]

공자(孔子)는 우리가 따를 행동 원리로 의(義)와 이(利)를 대조시킨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수행해야 할 올바른 일을 위해 사는 사람을 군자(君子)라 하고, 자기 개인이나 자기 집단의 이익이 되는 일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을 소인(小人)이라고 했다.

의보다 이만 좇는 세상… 사람을 수단으로 이용

지금 세계가 대부분 의(義)보다는 이(利)를 좇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부(富)하다는 나라에서 경제적 가치를 최고의 가치로 떠받들고 경제지수(GNP)에만 신경을 쓸 뿐 이른바 ‘행복지수’(GNH) 같은 것은 거의 무시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세계적 추세이기는 하지만, 새롭게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려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는 한국에서 이렇게 경제적 이(利)만을 추구하려는 열망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더욱 극심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을 사랑하고 물질을 이용하라는 기본 원칙과 반대로 물질을 사랑하고 그 물질을 얻기 위해 사람들을 이용하는 실정이다. 경제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경제를 위해 있는 것으로 믿는 사람들이 많다. 경제라는 신을 섬기며 경제 지표라는 신의 표정 하나하나에 따라 희비를 되풀이하고 있다. 공자님의 시각에서 보면,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의(義)를 위해 사는 군자나 대인의 나라이기보다 모두 이(利)에 올인하는 ‘소인배 공화국’인 셈이다.

맹자(孟子)도 마찬가지다. 맹자가 양나라 혜왕을 찾아갔다. 왕은 “선생께서 이렇게 불원천리하고 오셨으니 우리나라에 이(利)를 주시겠지요.”라고 했다. 이에 맹자는 왕을 향해 왕이 이(利)를 말하면, 지금 말로 해서, 장관·공무원·국민들이 모두 이를 좇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하면서, 왕은 어찌하여 인의(仁義)를 말씀하지 않고 “하필 이(利)를 말씀하십니까(何必曰利)?”라 했다.

지난 3월 유엔 SDSN가 발표한 ‘세계행복보고서 2016’에 따르면 한국의 행복지수는 지난해 47위에서 11단계 하락한 58위를 기록했다. ©포커스뉴스

사람의 본성인 측은, 수오, 사양, 시비지심 찾아보기 어려워

맹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우리 인간은 모두 ‘네 가지 실마리(四端)’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한다. 남의 아픔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惻隱之心), 나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싫어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 겸손하고 양보하는 사양지심(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맹자는 네 가지가 우리 속에 있어야 하는데, 이 중 하나라도 결하게 되면 우리는 “인간이 아니다(非人也)!”고 단언했다.

우리 주위에서 지금 남의 아픔을 보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나를 포함하여 일반인들은 물론 정치인, 종교인, 경제인, 사회지도자들 중 진정으로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고 ‘함께 아파함(compassion)’의 마음, 측은지심을 지닌 이들이 몇이나 될까?

자기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싫어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은 또 어떤가? 청문회를 보라. 위장전입을 하고 부동산 투기를 했지만 그것을 부끄러워하고 싫어하는 태도를 보이는 이도 별로 없다. 그것이 옳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조차 분간할 수 있는 시비지심(是非之心)조차 없는 것 같다. 어느 면에서는 그렇게 편법으로 사는 것을 ‘능력’이라 자부심을 갖는 것 같고, 일반인들은 이들을 욕하면서도 부러워하기까지 하는 것 같다.

©픽사베이

부끄러움 없는 국회 청문회… ‘비(非)인간’ 지도자 퇴출시켜야

자동차를 타고 가보라. 우리는 거의 모두 ‘양보는 곧 죽음이다’하는 식의 태도로 운전에 임한다. 양보는커녕 경적을 울려대거나 심지어 자기 마음에 거슬리면 보복운전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신념을 아침저녁 출·퇴근하면서 실천하고 확인한다. 이런 운전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에 사양지심(辭讓之心)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런 물음을 놓고 우리 스스로를 냉철히 돌이켜보면 우리는 지금 모두 비인간화(非人間化)된 사회에 살아가는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인 셈이다.

오늘 한반도에 사는 한민족이라면 모두 힘을 합해 이 소인배공화국을 군자공화국 내지 대인공화국으로 바꾸는 작업, 비인간화된 우리 스스로를 다시 인간이 되게 하는 인간화(人間化) 작업에 힘을 합해야 하리라. 그야말로 “공자 왈 맹자 왈”, 너무 고답적이고 추상적인 이상이라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이보다 더 근본적이고 시급한 과업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게 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지도층에서 이런 사단(四端) 중 하나라도 결한 인물이 발견되면 국민의 이름으로 이들을 지도자의 자리에서 단호히 퇴출시켜야 하는 것 아닐까.[오피니언타임스=오강남]

 오강남

서울대 종교학과 및 동대학원 졸/캐나다 맥매스터대 종교학 Ph.D.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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