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채연의 물구나무서기]

올해 6월 성 소수자들의 ‘퀴어축제’가 많은 논란 혹은 지지 속에서 열렸다. 최근 성 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과거보다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평등과 인권존중을 주장하는 많은 사람이 동성애를 비롯한 많은 성 소수자들을 존중하자는 의견을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이에 대해 조금 다른 시각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지난 6월11일 제17회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서울광장을 출발해 을지로일대를 지나며 퍼레이드를 벌이자 한 시민이 이를 규탄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포커스뉴스

사회이슈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이 축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매년 여름에 열리는 한국 최대 성 소수자 축제로 올해는 서울광장에서 개최됐다. 퀴어축제 참여자들은 파격적인 의상을 입거나 반라의 옷차림으로 돌아다니기도 한다. 또한 남성과 여성의 성기 등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상품들을 전시해 놓고 판매한다.

물론 이러한 행사가 그들만의 개별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축제의 참여자들끼리 충분한 합의가 되었다면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존중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이 행사가 광장과 길거리 같은 개방된 장소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나이 불문하고 시민들은 단지 ‘축제가 열리는 길’을 통행했다는 이유로 이를 강제로 보게 된다. 퀴어축제를 접한 수많은 사람이 성적 수치심과 이에 대한 혐오감을 토로한다. 아직 올바른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미성년자는 이 행사를 보고 그릇된 성 인식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퀴어축제를 통해 시민들은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을 권리’를 강제로 침해당한다. 이는 엄연히 강요이자 폭력이다. 소수자들이 자신들의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고, 이는 이들이 소수자라는 이유로 보호받을 수 없다.

퀴어축제는 성 소수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어쩌면 거의 유일한 날이다. 성 소수자들의 축제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축제가 진정으로 이상적인 사회를 지향한다면, 축제 참여자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지금의 퀴어 축제는 많은 사람에게 불쾌감과 수치심을 주고 인권침해와 같은 피해를 낳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이 분명히 개선돼야 할 것이다. 축제 주최자들이 문제점을 자각하고 보완점을 찾아간다면, 더 많은 사람에게 응원받는 건전한 행사가 되리라 생각한다.

진정한 연대를 위해 소수자는 비소수자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비소수자는 소수자의 ‘다름’을 인정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픽사베이

물론 소수자에게만 변화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비소수자 또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동성애를 포함한 성 소수자들은 비정상이 아니다. 단지 타인에 대한 끌림과 기호의 차이일 뿐이다. 즉, 소수자는 비소수자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는 찬성이나 반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동성애와 이성애는 그저 성적 기호의 차이이며 취향은 개인의 고유한 것이다. 이는 애초부터 공공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그저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진정으로 우리 사회가 연대하고자 한다면, ‘성 소수자를 존중한다’는 개념이나 인식이 타당한지 또한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소수자들은 소수라서 존중받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존중받는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 개인의 취향은(성적 취향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을 포함하여) 앞서 말했듯이 존중받는 차원의 것이 아닌, 지극히 당연하고 기본적인 권리다. ‘소수자이기에 존중한다’는 말의 의미는 본질적으로 비소수자들이 약자인 소수자에게 관용을 베푼다는 뜻을 담고 있다. 어쩌면 이는 비소수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이나 우위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어 기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희들의 성적 취향을 존중해’라는 정의로워 보이는 말들로 비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잠재워버리는 것이다. 이는 결국 ‘평등’으로 포장된 불평등이다.

‘다름’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문제들은 소수자와 비소수자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다. 진정한 평등과 연대를 지향하고자 한다면, 소수자 혹은 비소수자 한쪽만이 아닌 함께 상호보완하며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단순한 수적 개념의 소수자는 존재하더라도 소수자의 의미가 더는 ‘다수에게 차별받고 억압받는 존재’로 사용되지 않았으면 한다.[오피니언타임스=송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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