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요섭의 동호지필]

신체상의 이유로 군 복무를 2년간 사회복무로 하게 됐다. 내 직무는 지자체 사회복지업무보조였고 기초수급자, 차상위계층들을 주민센터에서 매일같이 뵙곤 했다. 복지실현의 현장 어귀에 내 작은 공간 하나 마련한 뒤 하루하루 만나는 얼굴들은 다양했다. 거동이 불편한 참전유공자 할아버지, 장애가 있는 할머니 등이 단골이었다. 노년의 어르신들이 무겁고 무뎌진 몸을 힘겹게 이끌고 방문했을 때 가끔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다. 그들이 지금껏 안고 살아온 삶의 무게가 얼마나 버거웠을까 하는 주제 넘는 감정을 가진 적도 있다.

©픽사베이

사실 내가 이렇게 타인의 삶에 반응하게 된 이유는 나 또한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오른쪽 눈의 실명 진단을 받았다. 시력이 죽어버린 보통의 시각장애와 달리 검은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극심한 사시까지 겹쳐 외관상으로도 보기 흉했다.

“야 저기 사팔이 지나간다.”
“눈 봐라. 완전 징그럽다.”

어릴 적 나는 동네에서 ‘사팔이, 눈 병신’으로 꽤 유명한 녀석이었다. 동네 바보 형, 동네 떠돌이 개와 같은 그 정도의 인지도는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또래들뿐만 아니라 동네 어른들도 나를 눈 아픈 애로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22살 때 마지막 안구 성형수술을 끝으로 비로소 외관은 다소 회복됐지만 어린 시절 당한 폭력과 따돌림, 도망치듯 했던 자퇴, 어머니의 눈물까지 봐야 했던 잔인한 순간들은 아직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러한 경험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을 바꾸어 놓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 반쪽짜리 눈은 언제나 약자의 모습을 더 많이 담아왔다.

“우리 아들요. 연락도 안 해요. 여기 직원들이 아들보다 나아요. 훨씬 나아요.”

어느 할아버지께서 배급품을 받으러 오며 하셨던 말씀이다. 본인 확인 차 할아버지의 신분증을 건네받았을 때 마음속으로 작은 탄식이 나오고 말았다.

‘이런 분이 왜.’

녹색의 국가유공자증이었다.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분명 6.25 전쟁이나 월남전 참전용사일 것이다. 할아버지뿐 아니라 모든 생존해 있는 참전용사들은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이미 영면한 선열 못지않은 혹은 그보다도 더한 고통을 처절히 겪었을 것이다. 이런 희생에 대한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든가, 굳이 몇 등급으로 그 희생의 정도를 나눠 차등지원을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나름의 행정적, 재정적 이유가 있겠지만 감히 후세대인 우리가 그 고통을 재단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한탄이 들었다. 그런 연유로 작은 일이라도 어르신들을 도울 기회에 갈증을 느끼고 있을 무렵, 용기낼 기회가 찾아왔다.

©픽사베이

우리 관할 수급자 중에 주민센터에서 내놓는 폐지를 수거해 가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수레에 폐지 싣는 것을 도와드리려 해도 매번 미소와 함께 거절하시는 여전한 숙녀였다. 한번은 주민센터 2층 새마을문고의 비치도서를 새 책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게 됐는데, 헌 책은 다행히 할머니가 가져갈 수 있게 됐다. 그때 몇 년 전에도 비슷한 작업을 할 때 몇 수레 분량의 헌 책을 고물상에서 고작 8000원밖에 받지 못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고물상에서 그 책들을 책이 아닌 폐지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우리 동엔 헌 책을 사는 곳이 없고, 이 책들을 손수레로 옮기기엔 무린데 어떡하지?’

속으로 고민하며 안타까움이 목을 간질이던 순간, 용기를 내어 주민센터 사무장님께 관용차량을 타고 보수동 책방골목으로 갈 수 있게 허락해 달라 말씀을 드렸고 사무장님께선 재량으로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주셨다. 그렇게 책방골목에 헌 책을 팔아 폐지 값보다 몇 배나 많은 금액을 할머니께 드릴 수 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 내 옆자리에서 할머니는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어쩌면 그 차로 하루 종일 할 수 있는 일보다 그 잠깐의 시간 동안 훨씬 가치 있는 일을 하지 않았나 하는 뿌듯함과 함께 내 작은 목소리의 큰 힘을 실감했던 기억이 난다.

상당수 어르신들은 살아남는 것이 곧 삶이었던 전쟁세대, 산업화세대였다. 삶에 떠밀려 준비 못 한 노년을 그들은 지금 뒤안길에서 보내고 있다. 뼈아픈 역사를 곱씹어보면 청년이라는 후세대들의 원죄는 더욱 선명해진다. 우리 앞의 생에 그저 고개 숙여 경의를 표시할 뿐이다. 다만 작은 목소리를 냈던 경험을 평생 기억하고 용기 내어 행동으로 실천하고자 한다.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가고 있다. 후세대가 살아갈 터전을 닦아놓은 것만으로도 소중하고 또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 사실은 결코 변함이 없다. 다만 그 소중함이 간혹 삶에 짓눌려 무뎌지려 할 때 손을 뻗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청년의 역할임을 사회복무 중에 겪은 경험들을 통해 깨달았다.

어쩌면 우리 청년들의 손길은 쉽게 부러지는 연필처럼 미약할지도 모른다. 펜과 달리, 연필로 쓴 글은 쉽게 지워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많은 청년들이, 수많은 연필들이 똑같은 글을 수십 번, 수백 번 거듭 적는다면 지우개로 아무리 지워도 그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청년들 중 한사람으로서, 지금 가슴팍의 내 작은 연필 한 자루 꺼내어 어르신들께 적어드려야겠다. 당신께서는 지금 그 자체로도 충분히 찬란한 존재라는 사실을. 그 찬란함이 더는 흐려지지 않게, 그들을 지켜나가는 청년이 되고 싶다.[오피니언타임스=조요섭]

 조요섭

어쩌면 미학이란 것은 노동자에게 주어진 빵과 우유보다 훨씬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느낀 이후로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려 하는 사람입니다.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