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따듯한 생각]

스무 살이 되고 좋은 것은 딱 하나였다. 몰래 피우던 담배를 더 이상 눈치 보지 않고 피울 수 있게 된 것. 스무 살의 봄이 나에게 왔을 때 엄한 아버지의 눈을 피해 학교 사물함에 담배를 넣어 두던 나날은 멀어진 지 오래였다. 지나가는 담배 냄새에도 눈을 찌푸리던 나였지만 입시의 압박은 그 무엇보다도 무거웠다. 때문에 지난 일 년은 니코틴 냄새로 잔뜩 질척거렸다. 아버지는 수많은 제자들을 거느린 존경받는 교수님이셨기에 나의 열아홉은 그 어느 해보다 뜨거웠음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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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아버지의 전공을 따라 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며 쉽게 이야기했다. 이미 모아놓은 방대한 양의 자료와 책장을 빼곡하게 채운 논문들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숫자와 화학 용어들이라면 이골이 나서 수없이 들은 그 말을 단 한 번도 곱씹어보지 않았다. 아버지는 대학에 재직 중이신 만큼 나의 대학 진학에 온힘을 쏟으셨다. 하지만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든 수시를 떨어지고 정시에서 추가합격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서 애를 태우던 어머니는 내 수능이 끝난 후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갔다. 모태신앙이셨던 어머니가 말이다. 어머니 말에 의하면 점쟁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기가 센 두 부모 사이에서 애가 불에 타 죽겠구나. 불기둥 사이에서 애가 혼자 앓아.”
결코 틀린 말이 아니라 나는 그저 쓴웃음만 짓고 말았다.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로 불에 타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재수를 면했고 아버지는 내가 진학한 학교를 만족스러워하지 않으셨다. 때문에 새해가 밝았음에도 나는 친척들을 만나러가지 않았다. 교수가 된 장남의 장녀가 고작 전문대라니 친척들이 왈가왈부할 말들은 불 보듯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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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린 겨울이 지나고 잔설이 녹지 않은 초봄, 나는 서툰 스무 살이 되었다. 스무 살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본 것처럼 꽃잎이 날리지도 마냥 설레지도 않았다. 그저 집에서 멀고 규모가 큰 학교를 다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딱 하나, 나는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타고 가는 지하철이 좋았다. 숨 쉴 수 없을 만큼 답답하고 이따금 진한 향수 냄새가 코를 찌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순간이면 내가 더 이상 어른들 손에 이끌려 다니는 미성숙한 어린 아이가 아니라고 확답 받는 것만 같았다.

이러한 나의 소소한 즐거움은 무더운 여름이 되고 방학이 시작되며 사라져버렸다. 아버지의 뜻을 져버리고 내가 원한 전공을 택한 만큼 첫 학기 학점은 꽤 좋게 받을 수 있었다. 다만 내가 꿈꾸던 여름 방학은 없었다. 방학 시작과 동시에 나는 신촌에 있는 토익 학원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입학을 망쳤다면 좋은 곳에서 졸업을 하면 된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귓가에서 윙윙거렸다.

편입, 편입을 위한 토익 점수. 토익 강의실은 마치 달걀 한 판 같았다. 모두들 제자리에 앉아 미동도 없이 부화하려 애쓰는 것처럼 말이다. 토익 점수를 높게 받는다 한들 과연 더 단단한 알을 깨고 날아오를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두 시간의 토익 강의 시간 동안 잔뜩 경직된 몸과 무미건조한 표정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화이트보드 앞에선 강사는 딱 하나만 가르쳐준다. 답을 찾는 방법. 빠른 시간 안에 모든 답을 찾는 방법 말이다. 강사가 수업을 할 때면 나는 아버지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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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했다. 그는 긴 세월 동안 똑같은 상황이 와도 같은 선택을 할 만큼 후회없이 살아왔다. 아버지는 평생을 답이 없다면 답을 만들어내는, 원리를 명확하게 짚어내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 나는 종종 엄청난 변수가 존재하거나 정답이 아니라 오답이라면 어떻게 될까라는 의문을 품곤 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답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것은 결코 그저 내가 토익 공부에 심신이 지쳐 토로하는 말이 아니다. 아버지의 짙은 그림자가 내게 드리울까 두려워 제대로 된 질문조차 하지 못한 어린 날들. 아주 갑작스럽게 빛바랜 지난날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듯했다. 이는 분명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온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일 것이다.

주말이면 몰래 참가하던 백일장과 책가방을 메고 다녀오던 기자단 모임, 높게 쌓인 문제집 아래 숨겨둔 서평 활동 노트들이 떠올랐다. 내가 아버지에게 단호히 말하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원하고 바란 것들은 모두 명확한 답이 없어서다. 오늘 읽고 내일 또 읽으면 다르게 와 닿는 구절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계속해서 아버지에게 어떤 질문도 하지 않는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까. 나는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여전히 침묵을 지킬 자신이 없다. 때문에 다시 펜을 들어 글을 쓴다. 정확한 답을 원하는 아버지를 위해, 가장 명확하고 논리적으로 내 뜻을 전하기 위해서 말이다.[오피니언타임스=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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