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 & 마케팅]

한가위를 보내고 이참에 손님에 대한 생각을 해보자 싶어 제목과 같은 화두를 잡았다. 태양의 서커스 명작인 ‘퀴담’으로 손님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태양의 서커스는 캐나다의 거리 공연자 기 랄리베르테가 1984년에 퀘백시 근처 작은 마을에서 설립한 서커스 회사이다. 전통적 서커스의 통념을 바꾼 블루오션 사례로 통한다.

태양의 서커스 ‘퀴담’ 공연자들이 멋진 묘기를 선보이고 있다. ©마스트엔터테인먼트

그 회사의 1996년 첫 작품이 ‘퀴담(Quidam)’이다. 퀴담은 라틴어로 익명의 행인이라는 뜻인데 트렌치코트에 머리가 없는 모습으로 외로운 소녀 조(Zoé)에게 나타나 그녀를 환상적인 퀴담의 세계로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그를 통해 조와 조의 부모는 화해와 사랑의 가치를 배우게 된다. 한국에선 2007년에 처음 공연됐다. 태양의 서커스 중 최고의 스토리텔링과 이브 음악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그런데 내가 퀴담에서 느낀 것은 좀 엉뚱한 것이었다. 뭐냐 하면, ‘퀴담처럼 위대한 손님이 오고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이건 확실히 직업병인 것 같기는 한데 ‘위대한 손님’ 이론은 현실에서는 확실히 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손님을 맞는 서로 다른 인재들

손님에 관한 테마는 성경 마태복음 25장에도 나온다. 나는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그 이야기에 울림이 있어 소개한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 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 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픽사베이

이를 응용하면 세상에 세 종류의 인재가 있음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익명의 손님을 기름과 등으로 준비하는 믿음의 인재, 믿지만 준비는 없는 어리석은 인재 그리고 마지막으로 손님에는 관심도 없이 자기에만 빠진 타입.

퀴담과 신랑 비유를 들어 손님과 세 가지 인재 타입을 이야기했는데 실제로 우리 현실에는 숱한 손님들이 온다. 그 손님은 그 손님은 비인격적인 것이거나 인격적인 손님이다. 시대이기도 하고 사건이기도 하고 친구나 적, 상사나 부하이기도 하다.

좋은 손님, 이상한 손님, 나쁜 손님

2008년 김지운 감독의 영화 ‘놈놈놈’ 비유를 들자면 누구에게나 좋은 손님도 오고 나쁜 손님도 오고 이상한 손님도 온다. 내 경험으로는 좋은 손님 10%, 이상한 손님 20%, 나쁜 손님 40% 정도로 오는 것 같다. 나머지는 왜 왔는지 모르겠는 손님이다. 그러나 이들 손님을 가리기는 생각보다 힘들다. 손님을 맞이한 서로 다른 두 기업의 사례를 보자.

‘스포츠 이벤트 에이전트가 A카드사를 찾아갔다. 미모의 러시아 테니스 선수 마리아 사라포바 초청 테니스 경기를 주최하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바로 거절당했다. 카드회사하고 테니스 선수하고 무슨 상관이냐는 이유였다. 에이전트는 이번엔 B 카드회사를 찾아갔다. 당시 신생 카드회사였다. B카드회사는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슈퍼 매치’ 시리즈다.

2005년 9월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려 큰 화제를 모은 샤라포바 VS 윌리암스 슈퍼매치 이벤트 포스터. ©현대카드

마리아 사라포바와 비너스 윌리엄스의 맞대결은 큰 화제를 일으켰고 이 슈퍼매치는 그 후 슈퍼콘서트, 시티브레이크 등으로 확장되어 갔다. 수많은 고객과 잠재고객들이 슈퍼 시리즈의 문화적 혜택을 받았고 그 카드회사는 사랑을 받는 기업이 되었다. 사실인지는 모르나 후일담이 돌았다. 슈퍼매치가 이슈가 되자 A카드사 중역이 제안을 거절한 담당에게 왜 보고도 하지 않았느냐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담당자는 “그런데, 제가 하자고 했으면 과연 했을까요?” 독자들은 아마도 B카드 회사가 어느 회사인지 알 것이다.

90년대 히트작이었던 하이트 맥주에 대해 업계에 돌았던 소문도 손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준다. 90년대 마케팅 성공 사례였던 ‘지하 500미터 천연 암반수로 만든 맥주’ 안은 결정이 어려워 보류 상태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회사에 외국인 고문이 왔고 그가 적극적으로 밀어서 비로소 빛을 보았다는 소문이었다.

등불과 기름 그리고 믿음을 준비하라

그런데 아무리 위대한 손님이 와도 해당 기업 내에서 미리 준비한 무언가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손님은 손님일 뿐이므로. B카드회사가 만일 무언가 새로운 것(그 카드회사의 ‘First than Better’ 정신)을 해보겠다고 하지 않았다면 마리아 사라포바 건은 슈퍼 시리즈로 확대 발전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하이트 맥주 회사 내부에 그런 기획안이 없었다면 외부 고문도 어려웠을 것이고 퀴담이 왔어도 조가 손을 내밀지 않았으면 조는 퀴담의 세계로 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내부 준비가 선행되어야 손님이 위대한 힘을 발할 수 있다.

©픽사베이

지금 한국의 토종 컨설팅 업계가 위기인데 이것도 손님을 맞는 문화와 맞물려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 특파원으로 온 외국의 모 기자가 최근에 썼듯이 한국은 남(전문가, 위대한 손님)의 말을 듣지 않는 문화가 심하기 때문은 아닌가? 그 외국기자에 의하면 한 외국인 은행장이 컨설팅을 받고 그에 따라 착착 진행하는 것을 본 한국의 시중은행장이 깜짝 놀라더니 “우리도 똑같은 컨설턴트를 기용했지만 자문 내용을 실천한 적은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기자가 이해할 수 없던 것은 또 있다. 기자의 아내는 요리 관련 상담과 자문도 해주는데 자문료가 매우 적거나 심지어 식사 한 끼로 때우더라는 것이다. ‘우리가 남이가’ 하면서 연고가 있는 사람 말만 믿고 정작 위대한 손님의 말을 무시하는 문화에 대한 그의 성토가, 한국 일이 아니라고 나는 차마 말 못하겠다. 지금 여러 군데서 동시에 터지고 있는 한국의 어려움이 혹시 위대한 행인의 말을 듣지 않아서 온 것은 아닐까. 지금이라도 등불에 기름을 준비해서 위대한 손님을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오피니언타임스=황인선]

 황인선

 브랜드웨이 대표 컨설턴트

 문체부 문화창조융합 추진단 자문위원

 전 KT&G 마케팅본부 미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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