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진의 지구촌 뒤안길]

50일도 채 남지 않은 2016년 미 대선이 다시 승패를 점치기 힘든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잇단 막말 파동과 대통령으로서의 자질 부족 논란으로 공화당 후보 지명이라는 이변을 일으킨 것이 한계라는 지적을 받았던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왔다. 트럼프는 이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승패를 점치기 힘든 박빙의 접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달여 전만 해도 20%에도 미치지 못했던 트럼프의 대선 승리 확률은 40%로 올랐다. 트럼프가 클린턴을 앞서고 있다는 여론조사도 발표되고 있다. 미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여론조사에서 트럼프가 47.7%의 지지율로 41%의 클린턴을 6.7%포인트 차이로 앞선 것이다.

힐러리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 ⓒ게티이미지/포커스뉴스

50일 앞둔 미 대선 박빙 양상… 일부 여론조사에선 트럼프가 앞서

반면 클린턴의 지지율은 계속 곤두박질치고 있다. 클린턴은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60%로 여전히 트럼프를 앞서고 있다. 미 대통령을 확정지을 선거인단 수 확보에서 그녀가 우세하다는 분석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하지만 대선 승패를 좌우할 이른바 접전지역 주들에서의 두 후보 간 지지율 변화는 클린턴 선거진영의 우려를 부르기에 충분하다.

미 대선의 풍향계로 꼽히는 오하이오주에서 오차범위 내이기는 하지만 트럼프가 클린턴을 제쳤다.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접전 주들에서 트럼프가 클린턴에 앞서거나 조금 뒤처지더라도 오차범위 내의 간발의 차이일 뿐으로 사실상 우열을 가르기 어려운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클린턴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은 민주당 내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버니 샌더스 버몬트주 상원의원을 열렬히 지지했던 젊은 유권자들이 클린턴에게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장년층과 노년층에서 트럼프 지지 성향이 강한 점에 비춰보면 젊은 유권자층의 이탈은 클린턴에게 위기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힐러리 클린턴이 지난 11일 뉴욕 ‘9·11 테러 발생 1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뒤 수행원의 부축을 받으며 차에 타고 있다. ©유튜브 영상 캡처

젊은 유권자들 클린턴에 등 돌려, 건강과 신뢰성 문제로 타격

이런 현상은 두 가지 측면에서 클린턴에게 뼈아픈 타격이 되고 있다. 첫째는 미 대선의 예선격이라 할 양대 정당의 당내 경선을 마치고 전당대회에서 공식지명된 두 후보 간 정면대결이 본격 시작되는 9월에 줄곧 앞서오던 클린턴의 기세가 꺾였다는 점이다. 나머지 하나는 클린턴의 기세가 꺾인 이유가 그녀로서는 끝까지 피하고 싶은 2가지 취약점과 관련돼 있다는 점이다.

클린턴은 지난 11일 뉴욕에서 9·11 테러 발생 15주년 기념식장에 참석했다가 몸이 좋지 않아 예정보다 일찍 기념식장을 떠났다. 하지만 그녀가 부축을 받으면서 자동차로 이동하고 비틀거리며 힘겹게 자동차에 올라타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SNS에 노출되면서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의혹을 불러야만 했다. 여기에 클린턴이 이미 이틀 전 주치의로부터 폐렴 진단을 받았던 사실도 뒤늦게 밝혀졌다. 유권자들에게 건강과 관련한 중요한 사실을 숨겼다는 의혹이 당장 제기됐다. 공화당 측에서는 클린턴이 더 중요한 또다른 사실들을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맹공을 퍼붓고 있다. 대통령 후보로서 클린턴의 신뢰성에 큰 타격이 입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건강과 신뢰성 모두 대통령 후보로선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클린턴은 14일 자신의 건강 관련 정보를 추가 공개하며 건강을 둘러싼 의혹 해소에 나섰다. 이와 함께 트럼프 역시 건강과 관련한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고 있지 않다며 투명성과 관련해서는 클린턴이 과거 어떤 대선 후보보다도 더 투명한 반면 트럼프는 과거 어떤 후보보다도 더 투명하지 못하다며 역공에 나섰다. 건강과 관련해서는 트럼프 역시 클린턴을 공격할 만한 처지는 아니며 자신이 트럼프보다 더 많은 건강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있으며 불투명성으로 따지자면 트럼프가 훨씬 더 숨기고 있는 것이 많다는 클린턴의 주장이 틀린 것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픽사베이

트럼프 숨기는 것 많아… 공직생활로 검증된 클린턴이 자격 더 갖춰

클린턴으로서는 자신이 믿을 수 없고 숨기는 게 많은 후보라고 비난받는 것이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통령 후보의 신뢰성 문제는 물론 매우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납세 의혹을 비롯해 경쟁자인 트럼프 후보가 오히려 더 숨기는 게 많다는 의혹이 더 큰 것이 사실이다. 개인 이메일 사용, 클린턴 재단에 대한 의심스러운 기부금 등 클린턴으로서는 의혹이 제기된 모든 사안들을 뒤늦게라도 모두 공개했다. 트럼프와 관련된 의혹들에 대해선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 반면 자신만 공격과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클린턴은 생각할 수 있다.

사실 클린턴에 대한 비난은 그녀가 사상 첫 여성 대통령 후보이기 때문에 더 증폭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성들에 대한 최후의 유리천장이 부서지는 것을 보는 것은 많은 보수 성향의 미 유권자들에게 못마땅한 일일 수도 있다. 클린턴은 이미 오래 전부터 여권 증진과 소수자 보호에 힘써 왔다. 미국 사회의 주류에 속해 있다가 점점 외곽으로 밀려나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저소득 백인 남성 노동자들에게 여권과 소수자를 내세우는 클린턴이 마음에 들리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 미 대선은 오래 전부터 최선의 후보를 뽑기 위한 것이 아니라 최악의 후보가 당선되지 못하도록 피하는 것이 목표인 것처럼 됐다. 어차피 차악의 후보를 뽑기 위한 선거라면 여성 차별과 인종차별, 증오와 대립을 부추기며 자질 부족 논란을 일으키는 트럼프보다는 백악관 안주인과 상원의원, 국무장관 등 오랜 공직을 거친 클린턴이 미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을 충분히 더 갖췄다고 할 수 있다. 신뢰성에 타격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트럼프보다는 클린턴이 더 낫다.[오피니언타임스=유세진]

 유세진

 뉴시스 국제뉴스 담당 전문위원

 전 세계일보 해외논단 객원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독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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