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철의 석탑 그늘에서]

흔히 ‘신라 천년의 고도(古都)’라 일컫는 경주에는 1만 2800 채 남짓한 한옥이 있다. 그런데 최근 규모 5.8의 강진이 덮치고 여진이 이어지면서 전체 주택의 20%에 이르는 2031 채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실제로 기와가 흘러내려 붉은 황토가 거칠게 드러난 지붕의 모습은 마치 ‘한옥은 지진에 약하다’고 외치고 있는 듯하다. 

지난 20일 경주의 한 한옥집 기와가 지진으로 파손돼있다. ©포커스뉴스

경주 지진으로 한옥의 기와 흘러내렸지만 인명피해는 없어

경주시는 한옥보전지구에 한옥을 새로 짓는 사람에게는 최고 1억원을 지원한다. 보전지구 밖이라도 최고 7000만원을 지원해 역사 도시다운 ‘스카이라인’을 만들려 한다. 이런 노력에 따라 대릉원이 있는 황남동은 전체 가옥 3317 채 가운데 1658 채가 전통 목조건축인 글자 그대로의 한옥마을이 됐다. 그런데 이제는 경주에서도 가장 지진 피해를 많이 입은 공포의 마을로 각인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시각을 달리해 보자. 물론 한옥은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 지진에 이어 태풍이 한반도를 스쳐 지나면서 주민들은 더욱 노심초사해야 했다. 기와가 떨어져 나가 지붕은 흉물스러운 모습을 연출했고, 당연히 빗물도 스며들었다. 하지만 기와가 무너지는 그 순간에도 집안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안전했다.

그렇다. 우리 전통 목조건축은 어떤 구조의 주택보다 지진에 안전하다. 한옥도 7.0 이상의 강진이 닥치면 기와가 흩어지고 벽체가 뒤틀리며 기울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꺼번에 무너지는 일은 좀처럼 없다. 지붕을 높고 화려하게 장식하느라 늘어난 하중을 감당해야 하는 사찰의 큰 법당이라면 걱정은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가벼운 지붕을 이고 있는 민가(民家)라면 안전성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20일 대전 선암초등학교 학생들이 지진대피 요령을 교육받고 있다. ©포커스뉴스

목조 건물은 진동 흡수해… 벽돌 건물보다 지진 피해 적어

실제로 목조 건축 문화권은 벽돌 건축 문화권보다 지진 피해를 적게 입는다. 지난달 24일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 주에서 발생한 규모 6.2의 지진으로 사망한 사람은 20일 현재 297명에 이른다. 가장 피해가 컸다는 산간도시 아마트리체의 지진 직후 사진을 보면 부서진 건물은 대부분 2~3층 벽돌집이다. 원래 모습을 짐작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부분의 집들이 처참하게 무너졌다. 지진 규모에 비해 피해가 심각했던 것도 진동에 취약한 벽돌 구조 때문이다.

우리 전통 목조건축은 주춧돌 위에 수직 부재인 기둥을 세우고, 기둥머리와 기둥머리 사이에 수평 부재인 보를 질러 큰 틀의 골격을 형성한다. 이 기본 골격에 벽체를 세우고 지붕을 씌우면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집이 완성된다. 그런데 전통 건축은 기둥을 주춧돌 위에 올려놓을 뿐이지 접합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지진이 일어나도 진동을 유연하게 흡수한다.

이같은 목조 건축의 내진 성능은 1964년 알라스카 지진에서도 확인됐다. 규모 8.4의 지진이 앵커리지 인구 밀집지역을 강타해 많은 건물이 무너지고 다수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목조 건물은 붕괴된 경사지에서 미끄러져 내려가거나, 지반이 이러저리 뒤틀리는 상황에서도 구조완전성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1995년 고베를 중심으로 일어난 한신 대지진은 무려 6000명의 사망자를 냈다. 이런 상황에서도 철골 구조로 지은 고층 건물과 2~3층의 현대식 목조 건물은 육안으로는 피해를 확인할 수 없을 만큼 멀쩡했다고 한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지은 건물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전통적인 목조 구조를 따른 것도 아니고, 과학적인 현대 건축 구조도 따르지 않은 날림 건물은 지진에 취약할 수 밖에 없었다.

©픽사베이

벽돌로 지은 짝퉁 한옥은 지진에 더 취약

경주의 경우에도 건축 전문가들은 이 점을 경고한다. 한옥처럼 보인다고 다 한옥은 아니라는 것이다. 주춧돌, 기둥, 보가 유기적으로 유연성을 발휘하는 전통 한옥은 당연히 높은 내진 안전성을 갖는다. 하지만 벽돌이나 시멘트 블록으로 벽체를 쌓고 그 위에 한옥 모양 지붕만 올린 ‘짝퉁 한옥’이라면 벽돌집이나 블록집보다도 더 지진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부구조는 여전히 취약한데 지붕의 무게만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경주 지진에서도 이런 집들은 벽체에 금이 가는 등 결정적인 피해를 입었다.

제대로 지은 한옥은 지진에 강하다. 기왓장이 이탈한 겉모습만 보고 ‘한옥은 지진에 안전하지 않은 집’이라는 선입견을 갖지 말 것을 당부하고 싶다. 다만 내진 안전성이 크게 떨어지는 ‘짝퉁 한옥’은 이번 기회에 ‘한옥다운 한옥’으로 고쳐 지을 수 있는 지원 정책을 폈으면 한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한옥 주인들이 안전에 대한 걱정을 떨쳐낸다고 해도, 지진 피해가 잦아진다면 불편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정부는 경주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 피해를 입은 한옥의 복구를 지원해 주기로 했다고 한다. 이번 기회에 경주를 비롯한 역사 도시의 한옥은 복잡한 절차가 필요한 특별재난지역 지정이 아니더라도 자연재해에 따른 피해가 있으면 언제라도 복구해 주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으면 싶다. 그래야 지금 한옥에 살고 있거나, 앞으로 한옥에 살고 싶은 사람들이 한옥을 포기하지 않는다.[오피니언타임스=서동철]

 서동철

 서울신문 수석논설위원

 문화재위원회 위원

 국립민속박물관 운영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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