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지의 코스모스.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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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지 않은 평범함

아침에 일어나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직장에 출근해 열심히 일하고, 퇴근 후에는 저녁 먹고 여가시간을 갖는 것. 어릴 때의 난 이 교과서적인 평범한 일과가 진정 평범한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대다수의 사람에게 이 일과가 평범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이를 갖기 위해 얼마나 처절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지 깨닫는다.

작년 서울대생이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후 ‘저녁이 있는 삶’을 지원 계기로 밝혀 화제가 된 바가 있다. 바꾸어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최고 대학을 다닌 수재라도 저녁이 있는, ‘교과서적인 평범한 일상’을 갖기 위해서는 9급 공무원이 최선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올해 기준 9급 국가공무원 채용은 16만4133명이 응시, 2591명 최종합격으로 4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흔히 사람들은 경쟁률을 보고 39명을 이기면 공무원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16만1542명을 이겨야 꼴등으로 공무원이 될 수 있으니, 평범하지 않아야 평범한 삶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서울의 한 대학교 도서관에서 대학생이 공부를 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평범함을 위한 치열한 노력

우리나라 취업준비생 10명 중 4명이 공무원 시험 준비생으로 그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노량진 등 고시촌에서 공무원을 꿈꾸며 처절하게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고 있다. 올해 치러진 9급 공무원 시험에는 한의사와 변호사가 지원하기도 했다. 이제는 고등학생들도 수능이 아닌 공무원을 준비하기에 이르렀다.

공무원이 아닌 경우는 어떠한가?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기숙학원에 들어가 영어공부에 몰두한다. 서로 친해지면 공부에 방해될까봐 이름이 아닌 번호를 부르며 이야기한다. 취직하지 못한 채 졸업하는 것이 두려워 등록금을 내고 졸업 유예생이 된다. 경험을 쌓기 위해 열정페이로 하루 10시간 넘게 일을 한다. 공개 채용 때가 다가오면 밤을 새워가며 수많은 자기소개서를 작성한다. 사회는 중소기업으로 눈을 돌리라고 하지만 대기업과의 현저한 차이에, 재취업시의 진입장벽 상승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

청년들의 이러한 노력이 일부 ‘어른’들에게는 한심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왜 더 큰 꿈을 꾸지 않는지, 하고 싶은 것을 할 여유를 찾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것을 직업으로 선택하길 권하는, 그런 어른들이 있다. 그러나 수동적으로 사는 방법을 배워왔고, 맹목적으로 공부해야 했던 청년들은 본인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모른다. 실패하지 않는 삶을 강요당했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는 방법만을 배웠다. 이것이 어느 날 갑자기 토크콘서트에서 성공한 사람의 ‘하고 싶은 일을 해라!’는 조언을 들어도 막막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청년들이 처절히 바라지만 쉽게 얻을 수 없는 ‘저녁이 있는 삶’ ©픽사베이

이룰 수 없는 ‘저녁이 있는 삶’

그렇다면 처절한 노력들로 목표를 이룬 청년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최근 뉴스에서 업무 과중으로 자살한 공무원, 학부모와 아이에게 모욕을 당해 우울증에 걸린 교사, 상사의 괴롭힘에 자살한 검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원치 않는 회식, 야근과 주말에도 계속되는 업무에 지친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쉽사리 들을 수 있다.

왜 처절하게 노력해서 취업난을 돌파한 사람도 평범해질 수 없는가. 이른바 ‘좋은 직장’에 들어가도 치솟은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빚더미를 안고 집을 구해야 하고 결혼을 할 여유도, 출산도 생각할 수 없는 삼포세대가 되어버렸다. 연어족, 캥거루족, 리터루족….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채 청년들을 비꼬는 신조어만 늘어나고 있다.

평범해지기 위해 처절하게, 죽을 만큼 노력해야 하는 사회, 정상적인가? 청년들은 궁전 같은 넓은 집을 바라지도,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만큼의 큰 재력도 원치 않는다. 다만 평범함을 바란다. 나의 손으로 일구어낸 따뜻한 집에서 아침에 일어나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직장에 출근해 열심히 일하고, 퇴근 후에는 저녁을 먹고 여가시간을 갖는 것. 이것이 청년들이 그토록 처절하게 바라는 것이다.[오피니언타임스=유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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