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영의 창(窓)]

내가 중학생 시절 ‘중2병’이라는 단어가 청소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중2병은 일본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처음 사용된 단어로, 중학교 2학년 정도 나이의 청소년들이 사춘기 자아형성 과정에서 겪는 심리적 혼란을 의미한다. 중2병에 걸린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자신감이 충만해지며 우월의식, 허세 등의 증세를 보인다. 그 정도는 다르겠지만 대부분 청소년들이 중2병 시기를 경험한다. 보통 중2병은 사춘기가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치료된다. 필자 역시 중2병 시기를 거쳤고 치유됐다.

하지만 대학교에서 또 다른 신종 병명을 접했으니 바로 ‘대2병’이다. 최근 페이스북에서 대2병을 다룬 웹툰이 4만여건의 ‘좋아요’를 받았다. 많은 대학생들이 대2병이라는 말에 공감하며 자신도 대2병에 앓고 있다는 댓글을 달았다. 대2병은 대학교 2학년생들이 느끼는 심리 상태를 의미한다. 대2병은 중2병과 반대로 자신감과 자존감이 급격히 낮아지는 시기다. 대2병에 걸린 학생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의 감정을 느낀다. 흥미로운 점은 중2병은 1996년도에 일본에서 파생된 단어이고 외국에서도 공감대를 형성하는 반면, 대2병은 현재 한국 대학생들의 상황을 반영한 단어라는 것이다.

©픽사베이

K대학교 영미문화학과에 재학 중인 2학년 박모씨(21)는 자신이 대2병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고등학교 3년을 오직 캠퍼스 낭만을 꿈꾸며 버텼다. 그리고 기대한 만큼 즐거운 대학교 1학년을 보냈다. 하지만 2학년이 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우선 대학 문화가 지겨워졌다. 1학년 초 동기들간의 영원할 것 같던 끈끈한 우애도 과CC(같은 학과 캠퍼스 커플)들의 이별과 같은 각종 사건들을 통해 분열됐다.

오티, 엠티, 축제 등 어색한 사람과 술 게임을 하며 친해지는 자리도 이제 부담스럽다. 친한 사람 몇몇과 보내는 조용한 술자리가 더 좋다. 2학년이 되자 본격적인 전공 공부에 들어간다. 어렵다. 이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 맞는지 계속 고민된다. 주변에는 시험 준비로, 여행 준비로 휴학하는 친구들 소식이 들려온다. 취업 때문에 고통 받는 선배들의 모습도 보인다. 복수전공을 해야 할 지 아니면 아예 취업 잘 되는 학과로 전과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박씨가 겪는 증세들은 대학교 2학년 학생들이 경험하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대학교 2학년은 여러모로 다른 학년과 다르다. 어리바리한 1학년때와 다르게 이제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양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뒷일 생각하지 않고 놀다가 어떤 결과를 받는지도 성적표를 통해 이미 확인했다. 취업전쟁에 뛰어드는 3, 4학년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무언가를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맞는 것인지, 마음은 급한데 정작 무얼 해야 할지 모른다. 대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진지하게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위기감과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다.

대2병을 앓는 대학생의 수가 늘어나는 것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시사한다. 첫 번째로 점점 치열해지는 취업경쟁이다. 8월16일 경향신문은 올해 상반기 20대 청년 실업자 수가 44만8000명으로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상반기 20대 실업자가 40만9000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데 이어 1년 만에 실업자 수가 10%가까이 급증했다. 대한민국 10대들은 대학 입학 전까지 극심한 입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나 대학생이 되어도 주변에서 들리는 취업전쟁 얘기에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대학교 2학년이라고 해도 스물 한 살에 불과하다. 10대를 책상 위에서 보낸 만큼, 20대에는 한창 많은 경험을 해보고 마음을 숙성시켜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대학생들은 그럴 여유도 없이 취업률과 스펙 쌓기에 머리를 뜯고 있다.

두 번째로 청소년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이다. 청소년기는 한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기간이다. 중고등학교 내내 학생들의 중요한 시간들은 국어, 영어, 수학에 쏟아졌다. 물론 이 학문들이 가치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10대, 20대에 자신이 평생 무엇을 업으로 삼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또한 그 판단의 뿌리가 될 많은 경험을 해봐야 한다.

한 취업박람회에서 구직자가 면접을 보고 있다. ©포커스뉴스

그러나 현재 청소년 교육 시스템에 진로를 성찰할 여유는 없다. 결국 학생들은 진로가 아닌 점수에 따라 학과를 선택하고 고민하는 것이다. 평생 무엇을 하고 먹고 살 지는 대학생 1년 남짓한 시간으로 정하기 어려운 문제다. 학생들은 무엇에 떠밀리듯이 대학교에 입학했고 마찬가지로 타성에 젖어 취업을 고민한다. 자신이 무엇을 배우고 싶고 업으로 삼고 싶은지 모른 상태에서 최고 교육기관에 들어온 학생들, 그리고 그런 학생들을 대량으로 배출하고 있는 교육 시스템이 대2병의 근본적인 병인이다.

내년 봄에도 신입생들은 그동안의 입시 스트레스를 목에 술을 퍼부으며 풀어낼 것이다. 한편 학교 앞 카페와 도서관 열람실에는 취업, 시험을 준비하는 3, 4학년들로 가득 찰 것이다.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 고민하는 2학년들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한 사람의 직업은 그 사람의 인생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청소년기에 자신의 진로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이 없었던 학생들은 대학교 입학 후에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우리는 학생이자 동시에 사회 초년생이다. 대학생들은 사회가 언제까지고 그들의 준비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의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대2병은 그 책임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불안감은 술이나 다른 유흥거리로 해결할 수 없다. 결국 대2병을 해결할 유일한 치료제는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뿐이다. 학생들에게는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정부는 취업난을 해결할 수 없다면 학생들의 자기 정체성, 가치관을 일찍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오피니언타임스=오승영]

 오승영

경희대학교 재학 중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