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리의 방과 후 옥상]

며칠 전에 언니와 대화하다가 ‘멍에’라는 단어가 나왔다. 들어는 본 것 같은데 정확한 뜻이 기억나지 않아 “멍에가 뭔데?”라고 되물었더니 언니는 어떻게 멍에를 모르냐며 대학엔 어떻게 들어갔냐고 놀리기 시작했다. 딱히 들어보지도 써보지도 않은 단어라 몰랐다고 변명하다가 문득 작년 말, 언니가 태양이 수성과 더 가까운지 지구와 더 가까운지 헷갈려했던 것이 기억나 반격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언니는 뼛속까지 문과생, 나는 뼛속까지 이과생. 서로 배워온 것이 다르고 배웠다고 한들 관심 분야가 다르기에 서로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달랐던 것이다.

상식을 따로 공부하고 시험보는 현실은 씁쓸하다. ©픽사베이

많은 취업준비생들이 상식을 공부한다. 대기업 인적성검사에서 상식을 보기 때문이다. 영동문고 취업 준비 코너만 해도 공기업 NCS(국가직무능력표준)와 기업 인적성 문제집과 함께 시사상식 책들이 빼곡히 꽂혀있다. 상식은 말 그대로 常(항상 상) 識(알 식)인데 상식을 따로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과 심지어 책이 잘 팔리는 현실이 씁쓸했다. 그런데 나를 더 슬프게 만든 것은 상식 책을 모아둔 곳에 작은 글씨로 ‘머리 좋은 자, 즐기는 자를 못 이긴다’고 적혀있던 알림판이었다. 언제부터 상식을 책으로 공부하고 심지어 그것을 즐겨야 했던 것일까.

지난 2월 모 아카데미에서 열린 나영석PD의 강연에서 한 학생이 입사 시험에 대해 물었다. 나PD는 “우리 때는 상식 시험도 봤었는데…”라며 우리의 눈치를 보다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아니, 아직도 상식을 봐요? 내가 입사한지 15년이 넘었는데? 어차피 계속 바뀌니 쓸모도 없는데 뭐하러 보지. 실제로 우리 팀에는 덕후들이 더 많아요…”

인터넷 세상에도 상식 책들은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포커스뉴스

우리 사회는 상식의 범위를 규정하기 힘들 정도로 정보가 쏟아진다. 새로운 기술이 생기고 없던 현상이 일어난다. 하지만 인터넷이 있는 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관심이 없어 잘 모르는 것은 그때그때 찾아보면 그만이다. 오히려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특화돼야 성공하는 세상이다. 실제로 MBC ‘능력자들’을 보면 편의점 덕후는 편의점에 취업하고 우주 덕후는 과학의 대중화를 꿈꾸며, 서태지 덕후는 라디오에 섭외되는 등 집요한 관심이 성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더 이상 ‘덕밍아웃’(특정 분야의 덕후임을 밝힘)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덕후를 우대한다는 채용 공고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니 더 이상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악기’나 ‘산악계의 오스카상’이 무엇인지 묻는 상식 시험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길 바란다. 오히려 사전의 뜻대로 일반적 견문과 함께 이해력, 판단력, 사리분별 따위의 의미로써의 상식을 지키는지를 궁금해하길 바란다.[오피니언타임스=김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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