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의 너영나영]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지난달 26일부터 단식 농성을 벌여온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일주일 만에 단식을 중단했다. 국정감사도 재개됐다. 다행스럽다.

집권당 대표로서는 초유의 사태인 이 대표의 단식 돌입은 여야는 물론 국민에게도 당혹감을 느끼게 했다. ‘과잉’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정 의장이 지난달 24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에 대한 투표가 진행되는 과정에 “세월호 아니면 어버이 연합, 둘 중에 하나를 내놓으라고 하는데 (새누리당이) 안 내놔. 그러니까 맨입으로는 안 되는 거지, 뭐”라고 하는 등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고 이유를 내세웠지만 그것이 단식에 돌입할 만한 사안인지에 대해서는 부정적 의견이 많았던 것 같다. 한 보수 일간지 사설은 ‘모기 보고 칼 빼기’ 식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정세균 사퇴 요구 단식투쟁을 7일 만에 중단하고 2일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포커스뉴스

그보다는 봇물처럼 터지기 시작한 미르·K스포츠 재단 관련 의혹과 이제는 좀 시들해졌지만 우병우 민정수석 관련 의혹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본격적으로 거론되고 재론되는 것을 막기 위한 ‘꼼수’이자 전략이라는 야(野) 3당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었다. 최근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권력형 비리 의혹이 제기되면 해명을 하기보다 의혹 제기의 중심에 있거나 중요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을 공격하고 비리 인물로 모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송희영 조선일보 전 주필과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 정 의장이 대상자다. 새누리당은 정 의장에 대해 ‘황제 방미(訪美) 의혹’을 제기한 데 이어 부인에 대해도 ‘황후 쇼핑 의혹’이 있다고 인신공격성 비방을 퍼부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공했다. 두 재단과 우 수석 의혹을 둘러싼 야 3당과 언론의 예봉이 한풀 꺾였다. 국민의 관심도 분산됐다.

이 대표는 단식 초기에는 ‘쇼 하지 말라’, 단식 중단 후에는 ‘얻은 것이 없다’고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여권에서는 나름의 정치력을 발휘한 것으로 평가받을 만한 것 같다. 단식 사흘째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의 ‘정세균 사퇴 결의대회’에서 “국감에 임해 달라”고 울먹이며 호소했지만 의원총회에서 거부당했다. 그러다가 단식 일주일째 다시 국감 복귀를 주문해 만장일치의 추인을 이끌어냈다. 청와대를 위해 ‘살신성인’하면서도 국감을 외면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균형점을 찾아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의회의 장관 해임결의안을 거부했다는 비판은 들리지 않는다. 야 3당은 물론 새누리당 내 친박의 강경한 목소리도 다소 수그러들었다.

서울 강남구 K스포츠 재단 건물. 4일부터 본격적으로 재개된 국감에서는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문제가 집중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에게 중한 것은 단식투쟁이 아니라 권력형 비리 의혹의 진실이다. ©포커스뉴스

국정감사가 정상화하면서 이제 각종 비리 의혹을 포함해 여러 현안이 부상할 것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그중에서 ‘최순실 게이트’로 번지고 있는 두 재단 관련 의혹을 먼저 신속하게 해소하고 해결해야 한다. 기업 20여 곳에서 두 재단에 774억원의 기금을 낸 것과 관련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이승철 상근부회장은 청와대와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출연한 것이라고 했지만 그것을 믿는 국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이 부회장은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자 두 재단을 통합한 새 재단을 만들어 공익성과 효율성을 높이겠다고 했지만 가능할지 의문이다. 야당에선 통합 기도는 두 재단의 금융계좌를 없애 비리를 세탁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완전한 공익재단으로 전환하는 것이 어렵다면 신청 하루 만에 설립 허가를 받은 두 재단의 허가를 취소해 영구적으로 해체토록 해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도 해법이다. 그래야 차기 정권에서도 재론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정치인이나 권력기관이 정치적‧행정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선택할 때는 적합성, 필요성, 상당성의 요건을 갖춰야 한다. 비례의 원칙, 과잉금지의 원칙이라고도 한다. 이를 어기면 언론이 알고 국민이 안다. 지나침은 화를 부른다.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참패한 결정적인 이유는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는 ‘막장 공천’ 파동이었다.

영화 ‘곡성’에서 효진(김환희)이가 경찰관인 아빠 종구(곽도원)에게 귀기 서린 목소리로 내뱉은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라는 말이 유행이다. 정치권은 요즘 국민이 무엇이 중요한지 묻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국민은 무엇이 중한지 안다. 자신의 잘못은 성찰하지 않은 채 상대에게 트집을 잡거나 상대의 작은 잘못을 찾아내 상황을 모면하려 하다가는 영영 신뢰를 잃을 수 있다. 국민을 바보로 취급하면 정권 재창출은 점점 멀어진다.  [오피니언타임스=황진선]

 황진선

 오피니언타임스 편집인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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