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공모전 아차상]

시험에 떨어졌다.

많고 많은 단어와 말들이 있지만. 시험을 준비하고 결과에 이르기까지 많은 과정들이 있었지만.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 나는, 시험에 떨어졌다.

그간 공부하던 책들은 모두 중고서점에 팔아버리고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왔다. 몇 년을 붙들고 미래를 그리며 공부했던 책을 차곡차곡 상자에 쌓으니 두 상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책들은, 책에 담긴 나의 세월은 55000원이라는 가격으로 나에게 돌아왔다.

©픽사베이

미련 따위는 훌훌 버리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탈락의 슬픔은 생각보다 쉽게 가시지 않았다. 시험에 떨어졌다는 그 사실 자체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앞으로 뭘 하고 살아가지? 라는 불안감이었다.

시험 공부한다는 핑계로 도서관에만 지내는 동안 나의 동기들은 취업 준비를 했고, 학교에 아직 학생의 신분으로 남아있는 것은 나뿐이었다. 시험에 붙으면 당장 인생역전이 될 것처럼 생각하며 떨어졌을 경우는 전혀 대비하지 않고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하지. 흔한 토익점수 하나, 취업스펙 하나도 없는 나는. 그동안 난 무엇을 하며 지내왔지? 자기회한과 자기반성이 밀려왔다.

집에서는 무기력하게 누워서 지냈다. 배고픔도, 어떠한 즐거움도 느끼지 못했다. 다이어트 할 때는 그렇게 안 빠지고 나에게 꼭 붙어있던 살들은 도망이라도 가듯 사라져버렸다. 누가 그랬던가, 마음고생이 최고의 다이어트라고. 밥을 아예 못 넘기고 음식을 삼키자마자 다 게워내는 나의 모습을 보며 가족들은 심각함을 느꼈다. 그리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를 위로했다.

물마저 삼키지 못해 병원에 다녀오던 날, 아빠는 자신의 불안감에 대해 말했다. 우리들이 아직 중·고등학생일 때 승진이 안 돼 회사에서 잘릴지도 몰랐을 그 당시에 대해 털어놨다. 회사를 나와서 제2의 직장을 위해 시험공부하던 때에 대해서도 말했다. 아이들은 자라나고 대학도 보내야 하는데 기술도, 백도 없이 밖에 나와 뭘 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주말에 집에 온 언니는 재수하던 시절에 대해 말해주었다. 부모님과의 투쟁을 불사하며 거부했던 그 대학교에, 반수를 해서 다시 가겠다고 말하기까지 거듭했던 고민에 대해 언급했다. 그렇게 시작한 반수. 너무 늦게 시작해버려서 이도저도 안될까봐 마음 졸이며 수능 공부하던 그 때에 대해 털어놨다. 그들은 저마다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본인들의 불안감에 대해 말해주었다. 나에게 이러한 불안감은 누구나 한번쯤 겪는 것이라고, 너무 마음 졸이지 말라고 위로했다.

실패는 누구나 겪는 여름감기 같은 것 ©픽사베이

누구나 한번쯤 나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앞으로 나는 어떡하지? 라는 불안감을 겪는다. 인생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결과가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원치 않는 결과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또 다시 앞으로의 인생을 걱정하며 과거의 나를 끊임없이 책망한다. 다행인 것은 이 감정이 오직 나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천지에 나만 불안한 것 같고 남들은 모두 제 갈 길을 찾아 잘사는 것 같겠지만, 누구나 이러한 시기를 한번쯤은 거치게 된다. 그들의 이야기는 포근하게 나를 위로했다. 나도 이 시기를 잘 이겨낼 것이라고, 잠시 숨고르기한 후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내가 나약하고 못나서 불안한 것이 아니라고. 누구나 겪는 여름감기 같은 것이라고.

물론 타인의 위로는 일시적인 효과일 뿐 역시나 상황은 바뀐 것이 없다. 지금 당장은 답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같이 시험에 떨어진 학생들이여! 취업에 번번이 실패하는 취준생들이여!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해 망연자실하는 모두들이여! 너무 불안해하지 말자. 모든 실패의 원인이 나에게 있다고 과거의 나를 자책하지도, 미래의 나를 불투명하게 바라보지도 말자. 내색하지 않을 뿐 우리 주변의 모든 이들이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 그러니 너무 쫄지 말자.[오피니언타임스=박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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