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관의 모다깃비 감성]

“너는 젊고 아직 건강하니까 열정이 있잖아.”

누군가가 내게 한 말이었다. 청년이라면 아마 꽤 많이 들은 소리일 것이다. 고리타분한 선생이나 밥 먹는 도중에 부모에게서 들었다. 전공과 다른 일을 하는 선배 혹은 어딘가에서 만난 할 말 많은 아저씨, 아줌마에게서 들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살아온 삶을 내 앞에서 반추한 뒤 어떤 것이라도 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나는 젊고 건강하니까, 열정이 넘치는 나이니까 할 수 있을 거라면서 ‘너는 ○○를 하니까 이런 것도 알면 도움이 될거야’라며 나를 부러워했다.

©플리커

미안하지만 열정을 말하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젊으니까 열정이 넘치지 않겠느냐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내 상황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보다는 상대방의 생각 없는 발언에 불쾌감을 느낀다.

문학에서 시를 쓰는 사람들은 추상적 관념어를 남용하지 말라고 한다. 사랑. 우정. 그리움. 기억. 추억 등. 어딘가 있어 보이는 단어들이 이에 속한다. 정해진 형태가 없어서 되려 끼워맞추기 좋다는 게 이유다. 내게 ‘열정’을 말하는 사람들은, 내 나이와 내게 남은 시간을 보고 나서 나에게 열정을 끼워맞춘다. 시급 6030원을 주면서 호텔 알바를 뛰라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런 열정페이에 대한 의욕을 내게 바란 거라면 없다. 줘도 없으니 바라지 말라.

사랑이란 단어로는 사랑을 말할 수 없다. 모두가 생각하는 사랑의 형태가 다를 텐데 ‘사랑’만으로 어떻게 애틋한 감정을 정의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맥락없이 외치는 사랑보다 애인에게 건네는 아담한 꽃다발 하나가 더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렇기에 ‘열정’만으론 나의, 타인의 열정을 대변할 수 없다. 어디서 감히 내가 불사를 것들에 대해서 함부로 정의하는가.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타인을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지레 나의 열정 지수를 당신의 척도로 판단하여 단정짓는가. 나는 그렇게 당신의 범주에 들어갈 정도로 교집합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픽사베이

좋아하는 것이 있다. 하고 싶은 것이 있다. 열정을 쏟고 싶은 것들이 내겐 따로 존재한다. 거기에 대해서는 굳이 당신이 열정이란 말을 꺼내 들이밀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다. 알아서 시계추마냥 움직일 것이다. 내가 그만두지 않을 것이니 혹여 당신이 바라던 열정의 기준에서 너무 불사른다고 나를 또 말리는 일은 없길 바란다.

내가 어떤 것에 열정을 쏟았지만 실패할지도 모른다. 그렇던 말던 당신 멋대로 내게 아쉽다고 말하지도 말고 부질없었다고 말하지도 말라. 좌절은 해도 미련은 없을 것이고, 실패했다는 경험만이 남을 뿐 나라는 사람에 생채기가 나는 것이 아니다. 명예와 돈을 얻지 못하고 대중의 집중과 관심을 받지 않았다고 흐릿해질 존재였다면, 애초에 나는 열정이 없이 탐욕만 많은 인간이었으리라.

나의 열정이란 20대가 지나간다고 해서 사라질 시한부가 아니며, 햇볕에 놓는다고 말라비틀어질 것도 아니다. 당신이 바라는 선물상자에 온전히 담길 것처럼 정형화되어있지도 않고, 섣부른 판단에 갈대처럼 휘둘릴 빈약한 허릿심도 아니다. 당신이 겪은 일들을 내가 똑같이 겪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세상을 살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을 내가 쉬이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도 마라. 당신이 내게 말하는 것이 정말 내게 필요한 조언인지 성급한 희망사항인지 분간하라. 그래, 나는 되도 않는 조언이라면 좋은 말이래도 듣고 싶지 않은 ‘모난’ 사람이다. 이게 잘못은 아니다. 그저 당신과 나의 열정이 다를 뿐이다.

인공 심박기를 가방에 넣어두고 다니는 외국 보디빌더를 페이스북에서 보았다. 시각 장애인인데 스키선수인 사람을 티비 광고에서 보았다. 우리나라에서 정상급 중식 요리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셰프는 20대 초반에 후각을 잃었었고, 귀가 먹은 뒤에도 작곡을 했었던 베토벤은 아주 오래전에 있었다.

열정은 젊음이랑 관계가 없다. 나이랑 관계가 없다. 검정고시를 보러 가는 어머님들과 한글을 배우려고 하는 팔순의 열정을 간과하지 마라. 내 열정은 내가 알아서 키우고, 아무런 의욕이 나지 않을 때 도움을 청할 것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말하며 꼰대를 자청하지 마라. 나는 당신의 생각보다 굉장히 열정이 부족한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당신이 생각지도 못할 만큼 열정이 넘치는 사람일 수 있다.[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신명관

 대진대 문예창작학과 4학년 / 대진문학상 대상 수상

 펜포인트 클럽 작가발굴 프로젝트 세미나 1기 수료예정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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