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의 멍멍멍]

얼마 전 한강에서 열린 락페스티벌에 다녀왔다. 너무 잘 놀아서 집에 갈 때쯤엔 오른쪽 다리로 발을 디딜 수도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낫겠지 했는데 웬걸. 전날보다 더 부어있었다. 절룩거리는 모습을 본 아버지께서 병원까지 데려다주셨다. 난생 처음 응급실에서 엑스레이와 CT를 찍었다. 의사선생님께서 모니터를 유심히 보더니 “혼자 왔어요? 보호자 분 같이 오셔야 할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인대손상에 골절이란다. 아 망했구나. 하루 잘 논 대가로 난 8인실 병동 한 자리를 차지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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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예정된 공연들이었다. 완치까진 6주가 남았고 공연은 2주가 남았다. ‘포기할까?’ 하다가 까짓것 왼발로 드럼을 치기 시작했다. 한쪽 발밖에 못 쓰니 하이햇(드럼용 심벌즈)을 열었다 닫았다 할 수도 없고, 오른발(손)잡이 기준으로 세팅된 드럼은 왼발(손)으로 치기엔 너무나 불친절했다. 무엇보다 왼손, 왼발이 내 말을 안 들었다. 박자는 누가 들어도 절고 있었다. 왼발로 ‘들을만한 정도’의 드러밍을 시도하는 데에만 꼬박 2주가 걸렸다. 왼발은 결국 오른발을 따라갈 수 없었다.

우리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양손잡이로 태어나지 않은 이상 우린 왼손잡이거나 오른손잡이일 수밖에 없다.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지라고 하지만 상대의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내가 아무리 왼발(손)을 연습해도 왼발(손)잡이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상대방이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이해해보려 노력하고, 내가 이해한 게 맞는지 거듭해서 물어보는 것뿐이다. 전적으로 이해할 순 없다고 해도 말이다.

적당함과 균형을 찾는 과정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오랜 시간 불편함과 낯섦을 감수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 불편함까지 감수하기엔 먹고 사는 게 너무 벅차다. 내 이야기 좀 들어달라는 너무 많은 소리들은 이제 소음으로 들린다. 기업이든 노조든 다들 자기 이익만 챙기는 것 같고, 투표해라, 정치에 관심 좀 가져라는 소리도 신경 써봐야 머리만 아프지 바뀌는 건 하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난 중립이야’, ‘나는 정치에 관심 없어’라고 말하고 귀를 막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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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실에 중립은 없다. 사실만을 전하는 것 같은 뉴스나 신문도 기사를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천차만별로 변한다. 같은 기사라도 어느 신문사에서는 1면을 차지하지만 전혀 보도되지 않는 신문사도 있다. 기사를 편집하는 ‘데스크’의 주관이 개입된 거다. 물론 사건 자체는 사실이고 사실을 기반으로 쓴 기사 자체는 중립에 가깝다. 하지만 그 사실을 언제, 어느 방식으로 전하느냐는 주관적으로 정하는 거다.

현실에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게 없다는 걸 생각해본다면 ‘중립’은 사실상 ‘방관’이라고 봐야한다. 비상식적인 상황이 지속되고 악화돼도 중립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 침묵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정치에 무관심하고 냉소적인 사회가 된다. 정치는 견제와 감시에서 자유로워질 것이고 정치는 그들만의 것이 된다. 균형을 잃은 사회가 되는 거다.

중립은 사실상 특정 계층, 특정 인물의 이익 추구를 보장하는 행위이다. 그게 보수이든 진보든 말이다. 그렇다고 편가르기는 더 곤란하다. 지지기반이 있다는 건 믿음직한 일이지만 ‘우리 편’이니까 찬성, ‘남의 편’이니까 반대하는 건 오른발, 오른손 위주로 지금 당장 ‘편한’ 드러밍을 하는 것과 똑같은 거다.

문제들을 하나씩 이해하고 고민해보려는 노력이 고통의 시간이겠지만 그걸 인내하지 못하면 양손을 자유자재로 쓸 줄 아는, 더 나은 드러머가 될 수 없다. 그 과정이 너무나 힘들고, 무의미해 보이고, 진전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균형 잡힌 드러머가 되는 길이자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다.[오피니언타임스=이광호]

 이광호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드럼 치다 지치면 글을 쓰고, 글 쓰다 막히면 드럼을 칩니다. 지구 멸망을 보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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