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마케팅]

3년 전 강남에서 택시를 타고 홍대 앞을 간 적이 있다. 점잖게 생긴 기사 분이 기업접대비 규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별 생각 없이 좋은 것 아니냐고 했더니 갑자기 그 분 목소리가 커졌다. 그 빌어먹을 법 때문에 강남 유흥가에 취객과 아가씨들이 줄어 심야 수입이 팍 줄었다면서 민생이 먼저지 정의가 먼저냐고 핏대를 올렸다. 현실을 모르는 그런 법을 어떤 자들이 세웠냐 등 20분 이상을 퍼부었다. 나는 그냥 들을 수밖에 없었다. “민생이 먼저이기는 하지만 정의에 기초한 민생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려다가 그랬다가는 당장 내리라고 할 것 같아서였다.

지난달 28일 정부세종청사 인근 일식집이 점심시간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없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포커스뉴스

경제뿐만 아니라 관계까지 난리

김영란 법 때문에 민생 경제가 오그라들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시기도 오비이락 잘 맞추었다. 미르 재단, 정양 등 때문에 기사에서는 많이 빠진 것 같지만 당황스러운 현상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교수들은 학생들을 만나려 하지 않고 기자들은 저녁, 골프자리에 심지어 기자 간담회까지 피할 정도며 교사들은 학부모를 만나지 않는다고 한다. 언론을 옥죄려는 정부 꼼수라는 비난도 돌고 그러면 정보는 핵심 공무원들의 이너서클로만 돌게 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골프장 캐디들은 내장객이 줄어 수입이 떨어지고 심야 대리기사들 수입도 줄고 고급 식당에서는 종업원들을 해고해야 할 판이라고들 한다.

나도 모 공기업 강의를 하고 난 후 원래는 본부장급 간부들과 저녁 스케줄이 있었는데 그들이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것을 경험했다. 실무자는 법 시행 초기라서 국민권익위가 무슨 해석을 내릴지 몰라서 그러니 양해해 달라고 했다. 지방도시에서도 경험을 했다. 도시 브랜딩 컨설팅을 마치고 근처 식당에 갔더니 초저녁이긴 했지만 한산했다. 식당아줌마가 뭔 영문인지 모르겠다고 해서 “김영란 법 초기라 그렇겠지요”라고 대신 답해주었다. 우리를 대접한 공무원은 “오버죠. 우리가 내면 되는데”하더니 삼겹살을 시켰다.

그동안 잘 나갔던 교수들은 외부 강의 수입이 줄 것을 걱정하고 있다. 기자나 교수들은 그동안 오래 만났던 친목회에도 못 나갈까 우려한다.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까지 오그라들까 걱정인데 이런 정황들을 보면 확실히 란(亂)이 맞는 것 같다.

지난달 31일 충북 청주시 충청북도지방기업진흥원 교육장에서 열린 청탁금지법 시행과 기업의 대응과제 설명회에서 참가자가 설명자료를 손에 들고 있다. ©포커스뉴스

삼성 74제와 IMF 때 제일기획

90년대 중반에 삼성 그룹이 74제를 실시했다. 7시에 출근해서 4시에 퇴근하는 제도였다. 4시에 퇴근해서 자기 계발을 하라는 취지였다. 일본의 석학 오마에 겐이치는 변화를 하려면 장소, 시간, 사람을 바꾸라고 했는데 시간대를 바꾸는 것은 생각보다 큰 혁신을 가져올 수도 있는 건이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하니 아내들도 죽을 맛이고 저녁에 술을 편하게 마실 수도 없고 4시에 퇴근하면 사실 만날 친구들도 없었다. 4시 이후 연락이 안 되니 거래선들의 불만이 많았다.

삼성은 사회 전체가 이 혁신적 제도에 동참하여 사회 근무시간 표준이 바뀌길 기대했는지 모르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몰래 야근이 늘고 일부는 4시가 되면 아예 거래 회사에 가서 일을 했다. 그룹 비서실에서 깜짝 조사를 나오곤 했는데 그러면 근처 당구장이나 커피숍에 피했다가 다시 가서 일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자기 계발 한다고 처음에는 학원이나 테니스나 헬스장을 끊은 직원들도 더러 있었으나 그것조차 시간이 잘 맞지 않았다.

중역들은 더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정식 근무 시간 이전에 중역회의를 하는 그들 스케줄이라면 6시 전에는 출근해야 했을 테니까. 이 제도는 결국 1년 만에 폐지되었다. 그런데 내가 이 예를 드는 것은 김영란 법도 이와 같이 되리라고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것과는 또 다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1998년 IMF 직후 기업들은 바야흐로 생존 전쟁이 벌어졌다. 제일기획도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해 다운사이징(Downsizing)을 시작했다. 구조조정이 1순위고 2순위가 비용절감이었다. 나간 사람도 문제지만 남은 사람도 문제였다. 비용이 줄어들어도 너무 심하게 줄어들었다. 광고회사에서 제일 중요한 수주게임인 경합 프레젠테이션을 하는데도 기존보다 1/10로 대폭 줄어든 비용으로 하고 광고주 접대비용 등도 마찬가지로 팍 줄었다. 회사에 불만과 우려의 소리가 터졌다. 이러다가 프레젠테이션 경쟁력이 떨어지고 광고주들 불만으로 이탈이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불만들이었다.

골프나 술 접대 대신 기획·창의력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오게 될까. ©픽사베이

더 큰 지혜의 민생경제를 만들자

그렇게 1년이 지났는데 우려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만들어졌다. 수주 경쟁력은 높아졌으며 광고주 만족도는 하락하지 않았으며 당연히 사내 유보 이익은 올라갔다. 이듬해는 희한하게도 제일기획이 모든 광고상을 휩쓰는 그랜드슬램도 달성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회사의 공식 프레젠테이션 비용이 대폭 줄어도 그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경쟁사에 밀리게 준비할 수는 없는 것이 담당자들의 현실이었다. 그래서 담당자와 협력업체간에 합의가 이루어졌다. 협력업체가 어느 정도 부담을 안는 대신 수주하면 손실보전+α를 주기로. 그러니 양자는 더 기획과 크리에이티브 업(UP)을 위해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광고주 접대에서 룸 접대가 빠지니 믿기지 않겠지만 오히려 광고주들이 좋아하는 경우도 많았다. 덕분에 술 안 먹어서 좋다고. 아마 이런 이야기 들으면 이 글 처음의 그 택시기사님은 민생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화낼지 모르지만 이것도 민생이었다. 돈이 부족하니 직원들은 더 마음과 머리를 쓰게 되었다. 어떤 직원은 광고주 결혼기념일을 알아내서 꽃바구니에 친히 쓴 엽서를 집으로 보냈는데 광고주 부인이 크게 칭찬을 해서 효과 만점이었다는 반응도 있었고 어떤 직원은 골프 대신 주말마다 광고주와 등산을 다니면서 더 친해졌다고 하는 일화도 들렸다.

나는 김영란 법이 74제처럼 될 것인지 아니면 IMF 후 제일기획처럼 될지 감히 예단하지 못하겠다. 대신 부패지수가 높은 이 국가에서 이제라도 부패의 고리 차단이라는 정의를 세웠으면 그 정의에 기초한 민생을 만들어야 하며 각 부문 해당자들은 일단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민생도 살리는 큰 지혜의 경제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은 말하고 싶다. 기업에서 수십억 접대비가 굳었으면 그것으로 직원 복지를 늘리는 것도 방법이다. 란(蘭)이 될지 란(亂)이 될지는 하기에 달렸다.[오피니언타임스=황인선]

 황인선

 브랜드웨이 대표 컨설턴트

 문체부 문화창조융합 추진단 자문위원

 전 KT&G 마케팅본부 미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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