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환의 프리미엄 코리아]

영어를 배우면 누구나 접하는 격언 중에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펜은 칼보다 강하다)’가 있다. 펜은 글로 상징되는 문화적 힘을 대변하고 칼은 문자 그대로 무력적 힘을 대변한다. 이 격언의 의미를 제대로 보여 준 사람으로는 단연 미국의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1737~1809)을 들 수 있다. 그가 쓴 팜플렛 형식의 작은 책 ‘상식(Common Sense)’(1776)은 식민지 아메리카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의 한 펍에 걸려있는 토마스 페인 관련 명판 ©픽사베이

아메리카의 운명을 바꾼 토머스 페인의 ‘상식’

페인은 잉글랜드 노포크에서 태어난 작가이자 혁명가로서 7세인 1744부터 5년간 문법학교(grammar school)를 다닌 것이 그가 받은 교육의 전부다. 문법학교란 라틴어와 그리스어 등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 필요한 초보적인 교육을 실시하던 기관이었다. 겨우 이 정도 교육을 받은 사람이 오늘날 세계의 유일한 슈퍼파워인 미국의 독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책을 썼다는 사실이 놀랍다.

페인은 13세부터 범선의 마스트를 고정시키는 데 사용되는 밧줄인 지삭(支索)을 만드는 아버지 사업에 견습공으로 일했다. 그 후 그는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했으나 모두 여의치 않았다. 마지막으로는 운영하던 담배가게가 파산하는 바람에 빚을 갚기 위해 집을 팔아야 할 정도였다. 그 여파로 이혼한 후 지인을 통해 알게 된 벤자민 프랭클린의 도움으로 37세인 1774년 미국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 해 11월 30일 필라델피아에 도착하였으며 이로부터 미국 독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그의 활약이 시작된다.

필라델피아 도착한 후 페인은 벤자민 프랭클린의 도움으로 1775년 1월 ‘펜실베니아 매거진(Pennsylvania Magazine)’의 편집인이 되었다. 이것이 문필가로서 그의 이력이 시작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잉글랜드에서 살던 시절인 1772년 간접세 징수원이었던 페인은 의회에 청원하기 위해 ‘간접세 징수원의 사례’라는 소책자를 발행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아메리카의 실정을 인지하고 이와 관련된 글을 쓰게 된 계기는 필라델피아에서 잡지의 편집인으로 일하게 된 데서 찾을 수 있다.

미국 독립의 도화선이 된 사건으로 1775년 렉싱턴 전투를 들 수 있다. 이 전투는 페인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그는 미국인들에게 독립의 당위성을 호소하는 글을 쓰기로 결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실은 1775년 4월 19일(렉싱턴 학살이 벌어진 날) 그 운명의 날 이전까지는 나보다 더 화해를 절실하게 바라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그날의 사건이 알려진 순간 나는 비참하고 음흉한 파라오를 영원히 거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여기서 파라오란 당시 영국의 조지 3세를 지칭한다.

영국에서는 청교도혁명(1642~1651)과 명예혁명(1688)을 통해 권력이 국왕과 의회에 분산된 입헌군주제가 확립되었다. 그렇지만 페인은 여전히 국왕에게 상당한 권력이 부여되어 있는 현실은 상식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특히 아메리카의 주민들이 수천 킬로 떨어진 영국의 국왕, 그리고 그의 뜻을 따르는 의회의 결정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다. 게다가 왕이 무능할 뿐만 아니라 왕위가 세습되는 현실을 감안할 때 군주제는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에게는 철저한 평등주의에 기초한 공화제만이 아메리카가 나아가야 할 길이었다.

©픽사베이

페인이 이 책을 발간한 무렵인 1776년 1월까지만 해도 아메리카에서의 여론은 대체로 영국과 타협을 통해 적당히 양보를 얻어내자는 일종의 화해 무드가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독립을 논한다는 것은 예외적인 것으로 치부되었으며 상식에 반하는 행위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페인은 이 책에서 아메리카는 왜 영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하는지, 그리고 왜 지금이 가장 적기인지에 대해 매우 설득력 있게 설파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페인은 단호하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혹자는 아메리카가 영국으로 인해 번영을 누렸고, 영국과의 관계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며, 앞으로도 그 점은 변함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잘못된 주장은 없다…… 유럽 열강이 간섭하지 않았어도 아메리카는 변함없이 번영했을 것이며, 아마 더 크게 번성했을지도 모른다.’ 이 대목에서 일제의 조선 병합을 정당화했던 일단의 친일파들이 떠오른다. 만일 1919년 독립선언문이 페인의 책만큼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면 조선의 자주독립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든다.

페인은 단순히 군주제를 반대하였기에 아메리카의 독립을 주장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공화제에 대한 이상과 함께 이를 실천하는 제도적 기반으로서 법의 지배, 즉 법치주의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진정한 의미의 평등을 실천하려면 법치주의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법에 근거한 권력 분산만이 공화제를 위한 실천적 방안이었다. 지금 우리는 과연 실질적으로 페인이 말한 정신을 따르고 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페인은 이 책에서 상식에 입각해 자신의 논지를 전개한다고 말하지만 상식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특별히 설명하지 않았다. 단지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부터 나는 오로지 단순한 사실, 명백한 논거, 평범한 상식만을 제시할 것이다…… 독자는 단지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고, 이성과 감정을 동원해 스스로 판단하면 된다.’당시 아메리카의 상황은 매우 불안정하고 혼돈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페인처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것이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픽사베이

상식 실종된 한국사회

여기서 ‘상식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상식이 부재(不在)한 우리 현실에 비추어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상식에 대한 형이상학적 논의보다는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드러났듯이 상식의 기준을 확립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권한이 크면 책임도 커야하며, 잘못을 했으면 거기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약자를 도와주어야 하며 부당한 권력에는 저항해야 한다. 이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상식이 지켜지지 않는다. 지능적인 각종 도덕적 해이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현실은 상식이 실종되었다는 명백한 증거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상식은 ‘사회구성원이 공유하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가치관, 지식, 판단력’을 말한다. 또는 상식에는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 일반적인 견문과 함께 이해력, 판단력, 사리분별’ 따위 포함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매우 포괄적인 정의이기에 다분히 남용 및 오용의 소지가 있다. 즉 누군가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상식을 해석하고 강요할 수 있다. 특히 갑과 을 관계를 유독 강조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런 면에서 한국 사회에서는 상식이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대로 된 대화가 사실상 불가능한 이유도 모두가 공유하는 상식이 없기 때문이다. 상식을 회복해야 대화도, 사회통합도 가능할 것이다.

사회공동체를 유지·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공동선을 지켜나가야 한다. ©픽사베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만 있을 뿐 공동선은 찾아볼 수 없어

그러면 여기서 ‘왜 한국 사회에는 상식이 부재하는가?’ 하는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지식이 부족해서인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육열을 감안할 때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가치관에 문제가 있는가? 이와 관련해서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가치관 내지 세계관을 형성할 자유가 있다. 누구도 다른 사람에서 자신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물론 특별한 종교나 이데올로기를 추종하려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자유를 포기한 경우이므로 예외로 한다. 이런 사람들을 제외하는 경우 가치관들이 충돌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드러난다.

누구나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질 권리와 자유가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사회공동체를 유지·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들이 각자의 가치관에는 다른 가치관과 공유해야 하는 공통분모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거부하면 사회는 그야말로 무질서(anomie)에 빠질 것이다. 공통분모가 없는 상태에서 각자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만이 옳다고 주장한다면 어떤 건설적인 타협도, 갈등의 조화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공통분모를 좁게는 공동선(common good)이라 하고, 넓게는 사회 규범(social norms)이라고 할 수 있다.

각자 자신의 기준, 자신의 가치관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회에는 사회 규범이 설 자리가 없으며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만이 난무할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약육강식의 원시 상태나 나름 없다. 한국 사회에서와 같이 승자 독식과 지대추구가 난무하는 현실은 우리가 이런 덫에 갇혔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우리는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함석헌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생각하지 않는 백성’이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유독 스스로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지 않았다. 교육열이 높다는 현실에 반비례해 생각하는 습관은 자취를 감추었다. 공부한다는 것은 다윈주의적 생존을 위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지 그것을 가지고 달리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관심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 문화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믿는다.

©픽사베이

통합적 사고 함양할 수 있도록 사회 차원의 노력 필요

문화란 무엇인가? 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대중의 보편적인 의식 수준에 의해 형성되는 생활양식, 사고체계 및 행동의 총합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문화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곧 당대의 보편적인 의식 수준이다. 그리고 의식 수준을 함양하려면 무엇보다도 통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정신적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통합적인 사고는 자신의 편견, 독선 및 고집을 버리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통합적 사고가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이를 방해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야한다. 이런 요인으로는 무엇보다도 조선시대 이래 면면히 유지되고 있는 봉건 의식, 일제 식민지를 경험하면서 형성된 식민지 의식, 해방 이후 남북분단에서 비롯된 분단 의식, 오랜 군부독재로 인한 군사문화의 잔재와 지역 갈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요인들이 우리의 무의식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면서 통합적인 사고를 방해하고 있다. 이른바 ‘의식의 파편화’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차원에서의 지속적인 노력이 없이는 한국 사회에 건전한 상식을 회복하기 어렵다. 우리 모두 상식의 회복에 좀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오피니언타임스=이영환]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 이사

  미시경제학 등 다수 출간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