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의 너영나영]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새누리당이 지난 30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여야가 동의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거국 중립내각을 구성하라’고 촉구했다. 주말인 29일과 30일 서울 청계 광장을 비롯해 전국 주요 도시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시위에 참여한 인원과 시위 양태가 중요한 준거가 되었을 것이다. ‘민중총궐기투쟁본부’는 청계천 광장에 3000여 명이 집결할 것으로 예상하고 집회 신고를 했지만 1만2000여 명(경찰 추산)이 모였다. 가족과 함께 나온 시민이 적지 않았고 남녀노소를 망라했다고 한다. 1987년 6월 항쟁 때에도 ‘넥타이부대’의 동참은 민심을 가늠하는 기준이었다.

지난 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박근혜퇴진 및 최순실게이트 진상규명’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포커스뉴스

이제 박 대통령에겐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어 보인다. 퇴진이냐 거국내각 구성을 받아들이느냐이다. 어느 쪽을 선택할 수 있느냐는 여론과 민심에 달려 있다. 관직에서 물러나 시골로 내려간다는 뜻의 하야(下野)라는 표현은 현 상황에서 어울리지 않는다. 그보다는 퇴진이나 국민 소환이 적절해 보인다. 민심이 대통령직 유지를 허용한다면 거국내각 구성을 여야에 맡기거나 여야와 협의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박 대통령의 퇴진을 막고 있는 ‘방패막이’는 새누리당이 아니다. ‘대통령 궐위 시’에 관해 규정한 헌법 조항이다. 헌법 68조 2항과 71조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사퇴할 경우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60일 이내에 다음 대통령을 뽑도록 하고 있다. 야당으로서는 박 대통령이 임명한 황 총리에게 권한 대행을 맡길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아무런 준비 없이 60일 이내에 새 대통령을 뽑으려면 여야를 막론하고 큰 정치적 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그렇더라도 박 대통령이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전제가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 거의 모든 언론이 검찰의 수사가 ‘보이지 않는 손의 짜맞추기’ 또는 ‘최순실로 꼬리 자르기’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검찰 수사가 미르·K스포츠 재단의 모금 과정과 대통령 연설문을 포함한 청와대 문건 유출 의혹에만 한정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의심이 사실로 확인되면 민심이 들끓을 것이다. 박 대통령을 퇴진시킨 뒤 사법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이 최순실 국정농단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최대한 협조하고 국민에게 다시 진솔한 사과를 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검찰은 최순실 게이트를 낱낱이 파헤쳐 총체적 진실을 국민에게 공개할 의무가 있다. 여야는 이미 ‘최순실 특검’에 대해 합의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상설특검은 최순실 게이트의 진상규명을 호도하려는 것”이라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따른 특검을 주장하고 있다. 어느 쪽이 됐든 검찰의 수사는 검증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최순실 게이트 수사에 조직의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지난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연설문 사전 유출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청와대

박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책조정·정무·민정·홍보수석과 ‘문고리 3인방’의 사표를 수리한 것은 다행스럽다. 검찰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해 처가의 부동산 매매 등 기왕에 제기된 의혹 이외에도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묵인하거나 은폐하는 등 직무를 유기하거나 사정 권력을 남용하지는 않았는지 수사해야 할 것이다.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에 관여한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국정농단을 도운 것으로 알려진 정호성 부속·이재만 총무·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 등 3인방의 범법 사실도 엄정하게 조사해야 한다. 우병우 전 수석을 이은 최재경 새 민정수석의 역할이 주목된다. 보수 세력의 정권 재창출 가능성 여부는 사정기관을 총괄하는 최 수석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거국중립내각 구성에도 요건이 있다. 새누리당에서는 박 대통령이 외교와 안보를 맡고 야권 출신 총리는 내치(內治)를 맡는 방식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시민은 2014년 7월 박 대통령은 폭군이 아니라 혼군(昏君)이라고 했다. 혼군은 사물의 이치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이라는 뜻이다. 분별력이 부족하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사이비 교주 최태민의 딸 최순실에게 의존했다. 도올 김용옥은 박 대통령이 최순실의 아바타로 무당춤을 춤 것이라고 했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최씨가 2년 안에 북한이 붕괴한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는데, 주술적 예언가임에 틀림없다”며 “만약 대통령이 이 말에 현혹돼 외교‧대북정책을 펼쳤다면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런 평가를 받는 박 대통령에게 한반도의 명운이 걸려있는 남북문제를 포함하는 안보와 외교를 맡길 수는 없다. 거국내각이 구성되더라도 대통령은 대내외적인 의전만 담당하고 여야 협상으로 뽑은 총리가 국정의 중심이 되는 것이 옳다. 민중총궐기투쟁본부는 11월12일까지 매일 저녁 촛불집회와 시국선언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박 대통령이 퇴진과 거국내각 구성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할 수 있는지는 정치권이 아니라 검찰 수사와 성난 민심의 향배에 달려 있다.[오피니언타임스=황진선]

 황진선

 오피니언타임스 편집인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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