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강남의 아하!]

‘등치고 간 내먹기’라는 속담이 있다. 한 손으로는 남의 등을 어루만져 주면서 다른 손으로는 그 사람의 간을 내먹는다니 너무나도 끔찍한 이야기이다. 겉으로는 남을 사랑하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그 사람을 이용하려 드는 표리부동한 사기성 행동을 두고 하는 말일 터인데, 이런 소름끼칠 정도의 살벌한 표현을 쓰고 있다. 이런 종류의 위선적 행동이 얼마나 역겹고 가증스러웠으면 이런 극한적인 말로 묘사했을까? 우리 주위에 이런 일이 정말로 있을 수 있을까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다. 그러나 이런 행위가 과연 극악무도한 몇몇 사람들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늘어나는 피노키오. 최근 인간 사회의 비극은 ‘사람을 사랑하고 물질은 이용하기’라는 질서가 반대로 뒤집힌 데 따른 것이다. ©픽사베이

인간 사회의 비극은 ‘사람은 사랑하고 물질은 이용하기(people to be loved, things to be used)’라는 기본 질서에서 벗어나 오히려 ‘물질은 사랑하고 사람은 이용하기’가 현실로 바뀐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딴 사람을 ‘목적’ 자체로 보지 않고 우리 자신들의 이기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킨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인간을 모두 ‘이용가치’에 따라 저울질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이런 비극적 현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극히 만연된 고질병이었다. 그러기에 독일의 계몽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같은 사람은 ‘인간을 목적으로만 여길 뿐 결코 수단으로 삼지 말라’는 것이 우리가 모두 받아들여야 할 단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의 하나라고 역설한 것 아니겠는가.

아무튼 우리 스스로 깊이 반성해 볼 때 우리의 대인 관계에서 상대방을 오로지 목적으로 여겼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가 김 씨를 도와주었다고 하자. 물론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만의 하나 김 씨의 환심을 사겠다든가, 김 씨로부터 뭔가를 받아내겠다든가, 김 씨를 내 편의 사람으로 만들겠다든가, 김 씨가 고마워할 것을 보고 한 번 우쭐해 보겠다든가, 사귀어 놓으면 언젠가 요긴할 때가 있을 것이라든가, 하느님이나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받겠다든가 하는 등등의 마음이 잠재의식적으로라도 있었다면, 엄격한 의미에서 그것은 김 씨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나 자신을 위한 것, 따라서 김 씨는 목적이 아니라 나 자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냉철한 눈으로 살피면, 내가 누구를 사랑한다고 할 때 그 동기가 궁극적으로 이렇게 상대방보다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자기중심적으로 자기를 사랑하기 위해 남을 사랑하는 사랑을 ‘에로스’라고 한다.

일련의 국가 비상사태를 보면 국가 최고 지도자가 겉으로는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면서도 뒤로는 다른 일을 꾸미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픽사베이

종교에서 이상으로 삼고 있는 사랑은 이와 반대로 자기를 잊어버리고 전적으로 상대방의 안녕과 복지에만 관심을 쏟는 자기희생, 자기 내어줌의 사랑이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아가페’라는 것이 그렇고, 불교에서 강조하는 ‘자비’라는 것도 마찬가지. 맹자도 앞뒤를 계산하지 않고 오로지 남이 어려움 당하는 것을 보고 견디지 못하는 ‘불인(不忍)’의 마음이 인간 본연의 순수한 마음임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실천하는 사랑의 행동이 겉보기에는 ‘사랑’의 행동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순수한 종교적 사랑의 정신에서 나온 것인가, 혹은 그 뒤에 끈이 달린 것인가에 따라 숭고한 희생적 행위일 수도 있고 등치고 남의 간을 빼먹으려는 비열한 만행일 수도 있다.

최근의 국가 비상사태를 보면서 국가 최고 지도자로 뽑힌 이가 겉으로는 국민을 위한다고 계속 말하고 있었지만 뒤로는 다른 생각, 다른 일을 꾸미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결국 쪼금 살벌한 표현을 빌리면 국민들의 등을 쓰다듬는 척하며 국민들의 진을 빨아낸 셈이다. 그야말로 끔찍한 일이 아닌가.[오피니언타임스=오강남]

 오강남

서울대 종교학과 및 동대학원 졸/캐나다 맥매스터대 종교학 Ph.D.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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