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영의 창(窓)]

때 이른 추위와 함께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국가적 혼란이 대한민국을 덮었다. ‘비선 실세’ 최순실 씨와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실망이 정치 성향, 세대, 계층을 불문하고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특히 20·30대 청년층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지난 4일 발표한 대통령 지지율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저치인 5%까지 내려갔다. 이중 20·30세대의 지지율은 1%였다. 사실상 ‘제로’라는 뜻이다. 대학로에는 분노의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각 대학들은 연이어 시국선언을 하고 있으며, 캠퍼스 벽마다 정치적 소신을 드러내는 포스터들이 즐비하다. 대학가뿐만 아니라 대규모 집회에서도 젊은 피들이 넘쳐난다. 청년들의 정치권에 대한 불만과 참여 의식은 높아진 것처럼 보인다. 과연 청년들은 정치적 주체가 되었을까?

11월1~3일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5%를 기록했다.(위) 특히 2030세대의 연령별 지지율은 1%로 나타났다. ©한국갤럽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9월 20대 실업률은 9.4%에 이르렀다. 2000년 이후 매월 청년 실업률은 역대 최고치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암울한 경제 상황은 청년들의 경쟁을 더욱 과열시킨다. 하지만 청년들은 경제적 측면만큼이나 정치적 측면에서 약자이다. 올해 좌우를 막론하고 각종 정당 및 단체에서 ‘청년’에 관한 정책들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이는 진정 청년을 위한 공약이 아닌 ‘청년팔이’에 가깝다.

청년들의 투표율은 상승했지만, 청년들의 실질적인 정치 영향력은 다른 세대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사실 투표 그 자체는 개인에게 정치적 주체로서의 이해와 의견을 요구하지 않는다. 정치적 주체 의식이 배제된 투표는 소극적인 민주주의의 소임에서 머문다. 이는 정당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청년들의 정치 영향력이 낮은 가장 큰 이유가 적극적인 정치 참여의 부족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 대다수가 현 정권에 불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투표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있지만, 정치 그 자체에 대한 관심과 지식은 부족하다. 청년에 대한 대우를 개선시키기 위해서 청년들은 어떤 후보가 어떤 관련 공약을 내세우고 있는지, 더 나아가 현 청년 문제의 원인은 어디에서 오는지 자발적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구체적인 정치 문제는 항상 답답하고 머리 아픈 이야기이다. 물론 정치에 관심 있는 청년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의 정치 참여는 항상 폐쇄적이며, 일방향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20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5월30일 새누리당 의원들이 당론 1호법안으로 청년기본법 등을 국회에 제출하고 있다. 각종 정당 및 단체들은 해마다 청년 정책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지만 이는 ‘청년팔이’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포커스뉴스

청년들의 정치참여는 주로 인터넷상에서 이루어진다. SNS에서 댓글로 정당에 대한 욕설을 퍼붓고, 특정 언론 페이지에 ‘좋아요’를 누르며 소신 발언들을 타임라인에 올리느라 바쁘다.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사이버 상에서는 서로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한다. 이들은 실제 정치 제도 개선에는 도움을 주지 않았음에도 정치적 주체로서의 만족감을 느낀다. 이러한 모습들은 슬랙티비즘(slacktivism, 게으른 행동주의)라는 신조어로 대표된다. 반면 현실에선 일말의 정치적 교류조차 찾을 수 없다. 청년들에게 정치는 늘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이야기이다. 정치권에 대한 혐오와 냉소로 점철된 청년들은 일상에서 정치를 배제시킨다.

사이버 정치와 달리 우리나라 국회는 점점 고령화하고 있다. 서울경제는 20대 총선 당선자들의 평균 연령은 55.5세로 역대 총선 당선자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라고 언급했다. 20대 국회에서 청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의원들은 세 명에 불과하며 모두 30대 의원들이다. 이는 청년들의 정치 참여가 확대되고 있는 선진국들의 기류와 대조된다. KBS에서는 노르웨이와 덴마크의 30세 미만 의원 비율이 각각 10.1%, 9.0%라는 수치를 발표했다.

유럽에서는 좌우를 불문하고 국회에 나서 정당을 이끄는 30대 정치인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대한민국 국회의 청년 의원 비율은 19대를 기준으로 OECD 회원국 26개국 중 꼴찌다. 청년 투표율은 올랐지만 정작 청년들의 아젠다를 대변하고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해줄 정치인들은 줄어드는 실정이다. 결국 실효성 낮은 청년 공약들로 청년들의 민심을 얻으려고 하는 정당들의 행태는 한동안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청년 정치는 이제 다음 담론으로 나아가야 한다. 넘치는 정보들을 현명하게 수용하고 청년 정책의 실효성을 확인해 표를 행사해야 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분노를 적극적인 정치 참여 동인으로 삼아야 한다. ©픽사베이

분명 청년들의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만은 높아졌다. 청년들의 향상된 투표율을 보고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청년 정치는 그 다음 담론으로 나아가야 한다. 청년들은 매체들이 전하는 수많은 정보들을 현명하게 수용해 하나의 이슈에 관해 한 가지 입장만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각적으로 바라보는 습관을 함양해야 한다. 후보들이 내세운 청년 정책의 실효성을 확인하고 표를 행사해야 한다. 무엇보다 청년들간의 장소를 불문한 정치적 교류, 토론이 필요하다. 즉 청년들의 종합적인 정치 수준 향상이 요구된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조건은 청년 정치 문화의 확산이다.

현재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청년들은 좌우 구분 없이 분노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분노의 배경에는 정치 참여 의식이 아닌 정치 혐오가 깔려있다. 혐오로부터 기인한 정치적 불만은 결국 정치적 무관심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정치 혐오증을 극복해라. 청년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서로를 존중하고 한국 정치의 미래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해라. 청년들의 정치 신념에는 실리가 개입되지 않았다. 그 기저에는 타협되지 않은 순수한 이념만이 있다. 이들은 서로를 미워할 이유가 없다. ‘헬조선’의 가장 큰 원인은 다름아닌 ‘헬정치’이다. 청년 세대들의 어깨에 있는 대한민국의 더 나은 미래라는 과제를 실현시키기 위해, ‘헬정치’의 돌파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분노가 청년 정치에 가져올 영향은 분명 미지수다. 정권 반항의 기억을 청년 모두가 공유함으로써 청년들의 정치 참여 의식을 고무시키고, 진영이 아닌 이념과 이념이 부딪치는 선명한 정치문화를 만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분노의 방향성을 되새기지 않는다면 고질적인 집단 망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정치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정치권에 대한 청년들의 기대를 낮추고 정치 혐오를 앞당길 것이다. 청년 정치의 성숙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다른 헤게모니 아래에서 대한민국의 ‘헬정치’는 건재할 것이다. 잠깐 요란하게 빛나고 사라지는 불꽃은 이제 필요 없다. 오늘날 이 분노가 청년들의 마음 한 켠에 ‘헬정치’의 부끄러운 결과물로,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동인(動因)으로 오랫동안 새겨지길 바란다.[오피니언타임스=오승영]

 오승영

경희대학교 재학 중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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