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미의 집에서 거리에서]

단발머리 여학생 시절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가 지금도 정기적으로 만나는 친구 몇이 있다. 졸업 후 사십 년 세월이다. 고교 진학 후 처음 배정된 교실에서 키가 고만고만해 앉은 자리가 엇비슷했거나, 친구의 친구로 함께 어울리다 보니 두루 허물없는 사이가 된 ‘마이 디어 프렌즈’다.

주변 사람들의 교우관계까지 살펴보니 그들 역시 초·중·고교 때 같은 교실서 지냈던 인연이 죽 이어져왔기에 흥미로웠다. 여럿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을 보면 학창시절 짝이나 앞뒤 자리에 앉아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비슷한 키의 친구 모임이 적지 않다. 학창시절 ‘몇 반’은 학생이 임의로 선택할 수 없었고, 우연히 어쩌다 같은 반에서 소통하다가 그 관계가 오래도록 지속된 것이다. 동창의 사귐, 우정에는 환경이며 성격, 취향 등 정서적 공통점이나 소통만큼이나 학습 공간의 물리적 거리와 접촉 빈도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포커스뉴스

인생에서 사람 간의 만남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가를 절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떠들썩한 뉴스 속 인물들의 네트워크가 드러나면서 지나온 세월에서 무수한 만남의 의미를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정권의 비선 실세와 고위 공직자 등, 한때 유력 인사였다가 지금은 만인의 지탄을 받고 있는 인물들은 한동안 서로 밀고 당기며 서로의 세와 부를 확장시켰던 상호 플러스적인 관계였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거나 “조금 아는 사이”라는 식으로 거리를 두거나 아예 밀쳐 내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의자 신분으로 악연이 이어지고 있다.

인지재세 불가무우(人之在世 不可無友), 곧 ‘사람이 세상에 있어서 벗이 없을 수 없으니’라는 옛말대로 만남의 연속인 인생에서 내 자신도 친구들을 떠올리며 우정, 사람 사귀기의 어려움을 곱씹게 된다.

선인들이 유붕자원방래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곧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또 ‘친구는 또 다른 나’라고 했듯, 친구는 삶에 중차대한 요소다. 선택의 여지가 있을 수 없는 부모 형제 자식 등 혈연 관계와 달리, 친구는 내 의지와 노력으로 관계 맺음이 가능하기에 그 대상에 더욱 신경이 쓰이는 것 같다.

공자는 친구를 잘 선택해야 한다며 논어에서 ‘이로운 벗’과 ‘해로운 벗’을 각기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익자삼우(益者三友)와 손자삼우(損者三友)가 그것이다. 익자삼우는 정직하고, 성실하며, 아는 것이 많은 사람과 벗하면 이롭다는 이야기다. 물론 내 자신이 남에게 이로운 친구인지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가까이 하면 해로운 손자삼우로는 편벽하고 줏대가 약하고 말만 잘 하는 자를 지목했다. 한쪽에 지우치고 그저 남의 말에 동조하고 아부를 잘하는 친구는 나쁜 길로 인도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국정농단 비선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씨가 지난 31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석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공자는 의도하지 않은 우연한 만남이 평생의 지기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유익한 벗과 해로운 벗을 잘 가려서 사귈 것을 일깨웠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기 마련이니 ‘익우’를 원한다면 스스로 ‘좋은 친구’가 돼야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최근의 사태에서 드러나듯 익우라 여겼건만 결과적으로 서로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안긴 악연으로 끝나 뒤늦은 후회를 하게 되니 말이다.

‘마음에 맞는 계절에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 마음에 맞는 말을 나누며 마음에 맞는 시와 글을 읽는 일이야말로 최고의 즐거움이다. 그러나 이런 기회는 지극히 드문 법, 평생토록 몇 번이나 만날 수 있을른지.’(이덕무의 ‘가장 큰 즐거움’)

‘친구가 없다고 한탄할 까닭이 어디 있을까. 책과 함께 노닐면 되는 것을. 혹여 책이 없다면 저 구름이나 노을을 벗을 삼고, 혹 구름 노을이 없다면 하늘을 나는 기러기에 내 마음을 의탁할 것이다. 만약 기러기도 없다면 남쪽 마을의 회화나무를 벗 삼고, 그게 아니라면 원추리 잎에 앉은 귀뚜라미를 관찰하며 즐길 것이다. 요컨대 내가 사랑해도 시기하거나 의심하지 않는 모든 것이 나의 좋은 친구인 것이다.’(이덕무의 ‘나의 친구’)

세상이 어지러울 때 좋은 벗을 만나기도 어렵다지만, 사람 대신 자연을 벗 삼았던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의 글에서 삶의 지혜를 배운다.[오피니언타임스=신세미]

 신세미

 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서 기자로 35년여 미술 공연 여성 생활 등 문화 분야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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