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요의 미디어 속으로]

서울 하늘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국내외 모든 시선이 12일(토) 서울 도심에서 열리는 제3차 민중총궐기 집회를 주시하고 있다. 주최측은 전국에서 100만명이 집결해 청와대를 에워싸겠다고 선언했다. 세계 11위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군병력 63만명의 거의 두배 가까운 규모다.

2일 서울 중구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서울 하늘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야3당도 이날 집회에 적극 참여하기로 하고 총동원령을 내렸다. 대통령이 8일 국회를 방문해 총리 지명권을 양보하겠다고 했으나,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대통령의 제안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하면서 결정한 사항이다. 박원순·안철수·이재명 등 대권 잠룡들도 일찌감치 동참을 결정했다. 대학가의 시국선언과 동맹휴학, 음악인·체육계·변호사들의 시국선언도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대통령을 범죄 피의자로 간주하고 2선 후퇴 및 퇴진을 요구했다. 12일은 박 정권의 명운을 가를 날이 될 것이다.

사태가 여기에 이르기까지 이를 촉발시킨 주체는 이례적으로 언론이었다. 한겨레가 물꼬를 트고, 경향과 TV조선이 이를 이어받았으며, JTBC가 결정타를 날렸다. 언론은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사적 인맥 몇몇이 밝혀진 것만 수천억원에 이르는 국민 세금을 편취해 왔다는 사실을 파헤쳐 이를 국민에게 알렸다. 나아가 언론은 이들이 청와대, 정부, 검찰, 재벌, 언론 등 우리나라 기간 조직을 하수인처럼 부렸으며, 이들 조직의 상층부 대부분이 이에 편승해 자신의 지위와 이익을 유지하고 챙겼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지난 27일 JTBC와 TV조선의 메인 뉴스 방송 장면. 종편 뉴스들은 25일~27일 사이 최순실 게이트 관련 단독 보도를 쏟아내며 시청률이 급상승했다. 반면 KBS·MBC·SBS 등 지상파 3사는 같은 기간 단 한건의 단독보도도 내놓지 못했다. ©각 방송뉴스 캡쳐

주류언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폭로하다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몇몇 주류언론이 주도적으로 파헤친 것을 이례적이라고 언급한 것은 이같은 배경 때문이다. 저마다 속사정은 다르겠지만 정말 이례적으로 주류언론이 화력을 집중시켜 살아있는 권력 게이트의 전모를 밝혀내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4대강 사업, 철도·의료보험·수도·공항 민영화, BBK 주가 조작, 자원외교, 저축은행 로비, 제2롯데월드 신축 로비 등 수많은 게이트가 있었지만 주류언론은 숨죽이고 있거나 이를 오히려 왜곡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새롭게 등장한 대안언론이 이를 파헤쳤으나 화력은 부족했다.

이런 언론 상황의 연장선에서 밝혀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국민들로 하여금 분노를 넘어 대통령의 퇴진 요구로까지 몰아갔다. 한겨레, 경향, TV조선, JTBC 보도가 없었더라면 우리나라는 커넥션이 은폐된 채 속으로 썩어 들어가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을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에 분개한 대구 여고생이 자유발언을 하고 있다. 그는 세월호, 사드 배치, 국정교과서 등 논란이 일었던 정부 정책들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논리정연하게 촉구해 화제를 모았다. ©포커스뉴스

“당신이 만들고 싶었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지난 5일 대통령 하야 촉구 대구 시국집회에서 한 여고생이 발언했다. “박 대통령은 현재 최순실 게이트 외에도 역사교과서 국정화, 한반도 사드 배치, 위안부 합의, 세월호 참사 등과 같은 말도 안 되는 정책과 대처로 국민들을 농락해왔으며 증세 없는 복지라는 아주 역설적인 공약을 내세워 대통령직에 당선되고 나서도 담뱃세나 간접세 인상 등으로 우리 서민들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 여고생은 질문한다. “대체 당신이 만들고 싶었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당신이 되고자 했던 대통령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 여고생은 또 말한다. “약속했던 복지는 물거품이 되었고 국민들의 혈세는 복채처럼 쓰였다.” 어찌 이 여고생뿐이겠는가.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져야 할 청소년들은 극심한 빈부격차로 흙수저·금수저로 갈라지는 헬조선이 ‘국민들의 혈세를 복채처럼’ 낭비하는 기형적 권력구조에서 비롯되었음을 항의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언론이 감시견으로서 감시와 견제라는 책무를 좀 더 제대로 수행했더라면 공적 권력의 사유화와 변태적 권력의 남용이라는 희대의 스캔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일어났더라도 서울 한복판에서 100만 명이 운집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로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언론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무겁게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특히 국민의 재산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공영방송의 책임은 엄중하다.

10월27일 MBC 뉴스의 한 장면. MBC는 이날 세계일보의 최순실 인터뷰를 보도하면서 ‘태블릿PC는 내 것 아니다’라는 최순실씨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SBS, TV조선 등이 최순실 인터뷰가 사실과 다른, 수상쩍은 인터뷰라 비판한 것과 비교된다. ©MBC 뉴스 캡처

정권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공영방송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영방송은 사안을 외면하거나 축소하고 본질을 왜곡하거나 물타기로 사안을 흐리는 보도 기술(?)을 발휘하고 있다. KBS는 한겨레가 9월 20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최초로 보도한 이후 한 달동안 이 사안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간혹 다룰 때에도 사실을 취재해 보도하지 않고 여야 공방 형식으로 보도해 사안의 본질을 왜곡했다. 반면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의 회고록 논란은 부풀려 보도했다. 정권에 부담이 되는 사안을 다루지 않음으로써 정권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수석 비서관 회의에서 “재단과 관련한 불법행위가 있으면 누구든 엄정하게 처발하겠다”고 발언한 10월 20일부터 비로소 KBS 보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MBC도 똑같은 행태를 보였다. KBS와 MBC뉴스 시청자들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팩트가 아닌데도 야권이 정치적 공세를 펼치는 것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KBS 새노조가 만든 ‘KBS, 더 이상 침묵 할 수는 없습니다’ 동영상. “종편 방송들이 최순실 사태를 보도할 때 KBS는 침묵했다”며 공정한 보도를 촉구하고 있다. ©KBS 새노조

선전, 홍보 도구로 역주행해 온 공영방송

돌이켜보면 해방 이후 신문 매체는 저널리즘의 길을 재빨리 찾고 있었으나, 후발 매체인 방송은 저널리즘 기능 수행에 미숙한 모습을 보였다. 해방 후와 전쟁기 그리고 정부 수립 시기를 거쳐 최근까지도 방송은 선전, 홍보, 지배 도구로 활용되었다. 그러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오히려 방송이 저널리즘의 한 전형을 정립하는 듯 했다. 이 시기의 방송 보도와 이 시기에 방송된 <KBS스페셜>, <PD수첩>, <추적 60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의 프로그램이 그러한 예다. 상대적으로 신문은 굴절과 왜곡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 이후 신문과 방송은 모두 선전, 홍보, 지배도구로 다시 역주행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미디어법 등 법적·제도적 장치를 정밀하게 보완해 낙하산 인사를 사장으로 공영방송사에 내려 보냈고, 사장은 인사권을 통해 자신의 하수인들로 언론사 내부를 장악한 후, 보도 내용과 시사 프로그램을 감시하고 통제했다. 이에 저항하는 언론인은 해고·해직시키거나 징계 조치를 취하고, 취재·보도와 관련없는 광고, 심지어는 시설관리 부서 등으로 발령내는 등 권한을 남용했다.

4월27일자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의 한 장면. 손석희 앵커는 “매우 중요한 이슈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눈 감고 있는 언론”을 ‘슬리핑독(Sleeping dog)’이라고 꼬집었다. ©JTBC ‘뉴스룸’ 캡처

고개드는 공영방송 인적 청산

언론사 내부는 청와대부터 사장, 국장, 부장, 평기자에 이르는 실세 라인과 이에 저항하는 힘없는 라인으로 이원화되었다. 그러고도 부족해 이정현 홍보수석과 김시곤 KBS 보도국장의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외부 권력이 수시로 보도에 압력을 행사했다.

최근의 사태와 맞물리면서 KBS와 MBC 내부에서 자괴감과 자성의 목소리가 아래로부터 분출하고 있다. 이들은 언론을 권력이 사용하는 마이크로 만든 내부 상층부 인사들에 대한 청산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공모자들이라는 것이다. 권력 감시에 성역은 없다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회복해야 할 때다.[오피니언타임스=이상요]

 이상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보도교양특별분과 위원

  전 <KBS스페셜> 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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