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진의 지구촌 뒤안길]

지난 8일 미국 대선에서 국민들은 영부인 출신에 상원의원과 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 클린턴 대신 부동산 갑부 출신의 도널드 트럼프라는 정치적 아웃사이더를 45대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개표 초반까지만 해도 클린턴이 당선될 것이라는 예측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예상과 다르게 나타난 결과는 전 세계에 이른바 ‘트럼프 쇼크’를 불러왔다. 예측하기 힘든 트럼프의 기질과 행동으로 국제사회에 불확실성이 팽배했다는 우려가 세계 각국을 사로잡았다.

미국 제45대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가 9일(현지시간) 뉴욕 힐튼 미드타운 공화당 선거캠프에서 당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게티이미지/포커스뉴스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 던져준 메시지는 분명하다. 세계화와 자유무역이라는 오랜 기존 국제질서에 대한 불만이 생각보다 훨씬 크며 이 과정에서 심화된 양극화로 몰락해가는 중산층이 이런 현상을 부른 기성정치인들에 환멸을 느끼고 새 판을 원한다는 것이다. 지난 6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찬반 여부를 묻는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예상을 깨고 영국의 EU 탈퇴가 결정된 것에서 알 수 있듯 기존 질서를 버리고 새 판을 원하는 일반인들의 희망은 이제 세계 곳곳에서 공통된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장 큰 충격에 빠진 것은 물론 미국이다. 클린턴은 전체 득표 수에서는 트럼프를 앞서면서도 선거인단 확보에서 트럼프에 밀려 패배했다. 이는 ‘승자 독식’이라는 미국의 독특한 선거제도 때문이다. 이런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든 클린턴 지지자들은 트럼프는 자신들이 원하는 대통령이 아니라며 미국 곳곳에서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아직 평화적 시위가 계속되지만 조금씩 격화되는 기미도 나타나고 있다. 또 여성과 성 소수자들을 비하하고 이민자들을 범죄자 취급하며 동맹국들을 조롱하고 욕설과 음담을 입에 달았던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에 실망해 캐나다나 뉴질랜드 등으로 이민을 모색하는 미국인들도 크게 늘어났다.

일부 클린턴 지지자들은 아직도 트럼프의 미 대통령 취임을 막을 방법이 있다며 12월19일 치러질 선거인단 투표에서 지난 8일의 투표 결과에 상관없이 소신껏 투표할 것을 선거인단에 독려하고 있다. 선거인단은 원칙적으로 지난 8일 미 대선에서 승리한 후보에게 표를 던져야 한다. 하지만 애리조나와 아칸소, 조지아, 인디애나, 아이오와, 캔자스, 켄터키, 루이지애나, 미주리, 노스 다코타, 펜실베이니아, 테네시, 텍사스, 유타, 웨스트 버지니아주 등 15개 주에서는 이것이 의무 사항은 아니다.

클린턴 지지자들은 이들 15개 주의 공화당 소속 선거인단 160명에게 실제 선거인단 투표에서 더 많은 미 국민들로부터 표를 얻은 클린턴에게 투표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이처럼 신의없는(faithless) 선거인에 의해 트럼프의 승리가 뒤집히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꼭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선거인단 투표 이전에 예기치 못했던 트럼프의 스캔들 등이 터져나오거나 그의 돌발 행동으로 선거인단이 마음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미 대선 역사에서 선거인단이 마음을 바꿔 다른 후보에게 투표한 사례는 극히 찾아보기 힘들다.

트럼프는 자신의 승리라는 결과가 나오자마자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세운다거나 오바마케어로 불리는 의료보험 전면 개혁과 같은 자신의 일부 공약들에 대한 철회 내지 수정 가능성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자신에 대해 미국 사회가 갖고 있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실제로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하고 난 뒤 선거 전 자신이 내세웠던 공약들을 얼마나 실천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들이 제기돼 왔던 것도 사실이다. 공화당 내에서도 트럼프에 대한 반대 세력이 만만치 않아 의회의 견제 등으로 트럼프의 행동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트럼프 자신의 기질이 바뀌지 않는 한 그가 언제 어떤 불안 요소를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한 걱정은 항상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9일 시카고에서 수천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불복 시위’를 하고 있다. ©게티이미지/포커스뉴스

국제사회가 받은 충격 역시 미국의 충격 못지않다. 기존의 국제질서는 더이상 통하지 않게 돼 새로운 질서를 모색해야 하는데 새 국제질서가 어떤 내용이 될 것인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새 대통령 당선자 트럼프가 앞으로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지켜보며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는 게 유럽과 아시아 등 국제사회가 안고 있는 고민이다.

트럼프의 미 대통령 당선은 기존의 국제질서와 절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지금까지 지켜온 서구 민주주의 모델에 대한 위협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선거운동 내내 미국 우선을 외쳤고 고립주의와 보호주의를 내세웠다. 이러한 트럼프의 전략은 세계화와 자유무역은 특혜받는 일부 계층에만 혜택을 안겨줄 뿐이라는 중산층과 저소득 계층의 불만과 상호 작용하며 트럼프의 승리라는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도출했다.

기업가 출신인 트럼프는 외교 문제보다는 경제 문제를 우선시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재협상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폐기할 것을 공약했다. 한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미군 주둔 비용 분담을 늘릴 것을 압박하며 그렇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위협했다. 또 북한 핵 위협에 맞서 한국과 일본이 핵 개발에 나서는 것을 용인할 수 있다고 시사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미 대통령 취임 이후 국제사회 전체에 격변이 일어나겠지만 특히 아시아의 지정학적 풍경에는 커다란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새 패자로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아로의 회귀’ 전략을 통해 아시아의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려 했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여기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트럼프의 등장을 반기면서 중국 중심의 새로운 아시아 질서를 모색하려 할 것이다. 아·태 지역에서 미국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은 자연히 쇠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트럼프가 아·태 지역에서의 주도권을 일방적으로 중국에 넘겨주지는 않을 것이다. 중간 지점 어딘가에서 타협이 이뤄지겠지만 타협점이 어디일지는 불확실하다.

트럼프의 미 대통령 당선은 국제사회에 유례없는 불확실성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선거운동에서 그가 보여준 대중영합주의가 유권자에게 미친 폭발적 영향력은 앞으로의 정치 판도에 새 바람을 가져올 것이 틀림없다. 물론 대중영합주의가 옳은 것은 아니다. 많은 장점들이 대중영합주의에 묻혀 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앞으로는 유권자들의 불만을 파고드는 대중영합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의 난민 유입으로 곤욕을 치러야 했던 유럽에서는 대중영합적인 극우정당들이 계속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올해 말과 내년에 걸쳐 중요한 선거들을 앞두고 있다. 이 선거에서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국민전선(FN) 등 독일과 프랑스의 극우정당들이 어떤 결과를 얻을 것인지가 향후 대중영합적 극우정당들의 약진 여부를 가늠할 주요 요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제사회의 불확실성이 트럼프로 인해 촉발된 것은 아니지만 그로 인해 내재된 불확실성이 표면화한 것은 사실이다. 트럼프는 앞으로 자신의 말과 행동을 통해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국제사회의 우려를 진정시켜야만 할 것이다.[오피니언타임스=유세진]

 유세진

 뉴시스 국제뉴스 담당 전문위원

 전 세계일보 해외논단 객원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독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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