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문화로 만나는 세상]

“대신들이 위세를 얻고, 좌우 측근들이 권세를 제멋대로 휘두른다면 군주가 힘을 잃은 것이며, 군주가 힘을 잃고도 나라를 보존할 수 있는 자는 1000명 가운데 한사람도 없다.”

법치로 세상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중국 전국시대 한비자(韓非子)의 말이다. 왕과 측근, 그리고 그들 주변에서 기생하는 무리들의 부패와 타락이 나라를 얼마나 어지럽히는지 적나라하게 고발한 그는 ‘망징(亡徵·나라를 망하게 하는 징후)’ 47가지를 열거했다. 그 중 한두개만 있어도 그 나라는 망한다고 했다.

최순실 씨가 검찰에 출석한 지난달 31일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이 시굿선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한비자는 임금이 귀신을 섬기며 점술을 믿고 제사를 좋아하는 등의 ‘망징’이 계속되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포커스뉴스

한비자(韓非子)가 말하는 ‘망징’이 수두룩한 나라

그렇다면 ‘최순실 게이트’로 어지러운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것이 몇 개나 될까. 대강 훑어봐도 수두룩하다. ‘임금이 때와 날을 받아 귀신을 섬기며 복서(점술)를 믿고 제사를 지내는 일을 좋아하면’ ‘법령과 금법을 가볍게 여기고 모략과 꾀에만 힘쓰고, 나라 안의 정치는 황폐하게 만들고, 나라 밖의 외교와 원조에만 의지하면’ ‘나라의 관직이 몇 사람의 수중에 장악되고, 벼슬과 봉록을 돈을 살 수 있다면’ 그 나라는 망한다고 했다.

이뿐인가. ‘왕이 자신의 잘못을 모르고, 나라는 혼란스러운데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자부하고’ ‘임금이 젊은 시녀나 아름다운 후궁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총애하는 신하나 농간하는 측근이 지모를 써서 조정 안팎에 원망과 슬픔이 가득한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듭 불법을 저지르고’도 있다. ‘임금이 나라의 이익은 돌보지 않고 모후의 명령만을 좇고, 왕후나 후궁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환관(내시)들이 나랏일을 좌우하면 나라가 망한다’도 모후를 최순실, 환관을 문고리 3인방으로 바꾸면 영락없다.

상황이 이러니, 백성들의 분노와 원망이 하늘을 찌를 수 밖에. 나라가 벼랑으로 떨어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권좌에 눌러앉아 있겠다고 뭉개는 태도는 뭔가. ‘망징’을 자초한 것도 모자라, 아예 ‘망국’까지 가겠다는 것인가.

국정농단으로 온갖 사리사욕을 채운 최순실과 그에게 조종당한 대통령도 대통령이지만, 한비자가 말한 ‘그들 주변에서 기생하는 무리들의 부패와 타락’또한 얼마나 뻔뻔하고 사악한가. 수사와 갖가지 증언으로 드러나고 있는 안종범, 차은택, 김종의 맹종과 아부, 위세와 탐욕, 비굴과 배신은 ‘마름’의 모습, 그 이상이다.

지난달 21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한 이용호 국민의당 의원이 최순실-차은택 게이트 관련 자료를 보여주며 질의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문화와 스포츠를 망친 ‘마름’, 차은택과 김종

그들은 최순실의 명령에 따라, 아부하기 위해, 야합으로 창조경제, 문화융성, 스포츠 선진화를 부르짖었다. 그 명분으로 인사와 예산, 조직까지 마구 주물렀으니 애초 창조경제는 아무도 모르는 도깨비 장난, 문화는 싸구려 포장, 스포츠는 최순실 가족의 놀이터가 되어버린 것은 당연했다. 그들은 곗돈 받듯이 기업으로부터 미르와 K스포츠 재단 기금을 거둬들였고, 자기 사람들을 여기저기 앉혀 놓고는 문화를 쇼로 만들면서 온갖 이권과 뒷돈을 챙겼고, 최순실의 딸 하나를 위해 문체부와 체육계를 쑥밭으로 만드는 데 앞장선 것도 모자라 평창동계올림픽까지 최순실과 그 일당의 금괴가 되는 것을 도왔다.

그들은 청와대 인사에 단골로 등장하는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고, 해당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겸비한 분’들이다. 그러나 그 국정철학은 다름 아닌 병풍 뒤에서 조종하는 최순실의 탐욕 채워주기였고, 지식과 경험은 그 일을 교묘하게 마치 정의와 선인 것처럼 위장하는 기술이었다.

아무나 붙잡고 한번 물어보라. 광고 따위가 문화·예술의 본질인지, 번지르르한 패션이나 음식잔치가 진정한 문화융성인지. 포장이 요란하면 요란할수록, 누군가 혼자 잘난 척 나설수록, 그리고 빨리빨리를 자랑하면 할수록 그 문화예술은 사기다. 다양한 구성원이 함께 만들고, 시간이 쌓여야 문화가 된다.

정의도 마찬가지다. 부도덕한 인간일수록 정의의 깃발을 내세우고, 더 큰소리로 부르짖는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하다. 다름 아닌 탐욕의 다른 이름이며, 또 다른 부패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김종의 스포츠 정의가 그랬다. 스포츠 본질이 아닌 마케팅을 무기로 문체부와 체육계를 농락했고, 최순실의 사리사욕을 도왔다.

마름은 지주 대신 소작농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악덕 지주 밑에는 무자비하고 뻔뻔한 마름이 있다. 소작인들에게 무소불위의 횡포를 부리고 중간에서 자기 배를 채운다. ©픽사베이

‘마름’의 하수인들까지 말끔히 솎아내야

마름. 지주를 대신하여 소작권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그는 주인을 따라간다. 악덕 지주 밑에는 무자비하고 뻔뻔한 마름이 있다. 악덕 지주일수록 마름이 무슨 짓을 하든, 어떤 사람을 부리든, 소작인을 압박해 무엇을 챙겨먹든 상관하지 않는다. 자기 말 잘 듣고, 소작료만 충실히 거두어 갖다 바치면 그만이다.

그 점을 교묘히 이용해 마름은 소작인들에게 무소불위의 횡포를 부린다. 지주를 앞세워 거짓말도 하고, 소작인을 제멋대로 바꾸기도 하고, 중간에서 자기 배를 채우기도 한다. 지주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술수를 동원한다. 그러다가 세상이 바뀌면, 순식간에 태도도 바꾼다. 하루아침에 주인을 외면한다. 살아남기 위해 거짓말과 변명을 하고, 자신의 악행까지 주인에게 떠넘긴다.

물론 속을 사람은 없다. 최순실의 ‘마름’들의 구차한 변명과 부정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어느 정도 진실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저지른 부정과 온갖 전횡, 그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문화예술, 스포츠 사유화에 대한 죄는 면할 수는 없다. 반드시 그 책임을 낱낱이 밝히고 물어야 한다. 법에 한계가 있다면 정치권과 언론, 문화·예술·스포츠계가 해야 한다.

문화와 예술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스포츠를 정정당당하게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문화예술, 체육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라. 지금도 곳곳에 그들의 동조자와 하수인 노릇을 한 무능하고 사명감과 전문성 없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까지 모두 솎아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최순실 게이트’의 문을 완전히 부수고 그 안까지 말끔히 청소하는 일이다. [오피니언타임스=이대현]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전 한국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저서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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