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구의 문틈으로 보는 금융경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해외공관을 방문한다. 현장 질의를 한다는 이유다. 방문 대상엔 대사관은 물론 총영사관도 포함된다. 올해에도 외통위 의원들은 어김없이 해외로 날아갔다. 시카고 총영사관 현장질의 뉴스를 보며 국내 금융기관 해외점포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현지검사가 오버랩됐다. 현장방문 동기가 순수하다 해도 중요성 대비 비용 측면에서 꼭 필요한가 싶기 때문이다.

지난 9월2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국정감사를 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미국과 캐나다 은행에 20여년을 다녔지만 본국 감독당국의 검사를 받아본 적이 없다. 외환위기 직전 국내 은행 뉴욕지점 차장으로 근무했던 친구에게 “검사 후 청구비용도 만만치 않고 효과도 의문인데 한 달 넘게 은행감독원의 검사 받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말을 듣고 본점에 우리는 언제 캐나다 감독당국의 검사를 받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돌아온 답은 ‘없다’였다. 캐나다에선 본점 내부감사와 소재국 감독당국의 검사에 의존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한다는 설명을 듣고 참 합리적이구나 했다.

외국 은행 서울지점에서 처음 은행감독원 검사를 받으면서 놀랐던 일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첫날 간단한 미팅 후 선임자가 총무팀에 건네준 준비 목록엔 검사에 필요한 서류뿐만 아니라 주판, 스포츠신문을 포함한 각종 조간신문과 스낵, 과일, 음료, 오후에 준비할 석간신문까지 포함돼 있었다. 당황했고 외국 사람들에게 설명하며 부끄러웠다.

1989년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에 대한 법정관리 여신과 관련, 당시 은행감독원에 찾아가 법정관리여신을 할인 매각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돌아온 답은 ‘실제 가치를 반영해 매매를 허용하면 국내은행들이 엄청난 법정관리여신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늘려야 해 부실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허용할 수 없다’였다. 당시 외국 은행들은 국내 은행들이 대손충당금을 제대로 쌓지 않고 있다고 의심해 숨겨진 부실을 국내은행 위험 평가에 이미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는데도 듣지 않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등 감독기관을 통합돼 금융감독원을 탄생시킨 뒤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검사하는 동안 식사 접대도 금지되고, 부실여신 매매도 허용됐다, 해외점포 검사도 요주의 점포 위주로 1년에 8∼10개 점포만 방문 검사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금융감독은 여전히 대형 위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예방적 차원보다 사건사고 적발이나 조사에 치중하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픽사베이

금융감독원 출범 이후에도 신용카드 위기나 저축은행 사태 등 감독당국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금융시스템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한 위기가 이어져 왔다. 저축은행 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주요 대형 금융그룹에게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하도록 해 금융그룹마다 저축은행을 계열사로 두게 만들었다.

외국 유수은행이나 신용평가회사에서 각국의 개별은행 신용평가를 할 때 중요한 부분은 그나라 금융감독당국에 대한 평가다. 세계적으로 은행은 대형화되고, 상품 설계는 복잡해지고, 금융의 국경은 낮아졌다. 감독당국의 선제적 리스크 관리는 그만큼 어렵고 중요해졌다.

국내의 경우 가계부채 증가의 심각성이 제기된 지 오래됐는데도 금융감독 당국의 정책은 본말이 전도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나 총부채상환비율(DTI)은 대출은행 자산의 건전성을 지키기 위한 여신관리수단인데 마치 부동산정책인 것처럼 사용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정무적 판단을 이유로 고유의 금융감독 권한을 부동산정책 부서에 넘겨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고교 시절 원래 용도와 상관없이 체벌도구로 쓰였던 30cm짜리 대나무자를 떠올리게 하는 정책이다.

대출의 출발점은 상환된다는 믿음이다. 상환 받자면 대출해간 사람에게 상환 재원이 있는지와 언제 어떻게 상환할지를 따져보는 게 원칙이다. 개별 점포에서는 담보부동산을 팔아 상환받는다고 기대할 수 있지만, 국가적으로는 부동산담보대출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는데 대부분의 차입자가 별도 재원 없이 담보로 잡힌 부동산을 팔아서 갚는다고 가정한다면 시스템리스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금융감독 당국이 선제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이유다. 연쇄적인 담보부동산 처분은 부동산가격 폭락으로 이어지고 결국 대출은행 부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오피니언타임스=김선구]

 김선구

 전 캐나다 로열은행 서울부대표

 전 주한외국은행단 한국인대표 8인 위원회의장

 전 BNP파리바카디프생명보험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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