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진의 청춘사유]

“다음 강의시간은 자연과 교감하는 것으로 대체하겠습니다”

강의실은 순식간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쨌든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조용히 환호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이것은 분명 또 다른 종류의 엄청난 과제일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칠판만 멀뚱멀뚱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혹자는 그저 농담일 거라는 추측으로 큰 소리로 웃기도 했다. 나는 반신반의하며 교수님의 다음 말씀을 잠자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창백한 교실을 벗어나 자연으로 가보세요. 나무와 대화도 하고, 이름 모를 꽃의 옆자리에 앉아 하루의 삶도 돌아보세요. 그래도 혹시 시간이 남는다면 풀들의 전략(이나가키 히데히로, 2006)이라는 책을 읽어보길 추천합니다. 이상 마치겠습니다”

©픽사베이

박사 공부를 한답시고 책을 뒤적거리며 살고 있던 나에게 교수님의 말씀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자연과의 만남은 어색함 그 자체였다. 정신없이 살아가는 나의 하루에 ‘자연’이 비집고 들어올 틈은 없었다. 아침에 지하철이라는 기계에 운반되어 철근으로 만들어진 건물에 몸을 맡기고 어느덧 내 삶을 지배해버린 컴퓨터에 코를 박고 있으면 하루가 다 가버리는 쳇바퀴가, 정말이지 일상(日商)을 넘어 일생(一生)이 되어버렸다. 초등학교 시절 곤충채집 시간을 제외한다면 자연이 내 삶에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이런 나를 자연이 받아줄까?

용기를 내어 집 뒤편 작은 산책로에 가보았다. 이 집을 소개해주었던 공인중개사는 집의 장점 중 하나가 주변 산책로라고 했다. 하지만 이사 온지 1년이 넘었지만 산책로에 발을 디딘 것은 처음이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들이 양쪽으로 즐비한 중앙에 서서 두리번두리번 거렸다. 이렇게 웅장한 숲이 내 삶의 근거리에 펼쳐져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그들은 어느 하나 나를 반기지도 않았지만 싫은 내색 또한 없었다. 용기를 내어 나무의 몸에 손을 살며시 포개어보니 그들의 거친 피부가 힘겹게 살아온 일생을 말해주는 듯 했다.

나 또한 힘겨운 일생을 보내고 있지만 푯대 없이 하루를 살아내는데만 급급했다. 하지만 한참동안 나무를 묵상하고 보니, 그는 하나의 줄기를 통해서 수많은 가지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나갈 수 있도록 든든히 지원해주는 목적 지향적 삶을 살고 있었다. 각양각색의 가지들이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나무는 땅 속 깊숙이 뿌리내려 가지들의 꿈에 영양분을 공급해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색찬란한 다양성이 펼쳐지고 있는 한 그루의 나무.

©픽사베이

나는 마주보던 나무에 양쪽 어깨를 기대고, 양 손으로 그의 등 뒤까지 닿도록 감싸보았다. 나무와 최초의 포옹이 어색했지만, 왠지 모르게 푸근했던 것은 나 또한 그의 일부가 되어 하늘로 뻗어나가는 가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 때문이었으리라. 지나가는 행인을 의식하여 차마 나무에게 말을 건네진 못했지만 분명 오늘부터 우리가 친구가 된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나도 그처럼 누군가를 위해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겠노라고 다짐해보았다.

“지난주 자연과의 만남은 어땠나요? 어쩌면 인간이 알고 있는 것보다 자연이 경험한 것이 훨씬 깊고 값진 것일지도 모릅니다. 지난주에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허비한 학생은 아무리 책을 들여다봐도 알 수 없는 소중한 깨달음을 놓쳤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내 삶에는 자연이 숨 쉬기 시작했다. 지하철, 건물, 컴퓨터로 똘똘 뭉친 빈틈없는 하루에 나무 한 그루가 심어졌다. 나무는 또 다른 친구를 소개해줬기에 어느덧 무성한 숲을 이루어가고 있고, 나는 그들의 지혜의 숲에서 ‘삶’을 배우고 있다.[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심규진

 한양대학교 교육공학 박사과정

 청년창업가 / 전 포스코경영연구소 컨설턴트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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