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의 글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투표 같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정적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60대 이상 세대들의 지지 이유는 ‘불쌍해서’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무슨 불우이웃 돕기도 아니고 한 나라의 대통령을 선택한 이유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최근 미국 대선에서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트럼프가 당선됐다. 지난 6월에는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브렉시트를 결정했다. 트럼프의 당선과 영국의 브렉시트에는 공통적으로 이민자에 대한 혐오 정서가 깔려있다. 지금 나의 상황이 안 좋은 것은 나 자신이나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이민자들이 저렴한 임금에 노동력을 제공해서 나의 자리를 뺏어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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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다수의 이민자들은 값싼 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자국민이 기피하는 업종에 종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취업하고자 하는 회사에 나 대신 합격한 사람들은 이민자가 아니라 대부분 자국민들이다. 하지만 그런 현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겐 단지 자신의 불행의 원인을 전가시켜줄 대상이 필요할 뿐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늘 자신보다 약자이다. 그래야 마음껏 혐오할 수 있으니까.

미국 대선에서 각종 여론조사와 전문가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건 소위 ‘샤이 트럼프’(Shy Trump)의 역할도 컸다고 한다. 대놓고 지지하지는 못하지만 트럼프의 이민자나 여성,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 발언에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 쉽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생각들을 거침없이 말해주는 트럼프에게 정서적 동질감을 느끼고 기꺼이 그에게 표를 던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기적인 존재이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전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혐오정서는 전혀 그것을 뒷받침해 주지 못한다. 자신보다 약자를 혐오한다고 해서 어떤 이익도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거대한 비극의 희생자들인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 농성장 앞에서 폭식 투쟁을 하고, 아직 수습하지 못한 실종자들의 시신을 어묵에 빗대고, 유가족들 앞에서 보란 듯이 어묵을 먹어대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경멸과 분노를 일으킬 뿐 자신에게 아무런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내가 지금 불행한 것은 나 자신의 문제이거나 부의 독점과 불평등한 분배, 불안정한 노동시장, 정의롭지 못한 사회환경 등 사회구조상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문제는 개인의 노력으로 쉽게 극복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의 장기간에 걸친 연대와 노력이 필요하다. 반면에 나의 불행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런 나를 위로하는 가장 즉각적인 방법은 내 불행의 원인이 될 적당한 대상을 찾아 그를 혐오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 일자리를 뺏어간 이민자를 혐오하고, 나와 성정체성이 다른 성소수자들을, 나를 무시하는 여성을 혐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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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증오의 에너지는 자신을 서서히 파괴시킬 뿐 자신의 삶에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무분별한 혐오의 대상이 된 사람들은 하루 하루 불안 속에서 살아간다. 트럼프가 당선되자마자 백인이 아닌 타인종이나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위협이 가시화되고 있다. KKK단을 상징하는 하얀 복면을 쓰고 거리를 활보하거나, 유학생이나 이민자의 집 대문에 ‘꺼져 네 나라로’ 같은 경고 문구를 붙이는 일들이 벌써부터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증오는 또 다른 증오를 낳을 뿐 결코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나보다 약자를 괴롭히고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내 불행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자신을 갉아먹는 증오의 에너지를 정당한 분노로 바꾸어 사회의 부조리들을 바꾸어야 한다.

대통령의 비호를 받으며 온갖 특혜와 비리로 국정에 개입하고 막대한 부를 챙긴 일당들의 행태에 분노해야 한다. 인체에 치명적인 화학물질이 가득한 작업환경에서 일하다 불치병에 걸린,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직원들의 아픔은 외면하면서 정권 비선 실세의 딸에게 수십억씩 쾌척하고 그것의 몇 배에 달하는 이익을 챙긴 재벌의 행태에 분노해야 한다. 많은 청년들이 한평 남짓한 고시원에 틀어박혀 몇년을 매달려도 9급 공무원조차 되기 힘든데 단지 정권 실세와 인연이 닿았다는 이유로 아무런 노력없이 하루 아침에 고위직 공무원이 되는 현실에 분노해야 한다. 이런 정당한 분노들이 모여 행동으로 이어지면 나를 힘들게 하는 많은 것들을 바꿀 수 있다.

사람들이 지금보다 조금 더 이기적(?)이 되어 무엇이 자신에게 더 이익이 될 수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고 행동에 옮긴다면 우리의 내일은 달라질 수 있다. 오만한 권력이 분노로 결집한 국민의 뜻에 어떻게 무너져가는지를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돌아본다면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인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행동하자.[오피니언타임스=김동진]

 김동진

 한때 배고픈 영화인이었고 지금은 아이들 독서수업하며 틈틈이 글을 쓴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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