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채연의 물구나무서기]

수능을 한달 앞둔 지난달 17일 서울 중구의 입시학원에서 한 학생이 쪽잠을 자고 있다. ©포커스뉴스

1. 열아홉의 동의어는 ‘고3’이다. 아침 일곱 시 수업부터 저녁 열한시에 끝나는 야간자율학습까지. 나에게는 지켜야 할 책상과 의자 한 쌍이 있었고, 감옥보다 작은 그 곳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책상 한구석에 붙어있는 시간표에 맞춰 흘러가는 밋밋하고도 똑같은 일상.

성인이라는 단어를 동경했다. 성인. 자라서 어른이 된 사람. 뜻이 정확하게 와 닿지는 않았지만 열아홉의 나에게 그 의미도 어감도 완벽해 보였다. 마치 ‘미성숙’이라는 것과 멀고 대비되는, 완연(完然)한 의미로 들렸다.

그렇게 나는 열아홉의 겨울을 지나 스무 살의 봄을 맞았다. 그러나 나의 성인은 완연하지도, 완벽하지도 않았다. 거울 앞에는 여전히 화장기 없이 작은 두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내가 하는 생각들도 유치하고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성인이 되고도 변한 것 하나 없는 내가 두려웠다. 어쩌면 나는 어릴 적 보던 만화영화 주인공이 요술봉을 흔들며 변신하듯 성인이라는 이름으로 스무 살의 변신을 꿈꿨나보다.

©플리커, 양승규

2. 이제 성인이라는 이름표도 달았는데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했다. 열아홉 과거의 나와 구분 지을만한 무언가를 꾸역꾸역 찾아냈다. 내 용돈정도는 스스로 벌기로 했다. 부모님께 손 벌리기 죄송해서 시작한 것도 있었다. 동기야 어쨌든 그렇게 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대학가 앞 편의점의 주말은 쓸쓸하다. 매장에 흘러나오는 음악 볼륨까지 줄여놓으면 정말이지 고요하다. 이따금 웅-웅 소리 내는 기계만이 이 공간의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알린다. 창밖으로 버스와 승용차가 쉼 없이 지나다닌다. 마치 유리창을 경계로 각각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 것 같다.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 속 정적. 그 사이에 내가 오롯이 있음을 느낀다. 때때로 고립감 따위의 공포감이 여유 속에 흘러 들어오고는 한다. 다들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왜 나만 멈춰있는 거야. 왜 그대로인 거야. 나는 두려움에 매장 문을 연다. 열어둔 문 사이로 바깥의 공기가 흘러 들어오고 차들이 내는 소음이 흘러 들어온다. 넌 멈춰 있는 게 아니야. 작게나마 움직이고 있잖아.

딸랑. 아줌마, 매일 같은 과자만 먹으면 안 질려요? 아저씨, 담배 하루에 두 갑씩 피면 안 좋아요 좀 줄여요. 할아버지한테는 이 소주 한 병이 삶의 낙일지도 몰라요. 언니, 매일 라면만 먹으면 몸 상해요. 건네지 못할 많은 말들을 ‘어서 오세요.’ 무심한 한 마디에 담는다. 비슷한 시간에 찾아오는 비슷한 사람들. 하루는 흐르지만 일 년은 흐르지 않는다는 말이 이런 의미일까. 그들은 제 물건을 사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나는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잊어버린다. 그들이 다시 이 공간을 찾아온다면 나는 같은 생각을 반복하고 또 잊어버리겠지.

©픽사베이

3. 문득 모든 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놀랄 때가 있다. 나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 어느덧 스무 살 가을이 왔다. 아니, 이제 가을도 지나가고 있다. 나 잘 하고 있느냐고 물어도 대답은 없다. 그냥 이렇게 하루하루의 일상을 지나다보면 겨울이 오고, 결국엔 봄이 올 것이다. 스물 한 살의 봄.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야자가 끝나고 터벅터벅 발을 끌며 늦은 밤공기에 추워하는 내가 있다. 도망치고 싶던 그 시간들이 종종 생각나는 건 왜일까. 누군가 나에게 기대하던 스무 살을 보내고 있냐고 물으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여전히 그때의 나다. 변신은 없다. 약간의 변화는 있을지라도. 이렇게 흐르다 보면 나의 시간은 사라지겠지. 그 끝자락에서 나의 성인은 완연해질 수 있을까. 돈을 건네받으며 스치는 손끝과 손끝 사이로 우리는 통하고 있을까.[오피니언타임스=송채연]

 송채연

  대한민국 218만 대학생 중 한 명.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 될래요.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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