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린의 작은 음악상자]

처음 듣는데도 ‘어디서 들어본듯한’ 음악들이 간혹 있다. 이런 음악은 들으면 들을수록 묘한 익숙함과 그리움을 느끼게 한다. 버스커 버스커(Busker Busker)의 ‘정류장’ 역시 그런 음악 중 하나다.

어쩌면 우리가 이 음악에서 익숙함을 느끼는 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노랫말 속 상황이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가끔씩 우리에게는 유난히도 힘든 날이 찾아온다.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피로하고 우울한 날 말이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때 너덜너덜해진 나를 보러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연인을 보면 왈칵 눈물이 나오기 마련이다.

2011년 슈퍼스타K 시즌3에서 버스커 버스커가 ‘정류장’을 부르고 있다. ©슈퍼스타K 방송 캡처

‘정류장’은 버스커 버스커가 2011년 10월에 발표한 곡이다. 본래 2005년 패닉이 발표한 동명의 노래를 리메이크해 큰 인기를 얻었다. 버스커 버스커는 슈퍼스타K 시즌3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데뷔한 3인조 그룹으로 쉽고 정감 가는 멜로디와 가사, 그리고 독특한 발성으로 신곡 발표 때마다 각종 음원 차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해 왔다.

노래는 ‘페이드 인’(희미한 소리를 점점 크고 선명하게 들리도록 하는 기법) 기타 소리로 시작한다. 마치 터덜터덜 걷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특별한 기교나 화려한 반주 없이 어딘가 쓸쓸한 기분이 들게 한다.

‘해 질 무렵 바람도 몹시 불던 날’,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 창가 자리에서 턱을 괸 나는 생각에 잠겨 있다. 나쁜 하루를 보냈을까? 면접에 떨어졌을지도, 시험을 망쳤거나 누군가와 다퉜을지도, 어쩌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큰 실수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다지 오래 산 것도 아니건만 인생이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어려서 ‘모진 세상이란 걸 아직 모르는지’ 서럽고 맥이 빠져 울음이 나려는 걸 가까스로 삼켜 낸다. 그러는 동안 목적지에 거의 다 도착했다. 버스 좌석에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켜 내리려는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그대, ‘언제부터 기다렸는지 알 수도 없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그대’였다.

유난히도 길고 힘들었던 하루를 마치고 버스에서 내리는데 지친 나를 달래러 정류장까지 마중 나온 그대의 기다림을,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내가 사 준 옷을 또 입고’ 나와 있는 그대를 생각하면 고마움과 사랑스러움에 힘겨웠던 기억들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픽사베이

그러고 보면 그대는 항상 자신보다 나를 더 생각해줬다. 추운데 왜 기어이 나와 기다리고 있느냐고 맘에 없는 핀잔을 해도, 아니면 노래 속 ‘나’와 같이 말없이 그대를 껴안고 눈물을 흘려도, 어느 쪽이든 그대에 대한 왠지 모를 미안함은 잘 표현할 수 없다. 바보 같은 사람과 연애하면 이렇게 되고 만다. 언제나 생각지 못한 정성에 감동받고 사랑을 느끼면서, 그 만큼의 사랑을 되돌려 주지 못하는 나는 그대에게 또 하나의 빚을 지는 것이다.

이렇듯 두 사람이 만나서 연애를 하다 보면 한 쪽이 상대방보다 더 헌신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노래에서처럼 하염없이 상대방을 기다려 준다든지, 생전 써 본 적 없는 편지를 몇 장이나 써 주는 정성을 보이곤 한다. 그러나 그 사랑을 받는 상대방은 그런 정성에 충분히 감사하고 있으면서도 쉽게 표현을 하지 못할 때가 있다. 내 마음을 이해해 주길 바라면서 그저 꼭 안아줄 뿐. 가사 속 내가 흘렸던 눈물은 거기서 스며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청춘의 연애는 이렇게나 서투르다. ‘난 왜 이리 바보인지, 어리석은지’ 하고 자책감이 들 정도로 스스로가 연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미숙하여 사회생활에서도, 그대와의 연애에서도 자꾸만 실수를 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런 나를 기다려 주는 그대가 있어 안심이 되고 위로가 된다. 그래서 버스커 버스커는 이 곡을 통해 세상의 많은 ‘그대’들에게 수많은 ‘나’들을 대표하여 진심을 전한다. 쑥스럽지만 새삼, ‘그대여서 고마워요’라고. [오피니언타임스=김채린]

버스커 버스커 <정류장>

해 질 무렵 바람도 몹시 불던 날
집에 돌아오는 길 버스 창가에 앉아
불어오는 바람 어쩌지도 못한 채
난 그저 멍할 뿐이었지

난 왜 이리 바보인지 어리석은지
모진 세상이란 걸 아직 모르는지
터지는 울음 입술 물어 삼키며
내려야지 하고 일어설 때

저 멀리 가까워 오는 정류장 앞에
희미하게 일렁이는
언제부터 기다렸는지 알 수도 없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그댈 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댈 안고서 그냥 눈물만 흘러
자꾸 눈물이 흘러
이대로 영원히 있을 수만 있다면
오 그대여 그대여서 고마워요

낙엽이 뒹굴고 있는 정류장 앞에
희미하게 일렁이는
까치발 들고 내 얼굴 찾아 헤매는
내가 사준 옷을 또 입고 온 그댈 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댈 안고서 그냥 눈물만 흘러
자꾸 눈물이 흘러
이대로 영원히 있을 수만 있다면
오 그대여 그대여서 고마워요

 김채린

 노래 속에는 고유의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숨은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려 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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