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의 너영나영]

박근혜 대통령의 ‘호위무사’이자 ‘방패막이’였던 새누리당 친박계가 마침내 촛불 민심에 항복했다. 서청원 의원을 비롯한 친박계 중진들은 28일 허원제 청와대 정무수석을 통해 박 대통령에게 조기 퇴진을 검토해달라고 건의했다. 향후 정국 수습 방안에 대해서도 국회에 백지 위임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이제 새누리당 친박계가 야당이 발의한 박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3분 2 이상의 동의를 얻지 못하도록 세를 결집하는 것은 물 건너갔다. 새누리당이든 헌법재판소든 촛불에 담긴 민심을 거스르는 것은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고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검찰 대면조사 협조 불가 의사를 밝힌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이 친박계 의원들과 회동을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친박계 중진들은 29일 대통령에게 ‘명예 퇴진’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커스뉴스

27일에도 전직 국회의장을 포함해 정치권 안팎의 원로들이 박 대통령의 자진 퇴진을 요청했다. 국민과 국정이 혼돈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박 대통령이 특정 시점에 퇴진할 것을 약속하고 그때까지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해 국정과 차기 대선 관리를 맡는 ‘질서 있는 퇴진’ 절차를 밟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제안이다. 다만 하야 시점은 대선과 정치 일정 등을 감안해 내년 4월 이내로 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친박이 원로들의 제안을 받아들인 셈이다. ‘질서 있는 퇴진’을 하면 정국 운영이 예측가능해 혼란이 훨씬 줄어든다. 국민도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고 본다. 야당도 거부할 명분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원로들은 야당이 아직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제왕적 대통령제의 개헌을 거론하고, 거국중립내각의 구성도 제안했다. 하지만 개헌 문제는 당위성에 원칙적으로 공감대를 확인한 수준에 불과한 데다, 거국내각도 과도내각 정도로 받아들이면 크게 반대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박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피의자임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검찰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수석에 이어 ‘문화계의 황태자’ 차은택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하면서 박 대통령을 공범으로 적시했다. 박 대통령의 범죄 혐의와 목록은 검찰 수사와 곧 시작될 특검 수사를 통해 점점 늘어나고 보강될 것이다.

박 대통령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12월에 접어드는 이번 주에는 탄핵소추안 발의, 특별검사 임명, 국회 국정조사 착수 등의 일정이 예정돼 있다. 고립무원이 되다시피 한 박 대통령이 이 같은 압박을 버텨낼 수 있을까. 국민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언론 보도에 싫증을 내는 정도에 이르렀다. 더 이상 보고싶지 않고 볼 것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비선실세 의혹과 관련 2차 대국민담화를 하고 있다. 2차 담화 이후 3주일 넘게 침묵을 지키고 있는 박 대통령이 측근들의 ‘퇴진’ 의견을 받아들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청와대

지난 26일 밤 전국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는 퇴진과 사퇴에 그치지 않고 박근혜 체포, 구속 등의 구호가 쏟아져 나왔다. 그만큼 국민의 분노와 요구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대학생과 중·고교생의 참여가 늘었다. 어린이 손을 잡거나 어린이를 품에 안고 나온 부모들도 줄지 않고 있다. 이 같은 평화 시위를 공권력으로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에 하나 물리력으로 제압하거나 해산하려 한다면 곧바로 범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유혈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은 퇴진을 결단해야 한다. 국회의 탄핵 소추안 동의를 거쳐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이르게 되면 국정의 불확실성과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이 퇴진 요구를 무시한 책임을 물어 박 대통령에 대해 더 엄중한 처벌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자진 퇴진하게 되면 특검 수사는 물론 국정조사의 강도도 약해질 수 있다.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는 길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침 박 대통령이 제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박 대통령에게는 이번이 더 망가지지 않고 퇴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오피니언타임스=황진선]

 황진선

 오피니언타임스 편집인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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