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연의 사(死)사로운 생각]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카프카의 단편소설 ‘변신’의 시작을 알리는 구절이다. 주인공인 그레고르 잠자는 영업사원이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 네 가족을 책임지는 한 가정의 실질적인 가장이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해버리며 시작한다.

카프카의 ‘변신’ 책 표지 ©네이버 책

카프카는 이 책에서 벌레의 외양만 간략히 묘사하고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벌레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밝히고 있지 않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흉측한 갑충’이라는 표현을 접했을 때 너무도 자연스럽게 바퀴벌레를 떠올렸다.

바퀴벌레는 흉측한 벌레의 대명사다. 바퀴벌레는 많은 사람들이 혐오해 마지않는 벌레이다. 바퀴벌레를 떠올릴 때 흔히 사람들은 몸서리를 친다. 집안에서 바퀴벌레를 마주치기라도 하는 날이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리를 꽥 지르며 온갖 물건을 집어던지고 벌레 퇴치약을 찾아 물대포를 뿌리듯 뿌려댈 것이다.

바퀴벌레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유명하다. 생명에 대한 집요함은 그를 더욱 징그러운 존재로 느끼도록 한다. 바퀴벌레에 대해 누구나 들어봤을 무시무시한 소문이 몇 가지를 들여다봤다.

첫 번째 소문은 바퀴벌레가 죽을 때 자신의 알을 다 퍼뜨리고 죽는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사실보다 살짝 과장된 내용이다. 실제로 암컷 바퀴벌레는 알집을 갖고 있는데, 이는 모체에서 떨어져 나와도 살 수 있다고 한다. 암컷 바퀴벌레는 죽음의 위협을 느낄 때 알집을 보호하고자, 알집을 모체로부터 떨어뜨린다. 그럼으로써 알집 내부에 있는 자식들만은 죽음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바퀴벌레를 때려죽일 경우, 알집을 모체로부터 떨어뜨릴 충분한 시간이 허용되지 않아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두 번째는 약을 뿌려 바퀴벌레를 죽이면, 그 다음 세대는 약에 대한 내성이 생겨 더 이상 그 약이 소용이 없게 된다는 주장이다. 이는 과학적 근거를 가진 사실이라고 한다. 암컷이 독극물을 먹고 죽을 경우, 알집은 해당 독극물에 내성을 가진 바퀴벌레를 만든다고 한다. 어쩌면 이는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자신의 알집에 있는 아이들을 보호하고자, 있는 힘을 다 쥐어짜 알집을 때어내는 것. 놀라운 모성애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자신이 죽으면서 아이들에게만큼은 자신과 같은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하고자, 독극물에 대한 내성을 만들어주는 노력은 모성애가 빚어낸 기적으로까지 보인다. 암컷 바퀴벌레의 죽음은, 지극한 모성애와 번식에 대한 강한 욕구, 그리고 집념을 보여준다.

©픽사베이

하지만 바퀴벌레의 이러한 생명력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진한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징그러운 벌레가, 죽으면서까지 자신의 종족을 보호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어쩌면 지긋지긋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만약 바퀴벌레가 아닌 사람의 모습이었다면 어땠을까? 인간의 삶을 향한 집착, 종족 번식을 위한 집념은 또 다른 존재나 누군가에게 어떻게 보일까?

카프카의 ‘변신’에서 결국 주인공인 ‘그레고르 잠자’는 벌레의 형태로 죽음을 맞이한다.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에 박힌 채 약 1개월을 아파하다가, 쓸쓸히 그리고 어쩌면 편안하게 죽어간다. 그레고르 잠자가 죽은 후 그의 시체는 그의 가정에 새로 온 늙은 가정부에 의해 깨끗이 버려진다. 만약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로 변한 이후에도 인간처럼 행동하고 생각하며 아등바등 살려고 했다면, 삶에 대해 집착했다면 그의 존재는 가족들에게 더욱 끔찍한 존재가 되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가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고, 죽음을 맞이하였기에 카프카의 ‘변신’ 속 그의 가족들은 깔끔한 결말을 가질 수 있었으리라.

요즈음 사회 분위기가 심상찮다. 몇몇 사람들의 자리에 대한 집념, 악착같이 자신의 것을 사수하고자 하는 모습들은 국민들에게 삶에 대한 숭고함이 아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자신들의 후손을 위해 악착같이 손에 쥐고 축적한 부와 권력을 물려주는 모습들,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도 알집만은 떼어내며 끝끝내 자신의 번식성을 자랑하는 모습들, 대를 이어가며 악습을 진화해 가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바퀴벌레처럼 지긋지긋하게 느껴진다. 그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분명히 인지하고 더 이상 예전 같은 높은 위치가 아님을 받아들일 때 현 시국이 깔끔한 결말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오피니언타임스=박자연]

박자연

정답을 맞추려고도, 찾으려고도 하지 말자가 인생의 모토입니다. 다양한 죽음의 형태를 통하여 우리네 삶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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