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진의 청춘사유]

2016년 11월 20일,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이 민간인 최순실 등의 범죄에 공모한 것으로 중간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것은 범죄 사실이 의심되므로 대통령이 ‘피의자(被疑者)’ 신분이 되었음을 뜻합니다. 사실 국민 대다수는 심증적으로 박근혜의 헌법 유린 사태를 인지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현직 대통령의 피의자 입건 사태를 접한 국민들은 분노와 수치심에 몸을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권자 국민은 각 처소에서 박근혜 즉각 퇴진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두고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프레임으로 해석을 시도한 문인이 있기에 그 분께 한 말씀 올리기 위해 간단히 생각을 정리해봤습니다.

지난 2일 조선일보 1~2면에 나눠 실린 이문열 칼럼. 칼럼 내용을 두고 ‘촛불 민심’ 폄훼 논란이 일었다. ©조선일보

“위기란 곧 존립이 위협 당한다는 것, 먼저 죽어 거듭나지 않으면 보수의 미래는 없다”
이문열, 12월2일 조선일보 칼럼

선생님, 지금은 보수의 위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위기입니다. ‘죽어서 거듭나자’라는 보수의 미래 전략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상식을 되찾자’라는 대한민국의 미래 전략이 필요합니다. 부조리한 삶에 대한 문제의식이 듬뿍 담긴 작품으로 많은 이들에게 성찰의 기회를 주신 분께서 어찌 이런 글을 쓰셨는지요. 작금의 시기에서 보수와 진보에 대한 왈가불가(曰可不可)는 논점 일탈의 오류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킬킬거리는 모습이 보기 민망스럽다는 이들도 있었다. (…) 4500만 중에 3%가 한군데 모여 있다고, 추운 겨울밤에 밤새 몰려다녔다고 바로 탄핵이나 하야가 ‘국민의 뜻’이라고 대치할 수 있는가. (…) 촛불 시위의 정연한 질서와 일사불란한 통제 상태에서 ‘아리랑 축전’에서와 같은 거대한 집단 체조의 분위기까지 느껴지더라는 사람도 있었다. (…) 으스스한 느낌마저 들었다고도 했다.”
이문열, 12월2일 조선일보 칼럼

선생님, 글을 쓰시면서 어찌 이렇게 무책임한 인용을 하셨습니까. ‘있었고, 들었다’라는 정도의 말로 이 엄청난 주장을 하시다니, 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광화문 광장에 한번 나가보십시오. 누군가의 지시로 구현되는 기계적 집합체의 모습이 아닙니다. 가슴 속 깊은 소망을 담은 건강한 민주주의 공동체만 있을 뿐입니다. 그곳에는 촛불마저 촛농이라는 눈물을 흘리며 마음을 다하고 있습니다. 골방에 갇혀서 어둠을 보지 마시고, 밖으로 나가서 시민의 빛을 보십시오. 5000만의 함성을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눈으로 직접 똑똑히 보시고 다시 글을 쓰십시오. 그리고 ‘아리랑 축전’이라고 쓰신 것은 그냥 오타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모든 문제는 담임에게서부터 비롯됐다. 다른 반 담임들은 모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청소를 지위하고 감독했건만 우리 담임은 겨우 일만 자신이 나서서 몫몫이 나누어 주었을 뿐, 검사는 여느 때처럼 석대에게 맡기고 일찌감치 없어져 버린 까닭이었다.”
이문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1998, 민음사

선생님, 국정농단의 중심에 대통령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을 예견하시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소설을 쓰신 것 같습니다. 담임의 본분을 잃고 학생 신분의 엄석대에게 모든 권한을 이양해버린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사람을 잘 묘사해주셨습니다. 학급농단 사건을 통해 박근혜 국정농단 범죄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이와 같은 작품 집필에 매진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선생님의 실수는 미워하되 선생님의 작품까지 분서(焚書)하지는 않겠습니다. 이것이 현재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예의일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말이 더 많지만 윤동주의 시로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무얼 먹구 사나> 
바닷가 사람 / 물고기 잡아먹구 살구 / 산골엣 사람 / 감자 구워 먹구 살구 / 별나라 사람 / 무얼 먹구 사나

대한민국을 별나라로 만들어버린 현 정권을 심판할 때가 왔습니다. 우리는 여느 때처럼 물고기 잡아먹고 감자도 구워먹고 그렇게 일상적인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이제는 농단의 별나라를 탈출하여 상식의 지구에서 살 때입니다. 앞이 캄캄한 현실에 등불이 켜지길 기대해봅니다.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심규진

 한양대학교 교육공학 박사과정

 청년창업가 / 전 포스코경영연구소 컨설턴트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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