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영의 창(窓)]

‘최순실 게이트’가 국민들 가슴에 불을 지폈다. 이른 한파와 비바람, 급기야 폭설까지 내렸던 11월은 물론 12월의 칼바람도 촛불민심을 막을 수 없었다. 촛불집회에서 대학생 스태프를 하는 동기는 “날씨가 추워져서 사람들이 많이 안 오면 어쩌지…”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다. 그러나 이 같은 우려는 기우가 됐다. 광화문에 모인 국민들의 분노는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고, 오히려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들어 올린 촛불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도 한동안 많은 사람들이 옷을 껴입고, 우비를 입으며 기꺼이 시위를 위해 주말을 반납할 것이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TV, 신문, 인터넷, 각종 매체에서 기다렸다는 듯 묵직한 진실들을 토해냈다. 우리는 역사적 순간들을 목도하고 있다. 여론은 한 점으로 수렴됐고 국민 통합은 이루어졌다. 그 중심에 촛불집회가 있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발언으로 거센 비난을 받았다. 사실 김 의원의 말대로 촛불은 언젠가 꺼질 수 밖에 없다. 매일같이 광화문에 100만명 넘는 국민이 모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촛불이 꺼지기 전 그 의미를 되새겨보고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진단해볼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불통’이었다. 정부와 국민 사이의 불통보다도 국민들 간의 불통이 민주주의 기능을 둔화시켰다. 불통의 원인은 국민들의 공감대가 하나로 수렴되지 못함에 있다. 다원화된 기억 매체는 국민들의 기억을 분산시켰다. 페이스북으로, 트위터로 혹은 각종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이 ‘소통’하지만, 이 ‘소통’은 각 집단들의 폐쇄적인 기억을 강화했다. 결과적으로 여론에는 항상 불협화음이 뒤따랐다. 이러한 국민적 ‘불통’은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 양자간 갈등을 혐오 수준까지 몰고 갔다. 동시에 대중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가속화했다.

최순실 게이트는 불통 사회에 하나의 돌파구가 됐다. 언론에서 연이어 발표하는 기사들은 현 정부의 부패를 속 시원하게 증명했다. 대중들은 이제 민주주의를 훼손시킨 적이 누군지 정확하게 가려낼 수 있게 됐다. 국민들은 정치권 개혁을 한 목소리로 요구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 촛불집회는 기존의 집회들과 의미가 다르다. 이념 혹은 세대를 막론하고 하나의 공감대를 이끌어냈다는 점, 불의를 향한 대규모 저항이라는 점에서 4.19 항쟁, 6.10 항쟁의 성격과 궤를 같이 한다.

지금까지의 촛불집회보다 더 많은 인원들이 모였음에도 질서정연하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진행되는 점도 흥미롭다. 진영 논리,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개혁의 목소리는 그저 상식적인 사회에 대한 갈망으로부터 비롯됐다. 촛불집회 참가자 숫자가 주최 측과 경찰추산이 다르다거나, 혹은 외신의 평가가 어떻다거나 크게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 당장의 가시적인 성과 역시 중요하지 않다. 이번 촛불집회의 진정한 의미는 국민들 개개인이 자신의 민주적 열망이 이토록 크고 뜨거운 것이었음을 확인했다는 점에 있다. 이념, 세대를 막론하고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 민주주의를 향한 그 공감대가 오늘날의 불통 세대를 숨 쉬게 해줄 것이다.

오늘 밤도 광화문에서는 민주정의 실현이라는 기대를 품고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밝힌다. 이 기억은 국민들 가슴에 남아,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성숙시킬 것이다. 촛불은 분명 언젠가 꺼질 운명이다. 하지만 국민들 가슴 속 심지는 꺾이지 않는다. 그들의 임계점이 한계에 도달하는 순간 민주적 열망은 언제고 다시 뜨겁게 피어날 것이다. [오피니언타임스=오승영]

 오승영

경희대학교 재학 중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