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기수의 중국이야기]

불과 16세의 양치기 소년 다윗이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을 돌팔매로 물리쳤다는 이야기는 구약성서 사무엘서 상(上) 17장에 나오는 얘기이다. 상대도 안 되는 약자가 거대한 세력을 물리쳤을 때 우리는 이 얘기를 자주 인용한다. 오늘날 신체적, 환경적으로 열세인 사람들이 객관적인 불리함을 딛고 일어서게 하기 위한 동기 부여에도 요긴하게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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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에서 절대적인 불리함을 딛고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는 한(漢)의 유방(劉邦)이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를 물리친 ‘초한지쟁(楚漢之爭)’이다. 시정잡배들과 어울려 다니며 술이나 마시던 건달 유방(劉邦)이 기원전 209년 얼떨결에 봉기군의 수령으로 추대된 후 불과 7년 만에 황제로 등극하게 된다. 7년 중 5년 동안 당시 역발산 기개세(力拔山 氣蓋世:힘이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음)로 천하를 호령하던 항우(項羽)와 대륙의 패권을 놓고 다투었는데, 절대적인 세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끝내 항우를 물리치는 기적과 같은 역전승을 일궈낸다. 그의 성공은 후세의 많은 사람들에게 ‘할 수 있다’는 용기와 힘을 실어 주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오만과 방심이 승부에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줬다.

이 기적과 같은 역전승이, 시공을 초월한 2000여년 후 중국 공산당 혁명을 성공시킨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에 의해서 재현된다. 기원전 202년 12월, 한신이 이끄는 한나라 군대에 쫓겨 해하(垓下)에서 겹겹으로 포위당한 채 애첩 우희와 함께 자살한 항우처럼, 1949년 그토록 우세한 병력과 장비에도 불구하고, 장제스(蔣介石:장개석)는 대륙의 모든 영화(榮華)를 뒤로한 채, 중국 남쪽의 조그만 섬인 타이완으로 쫓겨가게 된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1일 마오쩌둥은 베이징의 텐안먼(天安門)에 올라 혁명 동지들 옆에서 전 중국 인민을 향해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엄숙하고도 비장하게 선포한다.

오늘날 14억의 중국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중국 공산당은 1921년 7월, 공산당 대표 14명이 참여한 제1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통해 상하이(上海)에서 창립되었다. 소련에서 귀국한 천두슈(陳獨秀)가 지도자였는데 나중에 중국 공산당의 최고 실력자가 된 마오쩌둥도 이 중 한 명이었다. 초기에는 도시 노동자를 중심으로 지지층을 형성하다가 대장정(大長征)을 거치면서 농촌을 파고들어 농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게 되는데, 이는 농촌 포섭을 주장한 마오쩌둥이 1935년 구이저우성(貴州省) 쭌이(遵義) 당 대회에서 확고한 당의 지도자로 부상하는 계기가 된다.

이후 1949년까지 이들이 걸어온 길은 그야말로 파란 만장의 연속이었다. 2차에 걸친 국공합작(國共合作)과 국공내전(國共內戰), 처절한 일제와의 싸움은 그 자체가 험난했던 중국 근대사를 말해준다.

중국 천안문 광장에 마오쩌둥 사진이 걸려 있다. ©픽사베이

대장정은 중국 공산당이 겪은 대표적인 고난이다. 국민당 군대의 집요한 포위 및 토벌 작전을 견디지 못한 공산당은, 그들의 중앙 근거지였던 장시성(江西省) 루이진(瑞金)을 포기하고 새로운 공산당의 근거지를 확보하기 위해 피눈물 나는 도피 행각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대서천(大西遷)이라고도 하는 장정이다. 이들은 1934년부터 1936년까지 장장 1만 2500km를 걸어서, 그리고 국민당 군(軍)의 집요한 공세를 견뎌 내면서 행군하여, 결국 산시성(陝西省) 옌안(延安)에 새 근거지를 만든다. 장정 도중에 일반 주민들의 병력 보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옌안에 도착했을 때에는 전체 30만의 병력 가운데 불과 3만 명만이 생존했다고 한다. 이후 이들은 세계 전쟁사에도 남은 특유의 게릴라전으로 거대한 국민당 세력을 타도하는 한 판 뒤집기에 성공하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 사람이 살다보면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어떤 힘이 작용하여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는 이를 ‘운명’이라고 부른다. 1936년 12월, 시안에서 공산당을 포위하고 마지막 공격을 준비하던 국민당군 부사령관 장쉬에량의 운명적 배신, 공산당의 마지막 명줄을 끊기 위해 시안에 온 장제스를 불시에 감금하여 공산당을 누구보다 싫어했던 장제스로 하여금 본인이 인질이 되어 공산당의 기사회생을 지켜보게 했던 시안사건은 차라리 운명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중국 공산당의 파란 만장한 도정(途程)을 보면, 그 집요함과 독함에 가슴 섬찟한 면이 있는가 하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치열함에 한편으론 숙연함마저 느껴진다. 그리고 역사의 소용돌이에는 인간의 힘이 미치지 않는 또 다른 운명의 힘이 엄연히 작용함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어쨌든 국민당의 대학살과 끈질긴 토벌작전,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대장정의 시련을 견뎌내면서, 또 다른 적인 일본 침략군과도 힘겨운 전투를 해야만 했던 그들의 모진 역경과 그것을 이겨낸 힘이, 오늘날 중국 공산당의 배경과 모태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오피니언타임스=함기수]

 함기수

 글로벌 디렉션 대표

 경영학 박사

 전 SK네트웍스 홍보팀장·중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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