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웅의 촌철살인]

연일 타오르는 촛불은 언제쯤 꺼질까. 요즘 자주 쓰이는 ‘지속가능성’ 개념을 촛불에도 적용할 수 있다. 그만큼 촛불이 동력을 유지하는 것은 진행 중인 탄핵과 후속 정국에 있어 사활적인 요소다. 이 문제를 살피려면 촛불을 과소평가하고 폄하하는 발언들이 타당한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6차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 3일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서울 동대문에서 열린 ‘헌정질서 수호를 위한 국민의 외침’ 집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작가 이문열은 ‘보수여 죽어라…’란 조선일보 칼럼에서 이런 주장을 한다. “(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 중) 100만이 나왔다고, 4500만 중에 3%가 한군데 모여 있다고, 추운 겨울밤에 밤새 몰려다녔다고 바로 탄핵이나 하야가 ‘국민의 뜻’이라고 대치할 수 있는가.”

100만 명 이상이 나왔다고 해도, 그걸 국민의 뜻과 동일시하는 건 비약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그럼 4500만 중 몇 %가 나와야 국민의 뜻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이문열 칼럼에 달린 댓글 중에는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긁어모아 만 명이 모였다. 그러면 0.03%인가?”란 것도 있었다. 각국 언론은 한국의 촛불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것이라며 예의 주시하고 있다. 미국 온라인 메체 쿼츠는 “인구의 3%인 150만 명이 모였다면 미국에서 1000만 명이 시위하는 것과 같다”고 평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촛불의 규모를 의심한다. 자신의 블로그에서 “시민 숫자도 경찰 추산대로 26만 명에 불과한데도 150만 명으로 확대 과장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글에는 주장만 있고 논증이 빠져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대면조사를 벌이지 않고 서둘러 발표해 버린 검찰의 수사”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다. 한데 조사를 거부한 것은 대통령이었다. 탄핵을 강행하면 ‘침묵하던 다수’가 들고 일어나 저항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박 대통령의 한미 정상외교를 수행하던 중 성추행 사건을 저지르고 줄행랑쳐버린 자신의 과거를 싹 잊어버린 것 같다.

자라코리아의 이봉진 사장은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이 시위할 때 다른 4900만 명은 무엇인가 하고 있다.” ‘다른 4900만 명’은 윤 전 대변인이 말한 ‘침묵하던 다수’와 정확히 일치한다.

더 실감나는 사례도 있다. 지난달 14일 경북 구미시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부근에서 한 시민이 ‘박근혜 퇴진’이란 피킷시위를 벌였다. 박정희 탄신 99주년 행사에 맞춘 것이었다. 한 여성이 이 피킷 시민을 향해 소리쳤다. “침묵하는 다수가 있다는 걸 알아두라.” 다른 여성은 “(시위에) 200만 명이 왔다고 쳐, 나머지는 다 (박근혜) 지지자들이야”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3일 서울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이런 발언들은 거대한 촛불 앞에서 위축된 심리의 발로일 것이다. 그래서 촛불의 규모가 실제로는 훨씬 적을 것이라고 믿고 싶은 거다. 여기서 ‘침묵하는 다수’란 논리가 나온다. 이 말은 자기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는 불특정 다수를 뜻한다.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 반전 시위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켜 “저는 침묵하고 있는 다수(silent majority)의 지지를 호소합니다”라고 말해 유명해졌다. 대체로 비판세력을 반박하는 대항논리로 즐겨 동원된다.

촛불집회 참가자 수를 정확히 세는 게 가능할까. 경찰과 주최 측의 추산 인원이 큰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유동인구 때문이다. 경찰은 3.3㎡(1평)당 사람 수(성인 9~10명)를 파악해 전체 인원을 추산하는 고정인구 집계 방식을 쓴다. 하지만 좀 더 정확한 집계를 하려면 유동인구를 더해야 한다. 그런데 유체역학과 입자물리학까지 동원해도 그 계산이 어렵다.

촛불 민심을 조롱하는 발언은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원조격이다. 지난달 17일 “촛불은 촛불일 뿐이지 바람이 불면 다 꺼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희망과는 정반대로 촛불은 ‘횃불’이 되어 타올랐다. 앞으론 어떨까.

오마이뉴스가 지난 3일 6차 촛불집회 현장에서 참가자 100명에게 “촛불집회를 중단하게 만들 계기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탄핵 심판 결정’이란 응답이 39명으로 가장 많았다. ‘특별검사의 대통령 기소’와 ‘박근혜의 즉시 하야 이후’가 각각 18명이었고, 국회의 탄핵 의결은 17명이었다. 촛불 민심이 최장 180일이 걸릴 수 있는 헌재의 탄핵 심판 때까지 인내심을 발휘할 것이란 전망을 가능케 한다.

시민혁명에 준하는 대변혁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정치사에 기록될 한 주를 지나가고 있다. 그 변혁의 동력은 다른 무엇이 아닌 촛불이다. 새누리당 비박계가 탄핵안 표결에 참여키로 마음을 바꿨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국정조사 청문회에 불려왔다. 9대 재벌 총수들도 그랬다. 다 촛불의 힘이 아니고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일이다.

시인 신석정은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란 시를 썼다. 나는 이 시를 패러디해 ‘아직은 촛불을 끌 때가 아닙니다’라고 말하겠다. 언제까지인가. 최소한 헌재가 탄핵 결정을 내릴 때까지다. 그때까지 촛불의 동력을 유지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은 없다. [오피니언타임스=김철웅]

   김철웅

    전 경향신문 논설실장, 국제부장, 모스크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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