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미의 집에서 거리에서]

지난 12월 8일 오후 3시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는 박물관 특설 강좌가 진행됐다. 올해 마지막 수업이었다. ‘박물관 대학’이란 별칭으로 널리 알려진 이 강좌의 종강은 좀 특별했다.

강사는 고고학자 김병모 한양대 명예교수였다. 김 교수는 본격 수업에 앞서 “대학원 박사과정 시절이던 1977년 박물관 1기 강좌 이후 올해 40기에 이르기까지 꼬박 40년간 강의해왔다”며 “오늘 강좌를 끝으로 중앙박물관 특강과 작별한다”고 밝혔다. 박물관 특강의 피날레 수업이 공교롭게도 원로학자의 퇴임 강좌였기에 수강생들의 감회도 남달랐다.

김병모 한양대 명예교수 ©고려문화재연구원 홈페이지

2006년 대학에서 정년 퇴직한 후에도 활발하게 강의 저술 활동을 펼쳐온 김 교수는 “일반인 대상 특강은 수강생들의 동기가 확실하고 적극적이어서 학자로서 대학 강의와 또 다른 보람이 있다”면서도 “기력이 달려 대규모 강의를 더 이상 못한다고 생각하니 정말로 퇴역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이날 김 교수는 ‘2000년 전 김수로 왕의 국제 결혼’란 제목으로 평생 연구해온 가야국 시조 김수로 왕과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의 결혼 수수께끼에 대한 자신의 탐사를 휴식 시간도 없이 2시간여 열강했다. 특강은 고대사 속 전설을 토대로 소설적 추리를 거쳐 역사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려는 학자의 집념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시간이었다.

쌍어문과 2000년 전 허황옥 황후의 한반도행을 추적한 고고학자의 탐사기는 2008년 저서 ‘허 황후 루트-인도에서 가야까지’등을 통해 발표됐지만, 연구자로부터 직접 전해 듣는 역사이야기는 배우 해리슨 포드가 성배를 찾아 나선 고고학자로 등장하는 영화 ‘인디애나 존스’이상 흥미로웠다.

제37회 가야문화축제 특설무대에서 김수로왕과 허황옥의 국제결혼을 소재로 한 뮤지컬 ‘아름다운 동반자’가 공연되고 있다. ©김해시

1961년 신설된 서울대 고고인류학과에 입학한 이 학과 1회 졸업생으로 고고학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1세대 학자인 김 교수. 그는 55년 전인 1961년 대학 1학년 때 김해 수로왕릉의 대문을 장식한 한쌍의 물고기 문양, 그리고 왕비릉 앞 비에 적힌 ‘가락국 수로왕비 보주태후 허씨릉’의 ‘보주’(普州)라는 지명을 처음 접했다. 25세쯤 마음에 품었던 쌍어문(雙魚紋)과 보주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풀어내기 시작한 것은 20년 후인 45세부터였다.

인도, 중국을 비롯해 동남아시아, 유럽, 미국 등지를 수차례 현지 답사했다. 2000년 전 인도인인 허황옥의 선조가 중국 쓰촨성 보주를 거쳐 48년 한반도에 건너오면서 쌍어문도 한반도에 들어왔다는 것이 김 교수의 논지다. 김해 왕비릉 비에 허 황후가 인도 아유타 대신 중국의 지명을 앞세워 보주태후라고 기록된 것도 허 황후가 인도인이기는 해도 쓰촨성 보주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이라는 것. 허 황후의 선조가 인도 아유타에서 중국으로 망명해 보주에 정착해 살았을 것으로 김 교수는 추론한다. 후한서에 따르면 서기 47년 소수민족의 반란사건으로 한나라 중앙 정부가 토착민 7000명을 강제 이주시켰고, 반란군 주동자의 성이 허씨였다는 기록도 있다. 김 교수는 수차례 현지 방문을 통해 쓰촨성의 허씨 집성촌도 직접 확인했다.

경남 김해시 서상동 수릉원에 건립된 허황옥(서기 33년~서기 189년)의 청동 동상. ©김해시

기원전 페르시아 신화에도 등장하는 신어(神魚)사상,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된 쌍어문이 인도, 중국를 거쳐 한국에 전파된 과정을 문헌, 현지답사 기록, 각종 쌍어문 유물 유적 등을 참고로 상상하고 추론하며 입증을 시도했다. 쌍어는 만물을 보호하는 수호신으로 기원전부터 서기 1세기경까지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스키타이, 간다라, 위난, 쓰촨, 가락국 등지로 광범위하게 전파됐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김 교수는 사진 자료들을 제시하며 허황옥이 자신의 고향이라고 말한 아유타국이 있는 인도 북부 아요디아에는 1000여 개의 힌두교 사원에 쌍어문이 빠짐없이 새겨져 있다고 밝혔다. 고대 인도사람들이 수호신으로 여겼던 쌍어문은 지금도 현지 택시 번호판, 경찰 계급장에 등장하는 등 신어 사상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이야기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등장하는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에 대한 기록이 전설이 아닌 분명한 역사임을 역설하는 원로 고고학자. 평생 한 씨족의 역사를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탐사할 수 있었던 자신을 ‘행복한 학자’라고 소개하며 강단을 내려갔다.

우리 전통문화와 역사에 대한 전문가 특강을 비롯, 유적지 답사와 박물관 전시 관람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국립중앙박물관회 특설 강좌는 신년에 41기 강좌가 또 시작된다. [오피니언타임스=신세미]

 신세미

 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서 기자로 35년여 미술 공연 여성 생활 등 문화 분야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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