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청년칼럼
우리가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이[최수안의 동행]
최수안 | 승인 2016.12.09 15:36

시국은 난국이다. 속보 같지 않은 속보가 날아든다. 난세에 나타난다는 영웅은 어디에? 임진왜란 때, 임금은 도망가고 백성들이 나라를 지켰던 것처럼 시민이 영웅이 되어야 하는가? 역사가 이런 식으로 반복되는 것인가? 글 쓰는 사람으로서, 어느 시인의 말처럼 너무나 할 말이 많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할 지경이다.

©포커스뉴스

현 시점은 내게 나의 어린 시절, 노태우 정권 때의 학생운동을 떠오르게 한다. 대학가에 살았던 나는 ‘경찰도 좋은 사람이고 학생도 공부하는 좋은 사람인데 왜 싸우지? 대학생이 되면 격문이라도 뿌려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고는 했다. 최루탄 냄새를 주 3회 이상 맡고 자란 나에게는 그것이 일상이었다. 평생 최루탄 냄새 속에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지금은 최루탄 냄새 대신 어둠을 밝히려는 빛이 가득하다. 촛불은 눈물을 흘리며, 스스로 희생하며 타고 있다. 슬픔과 설움을 녹이며 타들어간다. 화를 담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한숨뿐이다. 작은 촛불들이 모여 어둠을 밝힐 수 있다. 바람이 분다. 꽃은 봉오리째 흔들리고 잎맥도 가지도 통째로 움직인다. 살아있다는 것을 알리는 듯 뿌리만 고정된 채 흔들린다. 바람이 부는 건지 그들이 바람을 흔드는 건지. 가진 것이 없다면 버티고 견뎌야 한다.

“그때는 정말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았어.” 2002년 길거리 응원을 해본, 그 당시에 20대였던 누군가가 흘린 말이었다. ‘꿈★은 이루어진다.’ 우리의 꿈은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사랑하는 우리나라에 대하여 ‘민주주의로 가고 있는 나라’ 라고 말해오고는 했다. 아직은 미완성인 민주주의 속에 우리는 모두 혼자다. 국적도 잃었다. 그냥 땅 위에 서있을 뿐이다. 비싼 땅 위에 바람처럼 얼굴과 마음을 스치는 상처를 받으며 우두커니 서 있는 값으로 세금을 내고, 고갈될 연금을 내고 국방의 의무를 다한다. 세상이라는 칠판에 쓰려는 글씨는 다 쓰지 못한다. 분필이 부러지고 만다. 잉크도 쉬이 말라버린다. 소진할 듯 연약한 글을 이어간다. 그야말로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사방이 막혀 있는 방안에서 그 소리는 방안에서만 맴돌다 돌아온다. 위정자는 귀를 막고 하고 싶은 말만 한다. 수십년 간 변하지 않았던 헤어스타일과 태도처럼 이번에도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남는 감정은 오기와 치기일 것이다. 부수고 짓밟고 싶어질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잊힐 거라고, 달아오르다 꺼져버릴 것이라 믿고 기다린다면 오산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표결을 하루 앞둔 8일, ‘탄핵 가결’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국회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그들은 죄책감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망각은 개인의 마음에는 축복이겠지만 눈만 가린다고 자신의 앞에 있는 것들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어린애처럼 자신이 숨어버리면 위험이 앞에서 사라진다고 믿는 생각은 무른 과일처럼 퍼져 있다. 진물이 맴돌아 그대로 썩어가고 있다. 우리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아야 한다. 지치면 안 된다. 다시 한번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된다. 생때같은 미래를 또 다시 잃을 수는 없다.

가진 사람에게는 채우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더 어렵다. 그들에게 서민은 세균 같은 것일 테다. 분명히 있는데도 없는 존재. 위정자와 권력자들이 행복해지려면 반대 세력을 눌러야한다. 서민들 역시 단순한 승리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한쪽이 행복을 느낄수록 상대방은 불행해지는 상황에서 압도적인 화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싸움이 끝난다. 판이 이렇게나 커졌다.

우리가 옳다는 것을 드러내야 한다. 우리가 이 세상 구조를 파악할 만큼 중심축을 잡고 있다는 것, 결국은 국민이 이긴다는 것을 증명해보일 때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얼마나 세상을 조율하고 지배할 수 있는지 보여줘야 한다. “이 승부, 우리가 이깁니다. 당신들이 틀렸어요”라고 당당히 나서야 한다.

국민의 심판에서 진실이 이기는 순간, 이미 세금으로 많이 냈지만 부의금 봉투를 던져줘야겠다. 이제 죽을 일만 남았으니까. 인생은 유한한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어둠이 깔려 있던 그 시간은 가버리고 이제 누가 더 잘못했는지 계산기를 두드릴 시간이 왔다. 기대가 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열리는 9일 오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한 전봉준투쟁단 회원이 도로에 엎드려있다. ©포커스뉴스

모두를 완전히 속일 수 있었다면 좋았을 걸. 말 위에서 도도하게 내려다 보는 이에게 다른 사람들은 하찮게 보였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모두 평등해야 한다는 진리도 그들의 밥그릇 속에 있나 보다. 말은 무슨 죄인 걸까? 기름 때로 무거워진 것을 짐으로 얹고 있으니 명백한 동물 학대이다.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이기적이다.

시각차라는 것이 참으로 무섭다. 권위를 누리며 마치 신이라도 된 듯 군림해야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폭탄의 시계바늘이 돌고 돌아 언젠가 자신의 품에서 터질 것을 모르는 걸까?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진다는 것을. 모두 거품인 것을.

“정말 괜찮습니까? 계속 그렇게 계실 겁니까? 우리의 손을 잡고 그 행렬에서 나올 생각이 없습니까?” 이렇게 물어도 대답하지 않는다면 버릴 수 밖에. 그들이 있는 그곳은 거품의 나라다. 부드럽고 편안하고 손에 쥐면 부서지고 녹아 없어질, 결국 남는 것 하나 없이 사라질 거품들로 가득한 곳. 주변을 둘러봐도 모른다니 참 안타깝다. 어깨에 힘 잔뜩 주고, 고개를 빤빤히 치켜들고 있지만 기름때로 무거워진 머리는 비대해져 좁은 어깨, 마르고 앙상한 다리가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 좁은 어깨에는 그 누구도 기댈 틈조차 없다. 본인 머리를 지탱하기에도 바쁜 어깨는 으쓱대거나, 웃거나, 비웃거나 흥분할 때 들썩거릴 뿐이다. 그런 어깨는 국민들이 바보처럼 기대기에는 너무 좁다.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것을 가르칠까.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나. 배고픔도 모르고 아는 것이 없어 여전히 행복한가보다. “사명을 느낀다는데 그 사명은 누가 준 것입니까”

예전에는 담는 용기가 달라도 담긴 내용물과 양이 같다면 비슷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한다. 고려청자랑 이름 모를 질박한 용기는 다른 것이란다. 그 말을 몸에 새길 듯이 느낀다. 그릇이 크면 뭐하나 깨져버렸는데. 어릴 적에는 미래와 희망 그리고 용기가 있었지만 이제는 초라하다. 돈 말고도 인지도와 이름값, 아니 뭐도 아닌 그냥 신분차이. 호패가 없어서 더이상 소용없음. 한낱 지나가 버려야 할, 소진하고 보내야 할 의미 없는 사람일 뿐. 자본주의 사회의 새롭게 갱신된 신분제도 안에서도 물과 기름은 섞일 수 없다. 타협할 수 없다.

언제나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람들 ©픽사베이

황당한 일을 겪고 나니 사람들이 모두 계산적으로 보인다. 쇼윈도 마네킹처럼 화려한 치장으로 눈길을 끌며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질투심과 소외감,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죄 없는 사람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사람들,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안달 나서 연기를 하고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거짓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은 참 안쓰럽다. 누가,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일까.

세상이 온통 정신병원 같다. 상처를 받으면 각자 병실로 들어가서 나오질 않는다. 너무 차갑게 얼어 있어서 속을 들여다 볼 수 없다. 책에 나오는 말들과 흩뿌려진 세상의 말들을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립싱크하듯이 옮겨 내뱉는, 걱정스러운 눈빛과 위로인 듯한,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과 달콤한 말로 자신을 숨긴 채 모두를 비웃고 있는 어느 누군가는 말이 너무 많다. 지키지도 못할 말들, 꾸며지고 철저히 계산된 말들의 지독한 향수 냄새에 어지럽다.

청춘도 환자도 어르신들도, 모든 서민은 그만 아프고 싶다. 이제 진짜 그만. 자기 밥그릇과 잇속 챙기는 데에만 급급한 사람들. 사람을 도구나 신분 상승의 엘리베이터로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윤리도 공익도 없다. 그런 사람들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자체가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평범한 내가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국민들은 누구에게 위로를 얻을 것인가 ©픽사베이

우리는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동상이몽의 상태에 놓여 있다. 우리는 함께 있어도 다른 곳을 보고 있다. 마치 언젠가 되돌아 갈 준비를 하듯이 그냥 아는 사이일 뿐.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고 싶은 소리만 듣는다. 자살하려는 사람의 마지막 SOS 신호의 목소리도 장난이려니 넘긴다. 그렇게 바쁘고 아프다.

사람은 자기 몸과 마음이 우선이다. 나의 고통과 타인의 고통은 느낄 수 있는 정도에서 이미 차이가 나니 당연하다. 하지만 공감 능력을 계속 키워야 한다. 관계를 맺으려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유대감이 가득 해야하건만 계산이 잔뜩 끼어 있다. 외로움을 관심으로 환전 받으려는 사람들, 무언가를 얻어내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 대인관계 속에서 주변 사람들을 만두처럼 속 터지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가 대인관계로 인해 힘들어한다. 치이고 지친다. 혼자인 것이 차라리 편하여 혼밥족과 혼술족, 1인가구들은 늘어간다. 감정 소모도 노동이라며 혹은 사회적 성공을 위해 관계를 일부러 끊기도 한다. 스마트폰은 소통의 수단인 동시에 차단의 수단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지만 이렇게 ‘고슴도치 딜레마’에 빠져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혼자 조용히 집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생긴다”는 블레즈 파스칼의 말은 재미있다. 사람들은 점점 각자의 독방에서 지낸다. 상처를 받았다며 문을 닫고 숨는다. 진심은 언젠가는 통한다. 진실과 정의는 승리한다. 멀리 있는 진리지만 가까워지기 위해 참고 견디며 인내의 길을 걸어야 한다. 그러나 도중에 그만 포기하고 도망치고 숨는 사람들이 늘어만 간다. 받은 상처 때문에 마음을 다하지 않겠다며 변신을 시도하는 사람도 있다.

“착하게 살아봤자 아무 소용없어”라고 말하는 사람 중에 진짜 착하게 살아 온 사람은 없다고 본다. 순수한 진심이었다면 그런 말이 나올 수가 없다. 자신을 보호하고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또는 사회의 강요로 착하게 지내왔을 뿐. 누군가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그 상대적 박탈감은 또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무기를 만든다. 도미노처럼 차례대로 무너지고, 먹이사슬의 행태처럼 상처를 받았다면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옮긴다. 못을 박은 곳에 남는 것은 상처가 흉터로 남은 흔적이다. 순환하는 2호선에서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 아니 그렇게 분노가 전염될수록 사회가 병든다.

사람들은 손해를 보기 싫어한다. 계산기를 두드린다. 세상을 복잡한 수식처럼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면서 복잡한 것이 싫다고 한다. 뭐든지 단순하게, 간단하고 쉽게 해 나가는 것이 능력인데 복잡하고 어렵게 해야만 멋진 것이란 생각은 세습되어 왔다. 5차 이상의 방정식에는 근의 공식이 없다. 근을 구할 수 있을까? 너 그리고 나는 등식이 될 수 있을까? 우리 모두가 대칭이 될 수 있을까?

빈칸을 정답으로 채우고 싶다. 점점 잃어만 가고, 포기해 나가야 하는 길에 서 있다. 모두가 인어공주처럼 완전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마음이 있어도 목소리로 전하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일상을 나누고 싶고 생각을 나누고 싶다. 사람의 목소리가 그립다. 진심을 담은 목소리. 나는 빈 잔을 들고 있다. 건배를 기다린다.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들어가 어려운 사람살이 가운데에 있는 소소한 기쁨들을 더해주고, 체온과 삶을 공유하며 슬픔까지도 나누고 싶다. [논객닷컴=최선희]

 최선희

 논객닷컴 청년칼럼니스트

 건축회사 웹디자인 파트에서 근무 중인 습작생.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최수안  sooahn17@naver.com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매체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논객닷컴 | (03163)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12, 대일빌딩 1405호
대표전화 : 070-7728-8569 | 팩스 : 02-722-65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종국
제호: 논객닷컴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78 | 등록일 2011년 9월 27일 | 발행일: 2011년 10월 1일 | 발행ㆍ편집인 : 권혁찬
Copyright © 2019 논객닷컴.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