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마케팅]

박근혜는 두 가지 모습으로 우리 안에 있다. 하나는 현재 우리 사회 도처에 포진한 이른바 친박들이다. 친박은 ‘시대와 국민에 공감할 줄 모르는 기득권 세력’의 총칭이다. 친박이 물론 새누리에만 있지는 않다. 탄핵의견 조사에서 나타난 것처럼 탄핵을 반대한 46%의 60대들, 여당이면 부지깽이가 나와도 찍는다는 지역 사람들, 여전한 ‘박사모’들에다가 현재 각처에 있는 친박 부역자들이 일단 우리 안의 박근혜들이다. 나는 그들에 대해서 쓰느라고 이 지면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 이들은 이제 자의든 타의든 심판대에 올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60대 중에서 54% 그리고 영남에서는 이미 반성과 준열한 자기 심판이 나왔다. 그러니 이제 다른 우리 안의 박근혜를 봐야한다. 먼저 현실적 우화부터.

©픽사베이

마법사와 소녀

1963년, 푸른색 기와집에 12살 소녀가 들어가 살았다. 아버지는 절대 권력자로 군림했다. 소녀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중을 받으며 컸다. 장군, 재벌들도 소녀의 눈치를 살폈다. 소녀가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알아서 기었다. 그래서 세상을 사는 데 필요한 두 가지 능력 즉, 소통과 설득 능력이 소녀에겐 필요 없었다.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으면 절대 권력자 아버지조차도 힘을 쓰지 못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비명에 가셨다. 그러자 늙은 마법사가 “꿈에 어머니가 소녀를 대신 돌보라”고 했다며 나타나 시중을 들었다. 늙은 마법사는 뒤에 검은 마법의 망토를 쓰고 있었지만 소녀는 망토의 어두운 힘을 몰랐다.

마법사는 소녀의 얼굴로 변장해 수많은 부정과 축재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몰랐지만 꼬리가 길어지면서 사람들은 그의 정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늙은 마법사를 조심하라고 충고했지만 소녀는 그들에게 레이저 광선 검을 쏘았다. 아버지조차 조심하라고 했지만 오히려 그런 아버지를 비난했다. 항간의 소문에 따르면 그 소녀와 마법사 때문에 구국의 결심을 한 남자가 절대 권력자 아버지를 죽였다. 소녀는 푸른 기와집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아버지를 따르던 자들이 권력을 다시 잡아 아버지 숭배문화를 만들면서 소녀는 추방당한 곳에서도 계속 공주로 살았다.

소녀는 성인이 되었는데 마법사 일가는 끈질기게 껌처럼 붙었고 그가 죽자 그 딸이 또 붙었다. 마법사의 딸은 머리도 신통찮고 사생활도 별로였다. 마법사와 딸은 성인이 된 소녀의 생각도 대신 해주고 말과 글도 대신 써줬다. 보다 못한 소녀의 동생들이 구해달라며 청원을 했지만 오히려 피붙이인 그들을 내쳤다. 그들이 보낸 편지 등에 의하면 그렇다. 그 이후의 무서운 결말은 말하지 않겠다.

이 우화에서 중요한 것은 마법사와 영악한 딸 때문에(사실은 소녀 스스로가 초래한 것이다. 개구멍을 만들어 놓으면 개가 들어오기 마련이다.) 소녀는 세 가지 능력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자유 의지, 소통과 설득 능력 그리고 현실에 대한 공감 능력. 우리 안의 박근혜 원(One)들은 소녀는 착하고 불쌍하며, 마법사와 딸이 아주 나쁘다면서 소녀는 죄가 없다고 하는데, 희한한 것은 나중에 소녀 자신도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능력까지 하나 더 상실하게 됐다. 반성하고 책임지는 능력.

10일 서울 지하철 종각역과 종로2가 일대에서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탄핵반대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우리 안의 박근혜 투(Two)

이런 우화를 만든 이유는 우리 안에 혹시 이런 늙은 마법사와 소녀 같은 어이 실종 현상이 있지 않나 색출해보자는 뜻에서다. 우리는 이제 네 가지 능력을 상실한 근혜식 구체제와 결별해야 하므로.

지금이 스마트 시대라는데 요즘 다수가 앓는 병증 중에 ‘결정 장애 증후군’이 있다고 한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잘 결정을 못해 남이 시키는 대로 또는 대세에 따라 움직이는 증후군이다. 왜 그럴까? 정보 과잉과 대행(Agent) 사회도 이유고 너무 빠른 변화속도도 이유겠지만, “너는 내 말대로 해”라고 시키기만 하는 구체제 교육과 사회운영 방식도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자식의 거의 모든 것을 관리하고 대행해주는 헬리콥터 맘, 권위적이고 대화할 줄 모르며 밖으로만 도는 파파, 이유는 묻지 말고 외우라는 주입식 쌤, 진실은 적을 만들고 거짓이 친구를 만드는 정의실종 문화, 우리가 남이가 하는 편 가르기 좀비 잔재, 실력보다는 드러난 학벌과 실적만 가지고 판단하는 사회, 현상을 섹시하게 조작해 배후와 본질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미디어 등이 그런 환경과 방식들이다. 그 결과가 결정 장애 증후군! 인생을 자기 의지로 살아가야 하는 나이임에도 시중과 수첩 없이는 말을 못하며 자신에게 싫은 소리를 하면 설득보다는 레이저 광선 검을 먼저 날리는 소녀처럼 되는 증후군 말이다.

나는 이런 늙은 마법사 같은 요인들을 ‘우리 안의 박근혜, 투(Two)’라고 부르고 싶다. 나부터도 어쩌면 누군가에게 네 가지 능력을 빼앗는 그런 마법사가 아닐지 문득 두려워진다. 이 대목에서 독자들은 내가 “우리도 죄인이다”라고 말하려는 것이 절대 아님을 알아주기 바란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들과의 뜨거운 안녕이다.

1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7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어린이가 촛불을 살펴보고 있다. ©포커스뉴스

구멍은 또 뚫릴 수 있다.

이런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이 만에 하나 혹시라도 리더가 되면 사회와 국가는 어떻게 될까? 재앙이다. 그런데 가뜩이나 갈 길 바쁜 한국에 이런 재앙이 발생했다. 그것도 그냥 리더가 아닌 절대 권력의 자리에 증후군 환자가 덜컥 앉아버린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타자를 필사적으로 설득하면서 살아온 흙수저 국민들이 도저히 이해를 못한다. 설마, 정말?, 이럴 수가, 마리오네트, 피노키오 코…. 그냥 대중 속에 있으면 너무도 평범하여 드러나지도 않을 존재들이 나라의 최고결정 타워에 숨어서 권력을 가지고 놀았다니, 이런 개구멍 국가가 어디 있는가? 청와대가 뚫리고 국가가 뚫렸는데도 그 구멍을 몰랐다니 정보사회, 스마트 사회가 다 헛말이다.

그런데 이 재앙의 구멍은 언제든지 다시 뚫릴 구멍이다. 그래서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고 횃불을 들면서도, 또한 동시에 우리 안의 박근혜 원, 투를 쳐내는 개인적, 사회적, 국가 시스템적 노력을 안 한다면 우리의 다음은 위대할 수 없다. 그것이 이번 촛불 혁명의 교훈이다. [오피니언타임스=황인선]

 황인선

 브랜드웨이 대표 컨설턴트

 문체부 문화창조융합 추진단 자문위원

 전 KT&G 마케팅본부 미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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