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의 너영나영]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국회 가결 이후 탄핵안을 최종적으로 심리할 헌법재판소(헌재)에 눈길이 쏠려 있다. 박 대통령은 찬성률 78.2%로 탄핵안이 가결된 직후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피눈물이 난다는 게… 어떤 말인지 알겠다”고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고 한다. 무개념·무지·무능의 대통령이었음을 다시 보여준 셈이다. 국민이 박 대통령에게 퇴진을 요구한 것은 최순실씨와 국정을 의논하고 부패에 연루됐기 때문이라기보다 그런 범죄에 대해 아무런 의식이 없는 무개념·무지를 심판하는 측면이 더 컸다. 박 대통령이 창피스럽고 더 이상 대통령직을 맡길 수 없을 뿐 아니라 보기도 싫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게 나라냐’는 구호에 그런 민심이 함축돼 있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포커스뉴스

주변 인사의 전언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아직도 헌재가 탄핵안을 기각해 임기를 채울 수 있었으면 하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바람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것이다. 헌법 제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헌재를 포함해 헌법상 국가기관의 권한은 주권자이자 헌법제정 권력자인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뜻이다. 헌재가 촛불에 나타난 민심을 거부한다면 헌법의 근본 정신을 무시하는 것이다.

2004년 헌재가 국회에서 가결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을 기각했을 때는 지금과는 민심이 정반대였다. 노 전 대통령 때는 탄핵을 반대하는 국민 여론이 60%를 넘은 데 반해 박 대통령 때는 찬성 여론이 78%에 이르렀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당시 야당은 노 전 대통령이 “국민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지지해 주기 바란다”고 말해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3월12일 탄핵안을 통과시켰지만, 헌재는 5월14일 “탄핵을 할 만큼 중대한 법 위반을 하지 않았다”며 기각했다. 탄핵을 주도한 야당들은 그해 4월 17대 총선에서 민심의 역풍을 맞았고, 열린우리당이 의석의 과반을 차지했다.

헌재는 대통령 권한 정지에 따른 국정 공백과 사회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탄핵 심판을 서둘러야 한다. 이르면 박한철 소장의 임기인 내년 1월 31일 전에, 늦어도 이정미 재판관의 임기인 3월 13일 이전에 결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인용 또는 기각 결정을 하려면 재판관 9명 가운데 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데 박 소장과 이 재판관이 퇴임해 공석이 되면 후임 소장과 재판판을 뽑는 일이 쉽지 않은 데다 재판관이 7명뿐이어서 결정을 내리는 데 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 소추 사유는 크게 헌법 위배 행위 5건, 법률 위배 행위 4건이다. 위반한 헌법 조항은 12개, 형법 조항은 직권남용·강요·공무상비밀누설 등 4개다. 그런데 사안이 복잡하고 쟁점이 많아 심리가 마무리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노 전 대통령 탄핵 심판 결정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헌재는 “탄핵 결정을 할 것인지는 단지 헌법이나 법률의 위반 여부가 아니라 그 위반 사항이 중대하여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고, 더 이상 대통령으로써 국정을 수행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에 이르렀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에게도 그대로 적용하면 된다. 법률 전문가들은 “고도의 정치적 사법적 판단이 필요한 탄핵 심판은 엄격한 사실 관계와 증거주의를 요구하는 형사재판 절차와는 다르므로 탄핵 사유가 명백하고 중대한 법률 위반이라는 판단이 내려지면 인용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이와 함께 “가장 중대하고도 확실한 탄핵 사유들을 중심으로 심리하다가 요건을 충족하면 인용 결정을 내리고, 뇌물죄 여부와 세월호 참사 대응과 같은 사실 관계가 복잡하고 입증에 시간이 걸리거나 특검 수사 등이 더 필요한 사안은 판단을 유보하면 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헌법재판관 9인. (맨 위 왼쪽부터) 박한철 헌법재판소 소장, 이정미, 김이수, 이진성, 김창종, 안창호, 강일원,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 ©헌법재판소

헌재는 이에 대해 탄핵 사유 가운데 일부만 선별해 심리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탄핵심판은 구두변론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양 당사자가 합의 하지 않는 이상 헌재가 직권으로 중요한 부분만 골라 심리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전체 탄핵 사유를 심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지 각각의 사유에 대해 인용 또는 기각 결정까지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재판부별 또는 재판관별로 각각의 사유를 심리한 뒤 중요한 사안을 골라 전체 재판부가 헌법과 법률 위반 여부를 집중심리할 수 있을 것이다.

법조계에는 지금까지 드러난 최순실씨의 국정 개입 의혹만으로도 탄핵 결정을 내리기에 충분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헌법재판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보다 더한 탄핵 사유를 요구한다면 헌법상 탄핵 규정이 사문화되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촛불 민심은 탄핵안 가결 이후에도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 주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학계 다수설은 사임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며 “이를 금지하는 명문 규정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퇴진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물론 새누리당을 포함하는 기득권 세력은 탄핵 결정에 이르는 시간을 가급적 늦추면서 정계 개편이나 개헌 등을 내세워 세력을 다시 결집하고 그들의 권력을 유지시켜 줄 보수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마지막까지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야당 역시 박 대통령이 당장 퇴진하면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해 혼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헌재의 탄핵 심판이 촛불 민심에 어긋남이 없도록 주시하는 한편 박근혜 체제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헌재가 박 소장 퇴임일인 1월31일 이전에 인용 결정을 내리게 되면 대통령 선거는 3월 안에 치러지게 된다. 앞으로 정치권은 변화와 개혁을 내세우며 이합집산을 거듭할 것이다. 대선 주자들은 촛불 시민 혁명으로 드러난 민심을 잘 살펴 새로운 시대 정신을 제시해야 한다. 대선 주자들의 공약에는 재벌·검찰·언론·교육 개혁이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불평등 해소, 국민 행복 시대로 나아가는 체제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오피니언타임스=황진선]

 황진선

 오피니언타임스 편집인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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